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의 :법치와 덕치, 무엇이 우선인가.
“공자님은 인치(仁治)를 강조했다. 어진 정치다.
맹자님은 ‘의치(義治)’를 주창했다. 옳은 정치다.
이 둘을 묶어서 ‘덕치(德治)’라고 부른다.
반면 질서와 규율을 중시하는 법가(法家)에서는 법치(法治)를 내세웠다.
여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처음에는 법치(法治)를 내세운다.
문재인 정부도 그렇다.
‘적폐청산’이란 이름으로 법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법치만 고집할 때는 결국 한계를 맞게 된다.”
- 질의 :어떤 한계인가.
“10일로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이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어느 정부든 2년까지는 법치를 앞세운다.
그런데 2년이 지나서도 그것만 계속 고집하면 사람들의 피로도가 올라간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적폐청산도 마찬가지다.
출범 2주년을 맞은 시점에서 ‘이제는 지루하다’‘너무 피로하다’는 여론이 적지 않다.
법치만 고집하다가는 큰 그림을 놓칠 수도 있다.”
- 질의 :놓칠 수 있다는 큰 그림이 뭔가.
“우리 사회를 둘로 쪼개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묶는 일이다.
한 마디로 사회 통합과 국민 통합이다. 그게 큰 그림이다.
공자님은 무력을 통해 제자를 하나로 묶지 않았다. 덕(德)을 통해 하나로 묶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마음으로 따랐다. 그런 게 ‘큰 정치’다.
물론 법치를 통한 일벌백계(一罰百戒ㆍ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필요하다.
범법을 한 사람을 법으로 다스리고, 사람들에게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경종도 울려야 한다.
그렇지만 과오를 범한 자들이 처벌을 받고 일정 기간 복역한 후 개전(改悛)의 정이 있으면
사면절차를 밟아서 석방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할 기회를 다시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말끝에 월주 스님은 김대중 전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다.
월주 스님은 석가모니 붓다 당시에 인도 북부에서 일어났던 분쟁 일화를 꺼냈다.
이 소식을 들은 붓다는 홀로 분쟁 지역의 한가운데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 질의 :최근 여당과 야당의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했다.
- ‘식물국회’‘동물국회’ 심지어 ‘짐승국회’라는 말까지 나온다. 소통의 부재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ㆍ야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여당은 야당이 사사건건 반대한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현 집권당도 야당 시절에는 똑같았다. 사사건건 반대했다.
상대를 탓할 일이 아니다.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그게 강물 싸움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더 심각한 건 일종의 흑백논리가 양당을 지배하고 있다.”
- 질의 :어떤 식의 흑백논리인가.
“‘양보=굴종’이라고 믿는 시각이다.
양보할 경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지지세력으로부터 비난을 받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흑과 백을 도식적이고 경직되게 가른다.
이게 큰 병폐다. 그런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한 의회 정치에 양보와 포용과 타협이 있을 수가 있겠나.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할 때 소통이 가능하다.
여당이 하나를 줄 때 야당도 하나를 주는 거다. 또 야당이 하나를 줄 때 여당도 하나를 주는 거다.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가 서로 경쟁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발전한다.”
월주 스님은 “불국토는 멀리 있지 않다”고 말했다.
- 질의 :현실 속의 불국토. 그걸 위해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화쟁(和諍)’이다. 내가 아무리 옳다고 우겨도 남이 옳다고 인정해주지 않으면 영원히 틀린 생각일 뿐이다.
나만이 옳고 다른 사람은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옳으면 다른 사람도 옳고,
다른 사람이 틀리면 나도 틀렸다는 성찰이 화쟁의 참된 의미다.
그런 화쟁이 한국 사회에 절실히 요구된다.”
‘화쟁(和諍)’은 삼국통일 후 전쟁의 상처와 후유증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던 시기에
월주 스님은 “갈수록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가 더 심해진다.
- 질의 :다 같은 부자가 아니라면.
“부자에도 두 부류가 있다.
얼마 전 경주 최부자 고택에 다녀왔다.
옛날에 가뭄이 들면 곡식이 떨어지고, 논과 밭이 헐값에 나왔다.
돈 있는 사람은 가뭄을 재산 증식의 기회로 삼았다.
그런데 최부자는 달랐다.
가뭄 때 논ㆍ밭을 사지 않았다. 오히려 창고를 열고 식량을 내주었다.
최부자 집에서 백 리 안에는 굶주린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은 부자라도 ‘청부(淸富)’다. 깨끗하고 맑은 부자다.
반면 ‘탁부(濁富)’도 있다.
흐리고 탁한 부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고, 사람을 무시하고, 갑질을 일삼는다.
오늘날에도 청부는 있다. 그들은 장학사업이나 문화사업, 복지사업 등으로 자신이 가진 부를 사회와 나눈다. 우리가 탁부를 향해선 손가락질하더라도 청부까지 미워하면 곤란하지 않겠나.”
마지막으로 월주 스님은 ‘개시오입(開示悟入)’ 네 글자를 말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월주 스님은 1980년과 94년 두 차례에 걸쳐 제17대, 제28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특히 1980년은 신군부가 집권하던 해였다. 당시 총무원장이던 월주 스님은 전두환 지지 성명 요구를 거부하고 민주화 운동을 후원했다. 서슬 퍼런 시절에도 그의 행보는 당찼다. 조계종단 민주화를 위해서도 앞장섰다. 총무원장 3선 금지를 제도를 마련해 독재와 장기 집권을 막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이웃종교를 넘나들며 사회적 활동도 펼쳤다. IMF(국제통화기금) 경제위기 때는 김수환 추기경ㆍ강원용 목사와 함께 실업극복국민재단을 설립했다. 지금도 함께일하는재단(구 실업극복국민재단)의 이사장을 맡아 청년 일자리와 각 분야별 고용 창출에 힘쓰고 있다. 오갈 곳 없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 '복지법인 나눔의집'을 설립했다. 28년째 나눔의집 이사장을 맡아 일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 인식의 틀을 바꾸는데 크게 공헌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공동대표 겸 이사장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구호NGO 지구촌공생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네팔과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 15개국의 산악지대와 오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학교를 짓고, 우물 파기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월주 스님 "적폐청산 넘어서는 큰 정치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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