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2(46) 박정희(1917~1979) (김동길 교수,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0. 27. 17:28

[Why] 나를 감옥에 넣었지만… 보릿고개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조선일보
                             
  • 김동길 단국대 석좌교수·연세대 명예교수
    •          
    입력 2018.10.27 03:00 | 수정 2018.10.27 13:44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46) 박정희(1917~1979)

    [김동길 인물 에세이 100년의 사람들]
    일러스트=이철원
    어느 역사가 말대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나도 생각한다.
    그리고 그 끊임없는 대화의 결과로 어느 정도 미래를 점칠 수 있다고 자부한다.

    1948년에 탄생한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존재는 앞으로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반드시 역사에 남을 것이고 대한민국을 이야기할 때에는 두 사람 이름이 틀림없이 기억될 것이다.

    공화국을 수립하고 1950년에 벌어진 한국전쟁에서 그 공화국을 지켜낸 이승만과,
    찢어지는 가난으로 춘궁기가 되면 풀뿌리, 나무껍질로 연명하던 농촌이
    세끼 밥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운 박정희가 바로 그들이다.

    내가 한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미워한 사람이 박정희였다.
    나의 논리는 단순한 것이었다.
    군사 쿠데타라는 것은
    아프리카나 중동이나 남미 같은 후진국에서나 벌어지는 정치적 불상사라고 믿고 있었고,
    그래도 개발도상국이라고 자부하던 대한민국에서
    군인들이 총을 들고 일어나 정권을 찬탈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받은 민주 교육의 핵심이기도 하였다.

    그는 다섯 번 이 나라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중단 없는 전진'을 강조하며 마치 두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처럼 전진을 잠시도 멈출 수 없다는 듯이
    권력 유지에만 급급한 것으로 내 눈에 비쳤다.

    그는 1970년대에 접어들어 드디어 유신 헌법, 유신 체제를 국민에게 강요하며 이에 관련된 포고령을 내리면서 '유신 헌법은 찬성할 자유는 있지만 반대할 자유는 없다'고 못을 박고
    유신 헌법을 반대하는 자는 15년 이하 징역이 끝나도 또다시 15년은 공민권을 박탈한다고 선포하였다.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던 나로서는 매우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어쩔 수 없이 '유신 헌법은 민주 헌법이 아니다'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고
    대중 강연에서도 서슴지 않고 나의 소신을 피력하였다.
    그때 이미 내 마음속에는 15년 징역을 살 각오가 되어 있었다.

    예측했던 대로 나는 기관원들에게 연행되었고
    서빙고에 자리 잡은 보안사령부 분실에서 1주일가량 조사를 받았다.
    나를 취조하던 문관 한 사람은 스스로 이북 출신임을 털어놓으면서 말했다.
    "김 교수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청와대에서 묶어 오라고 하니 저희 입장도 난처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앞으로 감옥 생활도 할 만하겠다고 느꼈다.

    지금은 역사기념관으로 변모한 서대문 구치소 9사상 18방에 수감되어 살던 어느 날 새벽,
    내가 갇혀 있던 한 평도 안 되는 독방에서 매우 기이한 종교적 체험을 하였다.
    아직도 새벽인데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쳐 그 독방에 마련된 조그마한 비닐 창문으로
    폭풍에 부러진 나뭇가지가 뚫고 들어올 것 같은 무시무시한 날이었다.
    그 비바람이 얼마나 계속되었을까?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면서 그 위기를 헤쳐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비바람이 멎고 얼마 뒤에는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르면서
    어디선가 이런 음성이 들려온다고 나는 느꼈다.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그 음성을 내 귀로 나는 분명히 들었다.
    그 순간부터 그토록 미워하던 박정희에 대한 증오심이 싹 사라지고
    내 마음에는 그에 대한 동정심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박정희는 경상북도 구미에서 넉넉지 못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 그가 동경한 역사적 인물은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우리나라의 이순신이었다.
    그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에서 한 3년 교편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만주 군관학교를 지망하여 합격하였다.
    2년 뒤에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로 전학하여 수석 졸업하였지만,
    일본군에 소속되지 못하고 만주군 대위로 있다가 해방을 맞이하였다.

    아마도 그의 꿈이 나폴레옹처럼 군인이 되어 정치적으로도 크게 성공하는 인물이 되는 것 아닐까.

