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정두현 선생 (김형석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2. 1. 14:31

[아무튼, 주말] 신사참배후 교장 선생님 뺨에 눈물, 어렸던 내 가슴에도


조선일보
                              
  •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          
    입력 2018.12.01 03:00

    [김형석의 100세 일기]

    [김형석의 100세 일기]
    일러스트=안병현
    1930년대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 말이었다.
    교장이셨던 선교사 맥큔(한국명 윤산온) 선생이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교장직에서 해임돼 한국을 떠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어린 학생들 앞에 나타난 교장은 긴말을 하지 않았다.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높이 쳐들면서 "Do(하라)!"라고 일곱 번 반복했다.
    마지막 외침은 목이 터질 듯한 큰 소리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준비해 두었던 책을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예수께서 너희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책자였다.

    나는 신사참배를 하고 학업을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교회 김철훈 목사의 가르침과 교장 선생의 뜻을 따라 학교를 떠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같은 반에 있던 시인 윤동주는 자퇴하고 만주로 떠나갔다.

    나도 학교를 자퇴했다.

    그러는 동안에 평양 기독교계의 유지들이 여러 가지로 고민하다가

    500명이 넘는 한국 학생들을 일본 학교에 맡길 수는 없으니까,

    신사참배를 하더라도 우리 아들들을 우리가 키우자는 결정을 내렸다.


    숭실 전문학교의 교수이면서 교회 장로였던 정두현 선생이 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나는 1년 동안 학교를 떠나 평양 부립 도서관에 다니면서 독학을 시도하였으나,

    스승의 권고로 하는 수 없이 복교하기로 했다.

    그 당시 남매학교인 숭의여자중학교에 다니던 이화여대 김옥길 총장은

    폐교와 더불어 공립학교에 편입되었다.

    4학년 학생으로 복학한 첫 학기 초에 우리는 평양신사로 참배를 가야 했다.

    일제가 명령하는 규정이었을 것이다.

    평양에 있는 모든 공사립 중학교와 기관들이 신사참배를 강요당했던 것이다.

    신궁 앞 넓은 뜰 안에 전교생이 도열해 섰다.

    교장선생이 맨 앞에 혼자 서고 그 뒤에는 선생들이 횡렬로 정돈해 섰다.

    우리 학생들은 학년과 학급에 따라 종렬로 자리를 채운다.

    그러고는 체육선생의 구령에 따라 최경례를 하는 절차였다.

    최경례는 가장 존중한다는 뜻을 담아 90도로 경의를 표하는 절이다.

    그 절차가 끝나면 다음 학교에 자리를 양도하기 위해 순서에 따라 퇴장한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었다. 앞자리에 섰다가 우리 앞을 지나가는 교장선생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교장선생의 주름 잡힌 뺨으로 두 줄기의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눈물을 닦을 수가 없으니까 그대로 참고 계셨던 것이다.

    내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1년 동안 학교를 떠나 있으면서 나라 없어 당하는 아픔은 어린 가슴에도 설움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교장선생은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스승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늘 모교에 다녀왔다. 그날의 일들이 기억에 떠올랐다.

    그때 제자들을 위한 스승의 눈물이 없었다면 철없던 우리는 어떻게 자랐을까.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30/2018113001748.html


    김보혜(v****)2018.12.0517:00:07신고
    Do, do, do, do, do, do, do!!


    정경식(cksck****)2018.12.0113:43:05신고
    박정희! 피눈물을 감추고 신사참배했다. 이름도 다까끼 마사오로 개명했다.
    일본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선생이 되었다.
    만주군관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일본육사를 3등 졸업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를 알아야 한다며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아먹는 왕호랑이의 힘을 길렀다.
    일본육사등에서 일본의 모든것을 흡수했다.
    일본에서 배운 것을 밑천으로 삼아 거지나라를 2차세계대전후 유일한 선진산업국가로 만들었다.
    5천년 보릿고개 나라를 살찔까 두려워하는 나라로 만들었다.
    후진국이 선진국이 되는 비법을 만들고 실천했다.
    후진국의 신이 되었고 선진국의 선생이 되었다.
    트럼프도 습근평도 등소평도 푸틴도 영국수상도 프랑스 대통령도 아프리카 대통령도
    박정희의 부국강병책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온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칭송한다.
                                                                                                                                             지구에 사람이 생긴 이래로 박정희 같이 훌륭한 사람은 없었다(自有生民以來未有朴正熙也).
    이경진(marine****)모바일에서 작성2018.12.0113:18:40신고
    불과 백년만 거슬어가면 나라 태반이 OO들이면서 지들은 양반이라고 말하는것과 똑같다.
    백성이 없었으면,천민이들이,농부들이 없었으면 이나라가 아직 있었을까.
    일본학교,사관,군관학교 다녔다고,군인,경찰했다고 다 친일파란다.
    그럼 이나라는 누가 있었어야했나?
    이경진(marine****)모바일에서 작성2018.12.0113:12:21신고
    그들은 을사오적이나 고종이나 당시 고정을 나무라지 않는다.
    우리들이 기억할만한 현대민물들을 콕찝어 망신을주며 보수혹은 정권,창군 주역들을 흠집내어
    우매한 국민들에게 한쪽 단면을 보여주어 자기편으로 만들고 선동한다.
    이경진(marine****)모바일에서 작성2018.12.0113:06:24신고
    그들의 시각은 독립투사=민주화운동, 친일파=계엄군.
    을사오적이나 한일합방 그정도 시기라면 이해가 간다.
    그들의 시선으로보면 식민지 30여년을 당시 지도층,지식층들은 무직으로 세월만 보내야 했다는거다. 온국민이 독립운동을 해야했고. 이게 난센스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30/20181130017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