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선목사님

<독설/독특한 설교> [1부/ 통찰](3)그냥 이대로 살래요

colorprom 2019. 8. 1. 14:17


[3]  그냥 이대로 살래요


 결국 우리의 싸움은, 신자로서 사는 싸움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에 걸려 있는 때가 많습니다.

홍해는 건넜는데 요단은 안 건넌 경우가 신자에게서 실제적으로 많이 발견됩니다.

거기로 들어가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보게 되고,

그곳이 포도송이 하나를 둘이 메고 나와야 될 만큼 복된 땅인 것은 알지만,

그 싸움을 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기꺼이 광야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단을 외면한 채 대강 타협하고 살다가 어느 날 요단을 직면하게 하시는 경우를 만납니다.

심각한 어떤 사건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 사건이 건강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사업에 관한 것일 수도 있으며, 자녀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우리는 자녀를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하여 온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요단을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

우리 자녀도 요단을 건너서 같이 데리고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가 싸움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들어간다면 우리 자녀도 데리고 들어가야 합니다.

입시에 관한 자녀의 문제도 더 이상 합격과 불합격의 싸움은 아니게 됩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사실상 신자들이 교회에 모여서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할 때마다 부딪치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국기도회를 할 경우 어떻게 기도할 것입니까?

" 이 나라 대통령이 하나님을 경회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이런 기도는 멋있어 보이지만 참으로 무책임한 기도입니다.

그 기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신자로 살 것을 약속하고 각오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열 명을 찾으러 오신 하나님 앞에

그 의인 열 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가가 망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5장을 보면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킵니다.

5장 13절부터 봅시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수 5:13~15)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여호와의 군대대장이 마중 나옵니다.

이때 여호수아는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우리 편인가, 적인가?"를 묻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러 온 것이지 우리 편을 들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기도는 바로 이 싸움이 아닐까요? 

"하나님, 내 편입니까, 아닙니까?"

결국 이렇게 묻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내편이시라면 우리 아이를 붙여주시고 아니라면 맘대로 하세요"

이건 기도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