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검찰 공소장은 가급적 한 문장으로 쓰는 게 원칙이었다.
그래서 나온 게 '고, 며, 바, 데' 공소장이다.
늘 똑같은 어미(語尾)만 쓰긴 뭣하니 처음엔 '~하고'로 쓰다가 '~하며'로 이어가고,
'~한 자(者)인 바'로 넘어갔다가 '그런데'로 돌려서는 '(범행을) 한 것이다'로 끝맺는 식이다.
읽다가 숨 넘어갈 정도였다.
1990년대 컴퓨터 사용이 보편화되자 공소장 분량도 늘어났다.
▶현장 취재 시절 공소장 복사하다가 줄 선 민원인들에게 눈총 꽤 맞았다.
웬만한 장편소설 분량과 맞먹는 700페이지 공소장도 있었다.
그런데 길다고 좋은 공소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기 혐의 공소장에 교통 위반 전력은 왜 넣나"
"공소시효 지난 사건을 검찰이 슬쩍 끼워 넣었다"
"공소장은 여러 장인데 범죄 사실은 달랑 네 줄"….
변호사들 불만은 넘쳐났다.
판사들도 "검찰 공소장을 법적 요건에 맞춰 요약하고 판결문 쓰느라 밤을 새웠다"고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그제 법정에서
"검찰 공소장은 미숙한 법률 조언을 거친 한 편의 소설 같다"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혐의'를 부인하면서 한 말이라지만 공감이 간다는 법조인이 적잖다.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은 전체 300페이지, 목차만 15페이지다.
내용도 범죄 혐의 사실보다 '피고인의 지위와 권한' '당시 법원의 상황' 같은 배경 설명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닐진대 '마음먹었다' '재차 마음먹었다' 같은
주관적 표현도 숱하게 눈에 띈다.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만 그런 게 아니다.
법원 사건으로 기소된 다른 판사 재판에선 재판부가
"공소장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 공소장 1~10페이지는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한 문장이면 전부 요약된다" 고 했다. 전직 대통령 공소장에는 당사자들이 모두 부인한 대화 내용이 '직접 인용' 형식으로 실렸는가 하면
수사 전 이미 사망한 대기업 간부의 '생각'이 담기기도 했다.
▶공소장은 형사재판의 시작을 알리는 문서다. '제1의 증거'라고도 한다.
사람을 감옥에 보내느냐 아니냐가 걸린 문서다.
그런 만큼 공소장에는 의심이나 추정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만을 담아야 한다.
판사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거나 언론에 보도돼 여론전을 벌이기 위한 공소장은
무죄 추정 원칙을 허무는 헌법 위반이다.
요즘엔 검찰이 소설 같은 내용을 공소장에 끼워 넣어도 법원은 못 본 척 눈을 감는 일이 잦다고 한다.
그런 재판이 공정할 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