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북한 외교관일 때 공항에서 한국 여행자들을 마주치면 슬며시 자리를 피했다.
한국 여권을 들고 여행하니 대한민국 국민이 된 것이 더욱 실감 났다.
북한에서는 사적인 용무로 해외여행을 할 수가 없다.
간혹 북·중 국경 지역에 친척을 둔 사람들이
친척을 만나러 도강증(渡江證)을 가지고 국경을 넘어갔다 오는 경우는 있지만
도강증에 밝힌 방문지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러니 해외 한번 나갔다 온 것 자체가 천당에 한 번 갔다 오는 것만큼 자랑스러운 일이다.
이번 오슬로 출장을 북한 외교관으로 간다면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적어도 두세 달 전 노르웨이 측과 방문 날짜와 회담 의제를 확정하고
대표단 구성, 방문 목적 등이 담긴 문건을 김정은에게 보고해 결재받는다.
결재가 떨어지면 외무성 간부과(인사과)에서 당사자의 6촌, 아내 쪽 사촌까지 신원 조회를 한다.
이상이 없으면 당중앙위원회 간부부에서 ‘대표단 비준 문건’을 김정은에게 보고해 결재받는다.
이후 해당 대표단을 당중앙위원회 청사에 불러 명단을 발표하고, 출장자들은 김정은에게 충성을 결의한다.
이 과정이 끝나야 여권 발급 통지서가 나오고 외무성 영사국에서 여권을 발급해준다.
여권을 받은 순간부터 새로운 전투가 시작된다.
평양에 노르웨이 대사관이 없어 베이징 주재 노르웨이 대사관에 여권을 보내 비자를 받아야 한다.
비자가 나온 다음에는 대표단 출장 여비를 북한무역은행에서 받아야 한다.
온갖 편법을 동원해 여비를 타내야 하는데 매번 출발 하루 이틀 전에야 은행에서 여비를 내준다.
비자와 돈 문제가 해결되면 자그마한 수첩을 들고 사무실을 돌면서 동료들이 원하는 선물을 적는다.
무조건 갖다줘야 ‘의리 있는 일꾼’이 된다.
비행기표 구입도 일이다.
북한은 인터넷이 없어 해외로 가려면 베이징으로 나와 비행기표를 사야 한다.
현장에서 사니 제일 비싼 표를 살 수밖에 없다.
면세점에서 신제품도 살 수 없다. 새로 나온 브랜드 제품 구입은 유엔 제재 때문에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규정을 모르고 비싼 카메라를 사서 공항에서 ‘택스 리펀드’를 신청했다가 카메라를 몰수당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 여권을 가지고 여행해 보니
비자도 필요 없고 비행기표도 인터넷으로 사전 구매할 수 있었다.
오슬로에서 기념품을 사고 공항에서 ‘택스 리펀드’도 했다.
해외여행이 이리도 간단하다니.
외교관 시절
해외에 갔다가 베이징에서 평양행 비행기를 탈 때가 제일 쓸쓸했다.
가족들 만난다는 기쁨보다 새장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갑갑함이었다.
전기 사정이 안 좋아 밤에 컴컴한 평양 상공에 도착하면 가슴이 쓰렸다.
돌아오면서 인천공항을 내려다보니 휘황찬란했다.
또 다른 조국에 도착했다는 안도감과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겹쳤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07/201906070146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