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시]'두 번은 없다' (백영옥,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2. 1. 14:27

[백영옥의 말과 글] [75] '두 번은 없다'


조선일보
                             
  • 백영옥 소설가
    •          
    입력 2018.12.01 03:07

    백영옥 소설가
    백영옥 소설가


    인터넷 서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서점에서 일할 때 책과 책방에 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했었다.
    좋아하는 책을 모아 책방을 열고 싶다는 생각.
    그 서점이 동네 약국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좋은 책들을 모아둔 그곳에 약사처럼 앉아서
    이런저런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줄 책과 밑줄을 조제해 처방하는 모습을 말이다.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클로징 원고를 직접 썼다.
    약국 같은 서점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스튜디오에 앉아 청취자들에게 전할 책의 밑줄을 해열제나 감기약처럼 건넸다.
    선택이 힘들어서, 거절하지 못해서, 나로 살지 못해서 생긴 상처들이 세상에 너무 많다는 걸
    매일 깨닫는 시간이었다.

    일기는 밤에 쓰는 사람이 많다.
    나는 아침 일기를 쓴다.
    이유가 있다. 밤에 쓰는 일기는 그날의 일을 '반성'하는 경우가 많고,
    교정해야 할 나 자신에 대해 쓰다 보면 곧잘 자아비판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아침 일기는 희망이나 고마움, 그날 해야 할 일에 대한 활기찬 글이 되곤 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첫 문장인데, 매일의 하루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침 공복에 마시는 생수처럼 좋을 시(詩) 한 편을 찾아내곤 했다.
    폴란드의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 '두 번은 없다'도 그런 시다.
    나는 이 시를 매해 1월 1일이 되면 소리 내어 읽는 오랜 습관이 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없이 죽는다. /

    우리가,

    세상이라는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시인의 말처럼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고, 두 번의 똑같은 밤도,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올해도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를 연고처럼 건네고 싶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아직 한 달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 있다.

    아무도 없는 듯 외롭고 힘든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그때, 나를 위로해줄 안전지대가 필요하다.

    내겐 그것이 늘 혼자 읽는 책이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30/20181130029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