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의 이웃에 사는 피에르 르장드르라는 고3 학생은 집 근처 뷔퐁고등학교라는 곳에 다닌다.
뷔퐁고는 지난해 바칼로레아(대입 자격 시험)에서 모두 338명이 응시해 98%가 합격했다.
성적 부진으로 낙오돼 전학 간 학생 등을 고려해 1학년 때 최초 입학한 352명 기준으로는
합격률이 86%로 떨어진다.
이런 자세한 숫자를 알 수 있는 건
프랑스 교육부가 전국 모든 고교별 바칼로레아 성적을 홈페이지에서 공개하기 때문이다.
각 학교의 인문·경제사회·자연계 등 3개 부문별로 합격률, 고득점자 비율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학부모·학생이 참고할 수 있는 갖가지 고교 순위 발표가 쏟아진다.
피에르의 뷔퐁고는 일간 르피가로의 올해 고교 랭킹에서 파리 48위, 전국 249위였다.
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상위권 고교끼리 학력 비교는 더 철저하다.
프랑스 주요 명문고에는 프레파라는 그랑제콜(엘리트 교육을 하는 고등교육기관) 준비반이 있다.
프레파별 성과는 샅샅이 공개돼 경쟁을 자극한다.
이를테면 마크롱 대통령의 모교인 앙리4세고의 '수학·물리학' 코스 프레파 학생들은
지난해 이공계 명문 그랑제콜인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82명이 지원해 18명이 합격했다.
합격률(22%) 전국 4위였다.
주요 그랑제콜이 이런 프레파별 지원·합격 현황을 그대로 공개한다.
한국의 일부 교육자는 프랑스를 평등한 공교육이 꽃피우는 나라로 소개하곤 한다.
반만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학교에서 평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건 맞는다.
교원 노조의 힘이 세고 수업 시간에 사회주의 사상을 주입하는 교사들이 제법 된다.
그러나 이들은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철학을 강조할 뿐 학교에서의 경쟁과 평가를 회피하지 않는다.
학업 성적으로 서열을 매기는 것이 비인간적이라는 주장은 프랑스에서 좀처럼 들어보기 어렵다.
프랑스 교육이 인간적인 점은
학업에 뜻이 없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고 다른 길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머리 좋고 성공하려는 의지가 있는 학생들은 명문 그랑제콜에 들어가기 위해 불철주야 공부한다.
상위권 고교들은 널리 공개되는 입시 결과와 그에 따른 서열화를 견디며 치열하게 경쟁한다.
프랑스가 소수의 엘리트를 길러내는 방식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무리수를 쓰더라도 자율형 사립고를 없애려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이들은 따뜻하고 포용적인 교육 철학을 독점한 것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경쟁 자체를 죄악시하는 그들의 주장을 좇다 보면 교육 현장이 나태한 공간으로 전락할 위험이 커진다. 하향 평준화되더라도 상관없다는 태도로는 모두가 주저앉게 될 수 있다.
학교는 나날이 발전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사람이 자원인 나라인 만큼 경쟁의 순기능을 살리는 교육 정책을 지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