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인물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47) 최인호(1945~2013)
최인호는 1945년 10월 서울서 태어났다.
최인호는 서울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여 문단에 고개를 내밀었고,
이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최인호를 가까이 알게 된 것은
'연세춘추'의 주간으로 임명되어 학생들의 글을 받아 그 신문에 게재하게 되면서부터다.
몸집이 크지 않으나 깨끗한 표정의 최인호의 얼굴에는 희랍의 조각을 연상케 하는 아담한 모습이 있었다.
그는 별로 말이 없었다.
그가 작품을 쓰고 또 쓰던 그 시절 한국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한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바보들의 행진' '별들의 고향' '도시의 사냥꾼' '해신' 등은 아직도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다.
'해신'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 포세이돈과 장보고를 대비시킨 작품으로
위대한 한국인 장보고를 부각시킨 것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바보들의 행진' '해신' '별들의 고향'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최인호를 마지막 만났던 그날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떤 사람의 초대를 받아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에 갔을 때 우연히 거기서 그를 만났다.
그가 병상에 쓰러지기 전의 일이었다.
그의 얼굴은 많이 수척한 편이었으나 양복을 깔끔하게 입고 화사한 목도리를 목에 두르고
자기 친구와 함께 거기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의 친구에게 나를 소개하는 것이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나의 스승이셔."
물론 나로서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 한마디에 교수 생활의 보람을 처음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는 침샘 주변에 암이 생겨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단 붓을 꺾어야 했다.
그는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글을 쓰고 싶다는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털어놓았다.
그는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이 죽음을 열흘 앞두고 쓴 편지를 인용하며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김유정의 그 편지를 읽을 때마다 나는 펑펑 울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자기의 가난하던 젊은 시절을 회고하면서 릴케의 시처럼
"위대한 장미꽃이 되어 가난뱅이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다.
9월의 어느 날 최인호는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8세였다.
그는 오랜 사색과 고뇌 끝에 천주교에 귀의하여 땅 위에서의 그의 삶의 끝을 신앙으로 마감하였다.
더없이 착하고 아름답던 그를 생각하면서 나는 영국 시인 테니슨의 마지막 시 한 수를 읊조리고자 한다.
"해는 지고 저녁별 반짝이는데/ 날 부르는 맑은 음성 들려오누나/
나 바다 향해 머나먼 길 떠날 적에는/ 속세의 신음 소리 없기 바라네/
움직여도 잠자는 듯 고요한 바다/ 소리 거품 일기에는 너무 그득해/
끝없는 깊음에서 솟아난 물결/ 다시금 본향 찾아 돌아갈 적에/
황혼에 들여오는 저녁 종소리/ 그 뒤에 밀려오는 어두움이여/
떠나가는 내 배의 닻을 올릴 때/ 이별의 슬픔일랑 없기 바라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 파도는 나를 멀리 싣고 갈지나/
나 주님 뵈오리, 직접 뵈오리/ 하늘나라 그 항구에 다다랐을 때.
"(속세를 떠나)
글을 써서 우리 모두를 위로하기 위하여 그는 살았다.
그러기 위해 힘겨운 삶을 꾸려나가야만 했다.
그의 얼굴에는 탈속한 수도자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그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서 그의 최선을 다하였다.
그의 최후가 슬픈 것만은 아니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일러주고 떠났다. '인생은 괴로우나 아름다운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