    어찌 보면 박정희는 천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여수·순천 반란 사건으로 목숨이 경각에 달린 그를 구해 준 것은 백선엽이었다.
    그를 5·16 쿠데타 대표로 모신 것은 김종필이었다.
    그가 18년이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김종필이후락의 충성 경쟁이 크게 주효했다고
    나는 보고 있다.
    백두진, 김용환, 남덕우, 이승윤 등 그의 측근으로 모여든 경제 각료들은 당대의 수재였다.
    그뿐인가. 일본 육사 출신이 한국 대통령이 된 사실에 감격한 탓인지,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우리보다 경제 선진국이던 일본박정희를 적극적으로 도운 사실 또한
    그가 타고난 천운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새마을운동은 한국의 농촌에 큰 변화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과 동남아에서도 크게 환영받은 것이 사실이다.

    1979년 10월 26일, 한국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그때 그 사람'은 김재규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그가 임기를 다 마치고 무사히 은퇴했다 하여도 노후가 과연 평화로웠을까.
    오늘 우리가 겪는 이 시련도 박정희의 18년 집권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가 심혈을 기울여 일군 이 나라의 경제적 번영이 다시 '보릿고개'로 돌아갈 수는 없다 .
    문재인 대통령의 '퍼주기' 때문에 한국 경제가 침몰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박정희 덕분에 나는 이 나라 유명 인사가 되어 90이 넘도록 장수를 누리고 있지만
    그 시대가 돌아오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날이 되돌아오기를 희망합니까?' 하고 누가 물으면 나는 영어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No, thank you."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6/2018102601934.html



    김준모(sagu****)2018.10.2816:49:47신고
    운명運命이 정定해졌다고 해도, 행불행幸不幸은 자신의 태도에 달렸다.
    그러므로, 지키는 피동적 보수적保守的 태도가 아니라 나아가는 능동적 창조적創造的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ㅡ 運命의 큰틀이 정해졌다고 해도 인간에게는 이성理性-자유自由-자유의지가 있다.
    현재 이 순간 모든 것을 자율적自律的으로 결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발현發現 스스로 나아가는 형식이 될 때 그것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스스로 나아가느냐 운명에 끌려가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
    ㅡ 박정희의 삶도, 스스로 나아가는 형식의 주체적主體的 삶이라고 할 수 있다
    ㅡ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열린 자세, 그 잇고 살리는 능동적인 태도는 공명共鳴을 일으키며
    타인의 삶까지 바꾸게 된다. 그것이 산업화 한강의 기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Hyung-YulCho(countrym****)2018.10.2816:24:13신고
    박정희 대통령께서건설을 하기위한 융자를 하려고 여러나라에 요구했지만실패.
    천신만고 끝에 독일에서 4천만불의 신용융자를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노임을 담보로 얻었읍니다.
    우리광부와 간호사들이 분골쇄신 열심으로 일한 덕에 독일에서 좋은 인상을 받아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 독일에 가셨을때에
    서독 대통령이 Autobahn과 Volkswagen은 Hitler가 만든 것이라고 했답니다.
    과연 서독의 대통령한테서 밭은 철강과 고속도로의 Insight를 받은박정희 대통령이 아니였으면
    일본에서 청구권 자금을 받고 어느나라도 도와주지 않으려했던 제철소를 건설할 수가 있었을까요?
    우리가 말하는 친일파였기 때문이고 갈보 파병이라고 공산주의자들이 부르는 월남 파병 국군의 월급으로 고속도로를 건설. 현재 뭉-가가 현금을 싸가지고 일본에 가서 제철소를 발주했던들 일본이
    그런 성의를 보였을지 의심이 갑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지금 세대가 말하는 독재자였고 친일파가 만든 것입니다.
    김준모(sagu****)2018.10.2816:08:40신고
    국가國家를 나무에 비유하면 歷史는 뿌리에 해당한다. 뿌리가 잘리면 나무는 살 수가 없다
    ㅡ 잎과 가지를 어떤 형태로 할 것인가, 어떻게 햇빛을 많이 받아 생존 번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등의 방향方向과 기준基準에 해당하는 것이 理念이다
    ㅡ 그리고 인간사회에는 이 두 가지를 받쳐주는 도덕道德, 도덕률道德律이라는 것이 있다. 
    理念, 歷史, 道德 이 세 가지가 대체로 國家의 정신精神,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ㅡ 精神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허사다
    ㅡ 역사歷史는 빼앗기고 이념理念은 무너졌으며 도덕심道德心은 황폐되었다.
    나라가 존망存亡의 위기에 처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Hyung-YulCho(countrym****)2018.10.2815:45:09신고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께서 헌법에 있는데로 2선 8년만하고 대통령직에서 하야 하셨으면
    위대한 대통령이 돼셨고 그분들이 퇴임후에 존경을 받으셨을까 하는 질문에
    아니올씨다라고 대답이 나옵니다.
    그이유는 한국의 고질적인 부패가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본인이 연임을 하고 싶더라도 협조자가 없었다면 불가능 했던일
    이기붕 국회의장, 김형일, 이후락 등등이 권력을 계속하는데에는
    대통령이 계속 연임을 했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권영달(ydk*)2018.10.2814:25:53신고
    촛불인지 ㅇ불인지를들고 대중을선동해서 잡은 정권하에서도 이런말을하는 자유를가진나라
    (김영삼의덕) 아직 장래는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6/2018102601934.html



