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미디어 중독된 현대인에 '실리콘밸리 구루'가 주는 조언
"사용자 오래 머무르게 유도하는 알고리즘의 농간에 속지 말라"
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
재런 러니어 지음|신동숙 옮김
글항아리|248쪽|1만5000원
먼저 저자의 이력을 확인하는 편이 좋겠다. 59세의 미국 컴퓨터 과학자로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술을 처음 고안하고 상용한 인물이다. 가상현실에서의 '아바타'를 개발하고, 의료 수술 시뮬레이션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최초로 도입했다. 소셜미디어의 폐해를 지적하는 책은 많지만, 저자가 실리콘밸리의 '구루'라면 이야기의 무게가 달리 느껴진다.
과학자답게 저자는 소셜 미디어의 알고리즘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시스템 안에 최대한 오래 머무르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자극하고 참여할 수 있는 콘텐츠를 생산하도록 유도한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사용자들을 조종하기 위해 보상과 처벌 시스템을 적절히 이용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시스템이다. 소셜미디어에 어떤 포스트를 올리고서 칭찬을 들으면 비슷한 종류의 포스트를 더 많이 올리는 습관이 생기는데, 이것이 소셜미디어 중독증의 첫 단계다. 실리콘밸리는 이를 '참여'라는 용어로 미화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들 역시 이를 크게 두려워해서 자식들이 그런 활동에 발 들이지 못하게 한다. 실제로 내가 아는 실리콘밸리 아이들 상당수가 발도르프 학교를 다니는데, 발도르프 학교에서는 전자기기의 사용을 금한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할수록 우울해진다면 당연한 일이다.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부정적 감정을 증폭시키도록 고안됐다.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모으려면 부정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이 가장 손쉽기 때문이다. 특히 '맞춤형 피드'는 이용자의 감정에 강력한 자극을 주도록 해 중독을 유발한다. 인기 있는 트윗 중 '슬프다'는 말로 끝맺는 것이 많은 건 우연이 아니다. 두려움을 자극하기 위한 가짜 뉴스도 횡행한다. 예방접종을 하면 자폐에 걸릴 수 있다는 괴담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져 미국 부모들을 뒤흔든 것이 대표적인 예. 저자는 아버지 입장에서 분개한다. "실리콘밸리 지평선까지 들어찬 나지막한 사옥의 초록빛 창문 뒤에 앉아 열심히 일하는 많은 친구들이 아이들 사이에서 한때 완전히 근절됐던 질병을 되살리는 과정에 기여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는 불같이 분노했다."
소셜미디어상에선 '좋아요'가 넘쳐나지만, 사회 전반에선 공감 능력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서도 서로를 보지 않고 스마트폰만 들여다본다. 저자는 "다른 사람들의 소셜미디어 피드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이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왜 그런 세계관을 형성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예전보다 사라졌다"고 말한다. "소셜미디어가 좌편향도 우편향도 아닌 하향 평준화를 양산한다."
인터넷 문화를 선도한 사람으로서, 저자는 작금의 사태에 책임감을 느낀다. 소셜미디어가 현재의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 건 인터넷 문화 형성 초기 컴퓨터 과학기술자들이 가졌던 신념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모두를 위한 민주적 공간이 돼야 한다고 믿은 그들은 무료로 자료를 검색하고, 음악을 듣고, 뉴스를 볼 수 있게 했지만 그 결과 광고주에게 데이터를 제공하고 조종당하게 했다. 해결책으로 저자는 "소셜미디어가 광고 수익 모델에서 벗어나 직접 수익을 내야 한다"고 제안한다. 넷플릭스처럼 이용자들로부터 사용료를 받고, 대신 유용한 콘텐츠를 올린 사용자들에게 수익을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소셜미디어에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봤을 문제를 적시에 잘 짚은
책이다. 제목과 달리 저자는 "소셜미디어 계정을 당장 없애라"고 하지는 않는다. 6개월 정도 소셜미디어에서 떨어져 있어 보고, 계속 사용할지를 판단하라고 권한다. 저자 자신은 단호하다. "나는 페이스북, 구글, 트위터가 유료 서비스가 될 때까지 계정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내 데이터를 확실히 소유하고 내 데이터를 사용하는 데 드는 비용을 정해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