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억 상가(商街) 투기 의혹으로 국민을 ‘속였던’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과기부 장관, 국토부 장관 두 후보자의 발목을 잡았다. 김의겸이 문재인 정권 제2기 개각에 ‘물귀신’이 되어 같이 침몰한 것이다. 장관 후보를 낙마시킨 것은, 국회도 아니고, 청와대도 아니다. 그것은 ‘김의겸 사태’로 불거진 성난 민심의 파도다.
문재인 정부 인사는 ‘날림 공사’다. 참신하고 능력 있는 인사에게 장관으로서 전권(全權)을 주어 나라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게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인사를 한다. 문재인 정부 인사는 오로지 ‘정치 공학(工學)’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분위기 반전용 인사, 혹은 선거를 위한 인사, 이너서클 속에서 자리 안배를 위한 회전문 인사를 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캠코더’ 인사(캠프 사람, 코드 맞는 사람, 더불어민주당 사람)에다가 날림·졸속 인사가 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다. 어깨에 계급장을 붙여주려다 박탈한 것이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자진 사퇴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지명 철회나 다름없다. 어떤 정권이든 정책 실패 때는 ‘참사’라는 표현을 잘 안 한다. 그러나 인사에 대해서만은 중도 하차가 벌어지면 ‘인사 참사’라고 한다. 그만큼 대통령에게 핵심적인 통치 행위가 인사인 것이고, 그것이 실패하면 정권에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8일 제2기 개각 인사 7명을 발표한 뒤 23일 만에 그중 두 명을 거둬들였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발언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청와대는 "조동호 후보자가 (문제가 된) 해외 부실 학회 참석 사실을 밝히지 않아 검증에서 걸러낼 수 없었다"고 했다. 조국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 같은 청와대 인사 검증 라인은 책임이 없다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밝히지 않아 걸려낼 수 없었다"니? 청와대 사람들은 뻔뻔한 것인지 무능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조동호 씨가 인도 쪽 해적 학술단체인 ‘오믹스’와 관련된 부실 학회에 참석한 것을 스스로 밝히지 않아 검증에서 걸러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이나 인사수석은 고위공직자 후보의 자백과 고백에 의존하여 사전 검증할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뭐 하러 예산을 들여 민정수석실이란 조직을 운영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고위 공직자가 스스로 밝히는 것만 검증하는 곳이라면, 지금 당장 민정 수석실을 폐지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닌가. 아니면 어차피 국회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든 안 되든 대통령이 국회를 무시하면서 임명을 밀어붙일 테니 민정수석실에서 사전 검증을 하나마다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인가. 이번에도 민정수석실은 청문회 과정에서 무슨 흠이 드러나든 문 대통령이 결국 밀어붙일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심지어 "청문회 때 시달린 사람이 일 더 잘 한다"고 했었다. 청문회를 겉치레 통과의례쯤으로 본 것이다.
이번 ‘인사 참사’에서 또 하나 기가 막힌 일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를 무조건 감싸던 여당조차 이번 개각은 방어가 어렵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이런 후보자들을 내놨느냐"고 항의 섞인 질문을 했더니 인사 검증을 책임진 조국 민정수석은 "다 알았던 내용"이라면서도 "사람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말 억장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이다.
"다 알았던 내용"이라니? 그 많은 흠결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무시하고, 오로지 문 대통령의 고집을 믿고, 민정수석실도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작정했다고 실토하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또 하나. "사람이 없다"니? 이것은 청와대가 지금 얼마나 좁은 인재 풀 속에서 장관 후보를 고르고 있는 것인지 그대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왜 사람이 없겠는가. 오로지 ‘캠코더(캠프, 코드, 민주당)’에서 고르려 하니까 사람이 없는 것이란 사실을 온 국민은 다 알고 있다.
자 이번에도 조국 민정수석은 자리를 지킬 것 것인가.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고 한다. 왜 문 대통령은 조국을 그렇게 예뻐하는가. "그가 현 정권 창출에 지분이 있는 참여연대 출신인데다, 현 정권의 정치적 기반인 PK(부산⋅경남) 출신이란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도 ‘청와대 안에서 누가 책임질 것인가’ 하고 묻자 "그런 논의를 따로 한 적 없다"고 했다. 윤 수석은 "청와대 인사 검증은 공적 기록과 세평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 인사청문회와 언론의 취재는 검증의 완결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인사 검증 책임은 청와대가 절반, 국회와 언론이 절반, 이렇게 나눠져야 한다는 뜻인가.
