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부패에 성난 민심...'코미디'가 일단 '정치'를 이겼다.
2019.04.05
우크라이나 1차 대선 투표
지난달 31일 열린 우크라이나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이변이 일어났어요.
코미디언 출신 40대 정치 신인이 현직 대통령 페트로 포로셴코(53)와 전 총리 율리야 티모셴코(59)를 누르고 득표율 30%로 1위를 한 거예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Zelensky·41)가 주인공입니다.
다만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완전히 이긴 건 아니에요.
오는 21일 2차 투표에서 1위 젤렌스키와 2위 포로셴코가 맞대결을 펼칠 거예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고생한 우크라이나
한국 사람은 "한국과 이탈리아가 성격이 비슷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하지만 한국과 더 많이 닮은 나라는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나 우크라이나일지도 몰라요.
한국은 중국·러시아·일본이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았어요.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와 서방세계 사이에 끼여 고생했어요.
한반도는 냉전이 아직 끝나지 않은 유일한 땅이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서방세계가 대립하는 신(新)냉전의 최전선이라는 점도 비슷하지요.
- ▲ 우크라이나 대통령 후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1차 투표 출구조사 발표를 앞두고
- 기자에게 둘러싸여 탁구를 하고 있습니다.
- 코미디언·배우 출신인 그는 1차 투표에서 득표율 30%로 선두를 차지했어요.
-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방영한 TV 프로그램에서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고교 역사 교사를 연기하며
- 큰 인기를 얻었어요. /AFP 연합뉴스
러시아는 '강한 우크라이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분석이에요.
◇'무(無)공약'으로 돌풍 일으킨 정치 신인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기성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높아지기만 했어요.
젤렌스키가 이번 대선 1차 투표에서 1위를 한 이유가 거기 있다고 해요.
젤렌스키는 '국민의 종복'이라는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을 맡아 인기를 얻은 코미디언이에요.
고교 역사 교사가 부패한 정부를 거침없이 비판했는데
그 동영상이 퍼지면서 인기를 얻어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다는 내용이죠.
정치에 문외한인 고교 교사가 부정부패를 개혁해나가는 이야기가 큰 호응을 얻었어요.
극 중 배역과 마찬가지로, 현실의 젤렌스키도 특별한 공약이나, 정치적 세력이 없어요.
기성 정치인들 눈으로 보면 '아웃사이더'지요.
그렇지만 대중은 그의 친숙한 이미지와 서민적인 인상에 환호했어요.
그는 "부패한 기존 정치를 완전히 바꾸겠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대통령이 되면 자전거로 출퇴근할 수도 있다"는 말도 했지요.
이번 대선 1차 투표에서 현직 대통령 포로셴코는 득표율이 16%에 그쳤어요.
그는 별명이 '초콜릿 대공'이에요.
제과 재벌인 데다, 농업·금융·미디어 등 다른 산업에서도 막대한 자산과 영향력을 갖고 있죠.
부패 사건에 여러 번 연루된 데다, 불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지도 못해 국민이 그에게 실망한 상태예요.
◇친러시아냐, 친서방이냐
젤렌스키는 친서방으로 분류됩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면, 러시아와의 관계가 오히려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꽤 많아요. 젤렌스키는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인이거든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이미 강제 합병해버린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가 되찾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러시아에 강경하게 맞서는 대신 대화에 나설 거란 관측이 나옵니다. 또
우크라이나 국내적으로도, 러시아계인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되면 내전이 좀 잦아들 거라는 기대가 있어요. 그동안 러시아계 분리주의자들이 "러시아계가 위협당하고 있다"며 분리 독립을 주장해왔는데,
러시아계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면 그런 주장도 빛이 바랠 테니까요.
하지만 최후의 승자를 가르는 건 21일 열리는 결선투표입니다.
과연 '초콜릿 대공'과 코미디언 중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될까요?
-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특파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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