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전거의 등장에 혁혁한 공로를 세워 '자전거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독일의 카를 폰 드라이스(1785~1851년) 남작인데요. 드라이스는 물리학, 건축학, 농학을 공부한 뛰어난 발명가였다고 합니다.
그가 1817년에 만든 빨리 걷는 기계가 바로 현대적 자전거의 효시로 불리는데요. 작게 만든 마차 바퀴 두 개를 목재로 연결하고, 그 위에 올라타서 걷거나 뛰는 것처럼 발로 땅을 차 앞으로 나가도록 하는 기계입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드라이지네'란 명칭이 붙었습니다.
1817년 '드라이지네' 발명
이보다 앞선 1791년 프랑스의 귀족 콩트 메데 드 시브락이 타고 나타나 이목을 끌었던 '셀레리페르'가 최초의 자전거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기다란 목재 아래 바퀴 두 개가 달린 모양이 자전거와 흡사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이 장치는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장치가 없어 실제로 타기에는 상당히 불편했고, 실용적인 탈 것이라기보다는 오락기구에 더 가까웠다는 기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습니다. 드라이스는 왜 '드라이지네'를 발명했을까요. 당시는 말이 교통수단의 대명사였습니다. 사람이나 짐도 마차로 실어나르는 게 일반적이었고요.
화산폭발, 자전거 발명 촉발
사연은 이렇습니다. 드라이지네가 발명되기 2년 전인 1815년 4월 10일 인도네시아의 숨바와섬에 있는 '탐보라 화산'이 역대급 대규모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1000개 이상의 위력이었다는 설도 있는데요.
당시 이 폭발로 인해 화산 주변에 살던 주민 중 사망자만 10만명에 육박했습니다. 여기에는 화산 폭발에 이어진 질병과 굶주림으로 희생된 사람들도 포함되는데요.
재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늘로 치솟은 화산재가 바람을 타고 미국과 유럽으로 동진하면서 1816년부터 1818년까지 거의 3년간 햇빛을 가려버린 겁니다. 이 때문에 여름에조차 서늘한 날씨가 됐고, 농사도 모두 망쳐 버렸다고 하는데요.
이런 흉작으로 인해 말의 먹이인 귀리 농사도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귀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먹이가 부족해진 말들이 쓰러지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굶주림에 지친 주민들이 말을 공격해 잡아먹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말이 부족해지면서 말을 대체할 교통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해진 겁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드라이지네'입니다. 화산폭발의 나비효과라고도 부를 만 합니다.
1860년대 자전거에 페달 달아
1870년대에는 앞바퀴가 뒷바퀴보다 현저하게 큰 자전거가 등장합니다. 자전거가 앞으로 나가는 거리가 앞바퀴의 지름에 비례하기 때문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 앞바퀴를 최대한 크게 만들었다는 설명인데요.
이런 자전거를 '오디너리(Ordinary)' 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자전거는 앞바퀴가 너무 커서 타고 내리기가 불편하고 넘어지는 사고도 적지 않았는데요. 그래서 여성들에겐 기피 대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누구나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가 필요했습니다. 1880년대 차체가 낮고, 체인으로 뒷바퀴를 돌려서 굴러가는 자전거, 이른바 '안전 자전거(Safety Bicycle)'가 등장한 이유입니다.
누구나 타는 안전자전거 등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