[바깥 세상]

[러시아]'인민의 궁전'이라 불렸던 모스크바 지하철… 그곳에 부활하는 스탈린 (권순완 특파원, 조선일보)

colorprom 2019. 9. 2. 15:22



[글로컬 라이프]

'인민의 궁전'이라 불렸던 모스크바 지하철그곳에 부활하는 스탈린


조선일보
                         
             
입력 2019.09.02 03:12

권순완 모스크바 특파원
권순완 모스크바 특파원

지난 23일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부 콤소몰스카야 지하철역.〈사진〉
승객들로 붐비는 승강장에 유럽 관광객 20여명이 여행 가이드를 따라 걸으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이들은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승강장 천장의 모자이크 그림을 보며 "와~" 하며 탄성을 질렀다.
가로세로 각 4~5m 정도인 그림은 군인들이 레닌의 얼굴이 그려진 빨간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가이드는 "레닌은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대표적 상징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승강장 한쪽에 걸린 동판엔 '이 역은 러시아 연방 문화유산'이란 문구와 건축가·화가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스크바 지하철은 러시아인들에게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대한 예술 작품이라 할 만하다.
역사(驛舍) 230여개 가운데 48개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주요 역을 설계하고 만든 건축가·화가들은 국가적 영웅 대접을 받는다.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지하의 미술관'을 보기 위해 땅속을 순례한다.
지하철 관광만 전문으로 하는 투어 프로그램도 수두룩하다.
가이드 타냐(28)씨는
"세계적으로 러시아만큼 지하철에 예술적 가치를 부여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 지하철()소련 체제의 선전물로 탄생했다.
공산주의 과학·건축 기술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스탈린 집권기인 1935년 첫 운행을 시작했다.
당시 지하철'인민의 궁전'으로 불렸다.

역은 스탈린 정권 때는 신고전주의나 바로크 양식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지어졌다.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집권기엔 건설 예산을 줄여 검소한 스타일로 바뀌었다.

소련 붕괴 후 세워진 역들은 금속제(製) 모던한 디자인이 많다.
이탈리아 관광객 리카르도(24)씨는 "체제 선전용이라지만 예술적 수준도 상당한 것 같다"고 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중심부 콤소몰스카야 지하철역.<
지하철 예술은 정치 풍파에 시달렸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이름을 딴 5호선 키예프스카야역스탈린 사망 다음 해인 1954년 지어졌다.
우크라이나 제1서기장 출신 흐루쇼프가 집권 직후 공사에 착수했다.
역 안엔 원래 스탈린 모습이나 상징이 담긴 모자이크 그림이 다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흐루쇼프가 1956년 '스탈린 개인숭배'를 비판한 이후 대부분 다른 그림으로 바뀌었다.
다른 역에서도 '스탈린 지우기'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최근 사라졌던 스탈린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지하철 당국이 벽화 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한때 지워졌거나 가려졌던 스탈린의 이름·이니셜 등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러시아에 스탈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퍼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과 갈등이 고조되자
러시아 국민이 냉전 때 미국과 정면 대결했던 스탈린 같은 강력한 리더십을 지지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지난 3월 여론조사에서 러시아 국민 70%가 스탈린에 대해 "()이 과()보다 많다"고 답했다.
2003년 조사 시작 이래 최대치였다.

모스크바 지하철의 연간 이용객은 약 24억명으로 세계 2위다.
1위인 일본 도쿄(34억명) 권역 인구가 3800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1200만명인 모스크바의 지하철 이용률은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모스크바대 강사 아나스타샤(26)씨는 "지하철은 삶의 수단이라기보다 삶의 일부"라고 말했다.
그 삶 속엔 여전히 구소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듯 보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1/20190901022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