미국에서는 장관 후보자를 지명하기 전에 국세청과 FBI가 4개월 동안 철저히 신상을 검증한다. 최근 7년간 거주지를 찾아가 이웃들에게 평판도 물어본다. 우리는 날림 공사로 후보자 지명을 발표한 다음에, 문제가 불거지면,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고, 언론 탓을 하고, 과거 정권 때 관행이라고 발뺌하고, 그래도 안 되면 대통령 임명권을 내세워 그냥 밀어붙이고, 그렇게 넘어간다. 이번에도 7명 중에 2명을 꼬리 자르기를 하고 그렇게 넘어가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윤도한 수석 "전세금 올려 아들에 송금, 문제인지 다시 판단해야… 국민정서에 안맞는다고 다 배제하면 능력있는 사람 뽑기 어렵다" 野 "김연철·박영선은 안돼"… 靑 "자진사퇴·지명철회 더는 없어"
청와대는 1일 개각 대상 장관 후보자들의 '도덕성 논란'에 대해
"국민 정서에 안 맞는 것들이 있지만 그것 때문에 다 배제한다면 능력 있는 분을 모시기 어렵다"고 했다.
일부 논란이 있더라도 5명의 장관 후보자를 임명할 수밖에 없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것이다.
청와대는 더 나아가 자진 사퇴하거나 지명 철회된 2명의 장관에 대해서도 '큰 문제가 없다'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 예상된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1일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날 자진 사퇴한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지명 당시에 집이 3채였는데, 이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후보에서 제외해야 하느냐"며
"국민 정서 괴리 부분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게 흠인지는 모르겠다"고도 했다.
윤 수석은 전날에도 "최 후보자는 교통 전문가다. 국토부 현안 중 교통과 관련한 부분이 많았다"고 했었다.
최 후보자가 다주택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문성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지명했다는 것이다.
최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로 25억원 차익을 남겼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이를 옹호하듯 말한 것이다.
전날 지명 철회한 조동호 전 과학기술부 장관 후보자 아들의 호화 유학 논란과 관련해선
"큰 문제가 아니었다"고도 했다.
윤 수석이 '검증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되풀이하자
'(그러면) 정무적인 판단을 잘못해 (두 후보자를 지명한 데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윤 수석은 "외국에서 외제차 타는 게 뭐가 문제냐"고 했다. 이어
"(아들이 탔던) 포르셰는 가액이 3500만원밖에 안 됐고, 벤츠도 3000만원이 안 됐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고 했다.
윤 수석은 또 "조 후보자가 미국의 아들에게 돈을 보내기 위해 전세금을 올렸다고 자극적으로 보도됐는데,
그 사실 자체가 큰 문제인지 다시 판단해 봐야 한다"고 했다.
조 후보자는 '국가 연구비 유용' 의혹까지 받았었다.
윤 수석은 '국민 정서에 벗어난 인사를 한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나'라는 질문에는
"현 정부뿐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도 대안이 마땅치 않으면
약간의 흠결이 있고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후보라도 임명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어차피 청문회 과정 속에 있는 부분이다. 언론도 인사청문회 검증 과정에 주도적 역할 하고 있다"고 했다.
국회나 언론이 사후에 제기한 의혹도 정부의 검증 과정에 포함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러나 당초 청와대는 청문회를 앞두고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각종 의혹이 제기되자
"(이미) 체크가 된 것"이라고 했었다.
야권(野圈)에선 "청와대가 검증을 엉터리로 해놓고 '국민 탓'을 한다"
"여야,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부실 검증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고 있는 상황과는 동떨어진 인식"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이날 김연철 통일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이날은 두 후보자를 비롯해 진영 행정안전부, 문성혁 해양수산부,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등 5명에 대한 인사 청문 보고서 채택 시한이었다. 그러나 여야는 이날 박양우 후보자를 제외한 다른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는 채택하지 못했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문 대통령이 김연철·박영선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경우 우리가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하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도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상황이 오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다만 나 원내대표는 "진영·문성혁 후보자는 '부적격' 의견을 달아 보고서를 채택해줄 것"이라고 했다. 바른미래당도 같은 입장이다. 나 원내대표는 "김·박 후보자는 절대 불가"라고 했다. 한국당은 이날 박 후보자를 국회 위증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최정호·조동호 후보자를 낙마시킨 것으로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자진 사퇴'나 '지명 철회'는 더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3일 국회의원 보궐선거 이후, 한·미 정상회담(10~12일) 전인 7일까지 임명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청문 보고서 채택 동의 없이 임명을 강행할 경우 정국이 당분간 냉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야당 관계자는 "청문 보고서 없이 임명한 장관이 지금까지도 8명으로 이명박 정부 이후 최다였다"며 "또 추가될 경우 '국회 무시 정권'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