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러시아]안중근 의사 의거 다룬 러 신문기사 발굴…"안 의사 유해는 기독교 묘지에 매장"

colorprom 2019. 6. 9. 16:06



안중근 의사 의거 다룬 러 신문기사 발굴

"안 의사 유해는 기독교 묘지에 매장"


             
입력 2019.05.28 16:00

안중근 의사가 순국 후 교도소 인근 지역의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고 보도한 러시아 신문기사가 공개됐다.
그동안 안 의사의 유해가 매장된 장소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는데
이번에 공개된 러시아 신문기사가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안중근 의사 '기독교 묘지에 매장' 보도한 러시아 신문. /행정안전부 제공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 등 극동 지역 일간신문들이 보도한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 기사 24건을 발굴해 28일 공개했다.
국가기록원 해외수집팀은 2015년 해당 지역 독립운동과 한인 동포 관련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이들 기사를 모은 뒤 번역과 내용 확인 등의 과정을 거쳐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기사들은 하얼빈 의거 다음 날인 1909년 10월 27일부터 1910년 4월 21일까지 보도된 것으로,
안 의사의 의거와 체포, 재판 과정, 사형집행, 유해 매장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내용은 안 의사의 사형집행 과정유해가 묻힌 곳을 언급한

‘우수리스카야 아크라이나’지의 1910년 4월 21일자 보도다.


이 신문은 해외 소식란에서

"아사히 신문의 특파원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은 예정된 시간에 사형장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는 사촌 형이 보낸 흰색 명주 한복을 입고 있었다.

(얼굴은) 약간 창백했으나 자신의 운명에 완전히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사형 집행 후 유해가 옮겨진 과정에 대해서는

"(안중근의 유해는) 관에 넣어져 감옥의 작은 예배당으로 옮겨졌다.

암살에 가담한 3명의 동료에게 과 이별하는 것이 허락됐다.

이후 관은 지역 기독교 묘지로 옮겨졌다"고 적었다.

지금까지 일본 외무성이 소장한 사형보고서와 일본⋅중국 매체 보도는

의사 유해가 감옥 묘지에 매장됐다고만 언급했다.


국가기록원

"감옥 묘지라는 보도가 단순 오류인지 아니면 실제로 다른 묘지에 의사가 묻힌 것인지

추가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매장 후보 지역에 대한 추가 조사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번에 공개된 기사에는 일제의 신문과 사형집행에 이르는 과정 속 시종일관 당당하고 의연한 태도를 보인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체포 초기 발언 내용도 생생하게 담겼다.

‘프리 아무리예’지는 1909년 11월 2일자 보도를 통해

의사 일행의 의거 준비부터 체포 과정, 결행 등을 르포 형식으로 재구성해 상세하게 그렸다.

일본 총영사관 측 관계자 앞에서 이뤄진 첫 번째 신문에서 안 의사가 자신을

"조선에 징벌적 행위를 한 이토 히로부미에게 복수하기 위해 선발된 29명 중 한명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1910년 2월 27일자에는 ‘재팬 위클리 메일’ 보도 번역기사를 통해

의사에게 사형이 선고된 전날 재판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1시간에 걸쳐 모든 조선인이 이토를 혐오하고 민족의 원수인 그를

하루빨리 무대에서 몰아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았다

그는 평상시처럼 먹고 잠을 잤으며 처음부터 마음을 굳게 먹고 참여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가치 있게 죽음을 맞으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전했다."

또 다른 러시아 극동지역 신문 ‘보스토치나야 자랴’는 1909년 11월 4일자에서

"이토 사살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며, 아직 살아있는 것이 기쁘다.

나의 유골에 자유가 비칠 것이다"라고 말한 의사의 신문 진술을 그대로 실었다.

국가기록원은 이처럼 안중근 의사를 일제에 저항하는 영웅으로 그리는 러시아 신문 보도에서

안 의사 의거에 대한 러시아 안팎의 높은 관심을 알 수 있으며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8/2019052802060.html



'안중근 묘지 위치' 확실하지 않은데도일단 공개하고 본 국가기록원


조선일보
                             
             
입력 2019.05.31 03:11

러시아 신문, 아사히 인용해 "기독교 묘지에 안장됐다" 보도
정작 신문은 "공동묘지 묻혀" 기록원 "추가로 취재했을 수도"

안중근 의사

국가기록원이 러시아 국립도서관에서 찾아내 공개한

안중근〈사진〉 의사의 하얼빈 의거 당시 러시아 신문 기사들에 대해

"사료로서 가치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기독교 묘지에 묻혔다는 내용으로 크게 주목받은 기사는

러시아 신문이 일본 아사히신문을 잘못 인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국가기록원이 공개 전 해당 내용이 오보(誤報)인 줄 알면서도 발표한 것으로 밝혀졌다.

사실(史實)을 엄격하게 다뤄야 할 정부 기관이 지나치게 성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8일 국가기록원이 공개한 기사 6건 중 가장 눈길을 끈 기사는

1910년 4월 21일 자 '우수리스카야 아크라이나' 기사다.

안 의사의 관을 '예배당을 거쳐 지역 기독교 묘지로 옮겼다'고 썼다.

국가기록원은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종전 매장지는 교도소 묘지로 알려져 있었지만 기독교 묘지에 매장된 것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주목을 끈다"며 기록원의 발굴을 통해 안 의사 시신의 향방을 찾을 수 있는 새로운 단서가 포착된 것처럼 발표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가 "매장지 부분이 중요한 이슈"라고도 해석을 붙이기도 했다.


해당 기사는 '아사히신문의 특파원에 따르면'으로 시작하는 외신 인용 형태다.

그러나 안 의사 순국 다음 날인 1910년 3월 27일 아사히신문 기사에는 '기독교 묘지'라는 부분이 없다.


국가기록원 측은 "러시아 신문이 따로 취재해 추가했을 수도 있지 않으냐"며

오보가 아닐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기사가 순국 뒤 한 달 가까이 지난 시점에서

하얼빈 현지나 안 의사의 주요 활동 거점도 아니었던 우수리스크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사실관계를 더 따져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독립운동사 연구자 A씨는

"이런 한건주의식 공개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안중근 유해 탐색 작업에 중대한 차질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연구자 B씨는

"사료 가치를 따지기 위한 전문가들의 토론회 한 번 없이 공개했다는 사실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이 팩트를 취사선택해 공개한 부분도 있다.

공개된 러시아 기사에는 다소 부정적인 부분도 담긴 것으로 나타났다.

안 의사 의거 후 순종소네 아라스케 조선통감을 찾아 사과했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순종이 "은인이자 가까운 우리 고문인 이토 후작이 사악한 우리 국민에 의해 살해당했다"며

일본 정부에 사과를 표했다는 부분이 있다.

기록원이 논란이 될 부분은 가급적 숨기려 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기록원은 덕성여대 교수 출신의 이소연(57) 원장이 지난 2017년 취임한 뒤 잇따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 국가기록원의 '적폐 청산'에 나섰다.

2018년 1월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기록원

특정 전문가들을 각종 위원회에서 배제하기 위한 '블랙리스트'를 만든 의혹이 있다"며

민간 인사 14명을 참여시켜 '국가기록 관리혁신 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하지만 태스크포스 활동 두 달 만에 이 원장은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못 찾았다"고 밝혔다. 당시에도 국가기관인 국가기록원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무책임하게 발표부터 했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국가기록원이 본연의 업무인 자료의 수집과 보관에서 이탈하려고 하니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31/201905310021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