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11.20 03:09
조지훈 '다부원에서'
올해 초에 BBC에서 방영한 '남한: 지구의 숨겨진 황야' 다큐멘터리를 얼마 전 보았다.
BBC의 백년 다큐멘터리 제작 노하우가 유감없이 발휘된, 고즈넉이 마음에 스며드는 자연 다큐멘터리였다.
우리 한국인들도 잘 몰랐던,
우리 한국인들도 잘 몰랐던,
물고기를 잡아먹는 거미와, 달팽이를 잡아먹고 영롱한 반딧불이로 해탈하는 반딧불이 유충,
가시연 잎 위를 사뿐사뿐 걸으며 먹이를 잡아먹는, 그러나 자주 가시에 찔려 아파서 발을 터는 물꿩 등도
흥미로웠지만,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순천만, 우포 늪, 주남 저수지 등도 경이롭게 다가왔다.
배가 다닐 수 없는 순천만 습지의 주민들은
배가 다닐 수 없는 순천만 습지의 주민들은
한 발로 노를 젓듯 특수한 수레(?)를 밀고 다니며 습지 생명을 낚아서 살아가고,
얼지 않는 주남 저수지에서 월동하러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100만 철새의 군무는
환상적이라는 표현으로는 어림도 없다.
우포 늪 작은 짱뚱어의 간절한 구애는 안쓰러움과 웃음을 자아낸다.
한국의 매부리(응사·鷹師)는 매와 교감을 쌓지만, 매는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기에
매번 그날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각오로 매를 날려 올린다고 한다.
모두가 60대 이상인 마라도 해녀 중에는 열두 살부터 82년간 물질을 했다는,
모두가 60대 이상인 마라도 해녀 중에는 열두 살부터 82년간 물질을 했다는,
육지에서는 걷기도 힘들지만 바닷속에서는 헤엄을 친다는 94세 왈수라 할머니도 있다.
해녀들은 서로를 지키지만 갑자기 풍랑이 세지면 바닷속에서 의식을 잃거나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해산물 채취는 때가 중요해서 물살이 웬만큼 센 날도 위험한 물질을 한다.
이 다큐는 "한국인들은 자연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수천 년을 살아왔다"며 끝맺는다.
이 다큐는 "한국인들은 자연 세계와 조화를 이루며 수천 년을 살아왔다"며 끝맺는다.
이 소중한 땅, 우리 후손에게 반드시 그 아름다움과 비옥함을 물려주어야 할 땅이
한국동란 때 얼마나 수난을 당했던가.
조지훈 시인은 6·25 초기 최대 격전지였던 다부동이 초토화된 모습을 이렇게 애도했다.
'피아(彼我) 공
방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다큐 속의 꿀벌들은 집과 유충(幼蟲)들을 지키기 위해
다큐 속의 꿀벌들은 집과 유충(幼蟲)들을 지키기 위해
흉악한 말벌들에게 떼로 달려들어 자기 몸을 찢고 태워 끝내 물리친다.
지금 내부의 적과 외부의 적이 노리는 이 강토를 우리 말고 누가 지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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