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4.01 03:00
첫 여성 대통령 카푸토바 "그가 피살됐을 때 巨惡과 싸우기로 작정"
지난 30일(현지 시각)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가 열린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 있는
'진보적 슬로바키아당' 당사.
주사나 카푸토바(45) 대선 후보가 밤늦은 시각 승리를 확정 지은 뒤 환호하는 당원들 앞에 섰다.
카푸토바는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한 건 불의를 파헤치던 젊은 언론인 잔 쿠치악이 살해당했을 때"라며
카푸토바는 "대통령이 되기로 결심한 건 불의를 파헤치던 젊은 언론인 잔 쿠치악이 살해당했을 때"라며
"그때부터 거악(巨惡)과 싸우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카푸토바는 불법 쓰레기 매립 문제를 놓고 16년간 싸웠던 환경 운동가다.
공직 경험이 전혀 없다. 그가 속한 '진보적 슬로바키아당'은 총선을 치른 적조차 없는 신생 정당이다.
신생 정당 소속 정치 초년생이 여당의 거물 정치인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끈질기게 정권의 비리를 취재한 단 한 명의 기자 때문이었다.
지난해 2월 정권 비리를 파헤치다 살해된 잔 쿠치악(당시 28세)이라는 탐사 전문 기자이다.
쿠치악 기자 살해 사건이 슬로바키아 국민의 부패 청산 열망에 불을 질러,
쿠치악 기자 살해 사건이 슬로바키아 국민의 부패 청산 열망에 불을 질러,
사건 직후 장기 집권하던 로베르토 피코 총리와 내무장관을 사퇴시킨 데 이어,
이번엔 대통령까지 갈아치운 것이다.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는 슬로바키아에서는 총리가 평상시 국정을 담당하지만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는 슬로바키아에서는 총리가 평상시 국정을 담당하지만
대통령이 내각 구성 승인권, 헌법재판관 임명권, 법률 거부권 등으로 견제 권한을 갖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로, 국민은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있는 로베르토 피코 전 총리가 이끄는 여당인
사회민주당의 독주를 막을 수 있게 됐다.
피코 전 총리가 내세운 여당 후보는 현직 EU(유럽 연합)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인 거물 정치인
마로스 세프쇼비치였다.
지난 16일 1차 투표에서 카푸토바는 40.6%의 득표율로 세프쇼비치(18.7% 득표)를 꺾었고,
결선투표에서도 세프쇼비치를 58%대42%로 눌렀다.
쿠치악은 탐사보도 전문 매체 소속으로
쿠치악은 탐사보도 전문 매체 소속으로
10년째 집권 중이던 피코 전 총리의 측근들이 이탈리아 마피아와 결탁해 EU의 농업 보조금을 빼돌린 사건 등 정권 비리를 취재 중이었다.
그는 살해 위협을 받고도 취재를 계속하다가 작년 2월 25일 자택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을 맞고 숨졌다.
당시 결혼을 3개월 앞두고 있던 여자친구도 함께 피살됐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쿠치악의 동료 기자들은 그의 미완성 기사를 그대로 보도했다.
분노한 국민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쿠치악이 숨지고 보름 뒤, 소련에 민주화를 요구하던 1989년 이후 최대 규모인 5만명이
브라티슬라바에 운집해 시위를 벌였다.
결국 피코 총리는 쿠치악이 숨진 지 19일 만에 사퇴했다.
검찰은 작년 9월 용의자 8명을 체포했다.
검찰은 작년 9월 용의자 8명을 체포했다.
이들은 피코 전 총리 측근들과 가까운 마리안 코치네르라는 기업인이
5만유로(약 6400만원)를 사례금으로 건네고 2만유로(약 2550만원)의 빚을 대신 갚아주자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비리를 파헤치던 언론인이 '8000만원'에 청부살인된 것으로 밝혀지자 민심은 더욱 들끓었다.
특히 검찰 2인자인 대검 차장이
쿠치악 살해를 사주한 코치네르와 문자 메시지 수백 건을 주고받은 사이라는 점이 탄로 나
대선 결선
투표 바로 전날인 지난 29일 사퇴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뉴욕타임스는
"카푸토바의 당선은 쿠치악의 죽음을 계기로 변화를 갈망한 슬로바키아 국민의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했다. 기자 한 명의 열정이 한 국가의 민주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유럽 언론은 내년 슬로바키아 총선에 카푸토바의 '진보적 슬로바키아당'이 참여하면
의회에 큰 변화가 생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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