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대한민국 출범]

"3·1운동 후 처음 英文으로 독립의지와 정치적 이상 드러내"

colorprom 2019. 4. 9. 14:49



"3·1운동 후 처음 英文으로 독립의지와 정치적 이상 드러내"


조선일보
                             
              
입력 2019.04.09 03:00

대한인총대표회의 100주년
서재필기념회, 오늘 세미나 열어유영익·김명섭 교수 주제 발표

'조선 독립 만세'를 외치는 3·1운동의 함성이 한반도 방방곡곡에서 울려 퍼지고, 상해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직후인 1919년 4월 14일. 미국 동부 필라델피아의 리틀 시어터(Little Theater)에서 서재필과 이승만 등 미국 각지에서 모인 150여명의 한인이 참가한 대한인(大韓人)총대표회의가 열렸다. 영어로 '제1차 한인 회의(First Korean Congress)'라고 불렸던 이 회의는 16일까지 계속되며 한국 독립운동에 관한 연설과 보고를 듣고 '미국 대통령과 파리강화회의' '대한공화국임시정부' '사려 깊은 일본인' 등에게 보내는 다섯 개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참가자들은 미국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독립기념관(인디펜던스홀)까지 2㎞를 태극기를 흔들면서 행진한 뒤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서'를 영어로 낭독하고 '대한공화국 만세'를 세 번 외친 후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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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렸던 대한인총대표회의 참석자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앞줄 왼쪽 태극기 든 여성의 오른쪽 뒤에 서재필, 그 오른편에 이승만이 보인다. /서재필기념회
서재필기념회(이사장 안병훈)는 9일 오후 2시 반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서재필과 미국에서의 3·1운동―필라델피아 만세운동을 중심으로' 세미나를 개최한다.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는 발표문에서 이 회의의 결의안들이 3·1운동 후 처음 영문으로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밝히며 정치적 이상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그 가운데 미시간대 유학생 유일한이 기초한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은 한국인이 추구해야 할 '새로운 한국(a New Korea)'의 정부 형태와 운영 방법에 대한 청사진을 담아 이후 독립운동과 건국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유 교수는 또 의장을 맡은 서재필이 이 회의를 통해 제자인 이승만을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로 부각시켰다고 분석한다. 독립선언서 낭독, 만세 삼창(三唱) 선창을 맡기고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사용했던 독립기념관 자리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는 이 회의가 '조선인'을 천명했던 국내 독립선언서와 달리 '대한인'을 표방한 것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 병합한 뒤 위축됐던 근대적 역사 주체로서의 '대한인'을 새롭게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한다. 또 이 회의를 특정 인물 중심으로 기억하려는 '기념의 역사정치'를 비판하면서 이는 서재필·이승만·안창호를 비롯한 미국에 있는 대한인들의 합작품이었다고 주장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9/2019040900091.html



김용철(yon****)모바일에서 작성2019.04.0922:50:09신고
참담하고 험악하다. 되풀이 안되길!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4/09/20190409000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