    박정희 前 대통령 39주기 추모식… 구미시장은 불참, 경북도지사는 눈물


    조선일보
                                 
               
    입력 2018.10.27 03:00

    이철우 지사 "대통령 추모식인데 與野 막론 참석해야하는것 아닌가"

    "생전에 임께서는 국민이 굶주림 없이 모두가 배불리 잘 살아야 한다는 고뇌에
    단 하루도 편히 잠 못 드시고…."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박정희 대통령 39주기 추모·추도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하던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목소리가 갑자기 끊겼다. 이 지사는 감정이 북받친 듯 안경을 벗고 눈물을 훔쳤다. 좌중이 일시에 숙연해졌다.

    이 지사는 다시 낭독을 시작했으나 곧 다시 중단됐다.
    '이역만리 독일에서 가난의 한을 안고 지하 1000m 갱도에서 탄을 캐고 병원에서 궂은일을 하던 젊은이들과
    부둥켜안고 흘렸던 뜨거운 눈물은'이라는 부분이었다.
    참석자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이 지사는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박 전 대통령을 생각하니 잠시 울컥했다"고 말했다.

    추도사 낭독하다가… -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39주기 추모·추도식’에 초헌관으로 참석한 이철우 경북지사가 추도사를 낭독하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초헌은 신위에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것을 뜻한다.
    추도사 낭독하다가… - 26일 오전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열린
    ‘39주기 추모·추도식’에 초헌관으로 참석한 이철우 경북지사가 추도사를 낭독하다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다. 초헌은 신위에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것을 뜻한다. /김동환 기자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가 연 이날 추도식에는 600여명이 참석했다.

    추도사, 고인 육성 녹음 청취, 추모곡 연주, 묵념, 시민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국회의원은 구미가 지역구인 백승주·장석춘 의원이 참석했다.


    이 지사가 박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영전에 초헌(初獻·신위에 첫 번째 술잔을 올림)을 했다.


    원래 초헌은 관례에 따라 구미시장이 맡아왔다.

    그러나 지난 6월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장세용 구미시장은 이날 참석하지 않았다.

    구미시장 불참은 이번이 처음이다.

    결국 이 지사가 초헌을 대신한 것이다.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은 각각

    자유한국당 김태근 구미시의회 의장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 전병억 이사장이 맡았다.


    백승주 국회의원은 추도사에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박정희 역사를 지우고 구미에서 박정희 흔적을 지우려 하는 일은

    부질없는 정치 낭비"라며 우회적으로 추도식에 불참한 장 시장에게 불만을 표현했다.

    이 지사의 추도식 참석을 앞두고 지난 24일 경북도의회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구미시장이 불참을 결정했는데, 도지사가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것은

    구미와 경북도의 갈등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며

    "경북도가 추모제를 정치적으로 부각시켜 구미 시민들을 분열시킬 우려가 있는 매우 부적절한 결정"이라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이 지사

    "지자체장이라면 여야를 막론하고 어느 대통령의 추모식이라도 참석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이 지사는 다음 달 14일 생가에서 열리는 박 전 대통령 탄신제에서도 생일상을 주관하고,

    같은 날 박정희체육관에서 열리는 정수대전 시상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추도식에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정희 대통령 역사 지우기 반대' 서명운동을 받았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서

    '박정희 지우기 장세용과 촛불 독재 막아내자'

    '박정희의 역사 대한민국의 역사 새마을 폐지 반대'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7/2018102700143.html



    사영진(sa87****)2018.10.2817:04:42신고
    사람들은 배은망덕하다. 지금은 시대를 못따라 갔지만 어떻게 박정희대통열령각하를 배신을 하는가? 그 동안 누린것도 많치 않은가?
    조재환(km****)2018.10.2816:00:12신고
    망덕한 자를 시장으로 뽑은 구미 시민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금수만도 못한 인간들이 아닌가.
    최재호(cjh2****)2018.10.2811:53:26신고
    구미시민은 봉기하라!!!
    billy Park(billypk****)2018.10.2809:48:20신고
    구미시장 이자는 역사 의식도 없고, 오직 이념으로 똘똘 뭉쳐 있는 무식으로 과거에 묻혀있는
    불쌍한 인간이다. 이런자를 구미 시장에 뽑아준 구미 시민들은 각성해야 할 것이다.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런 자를 시작으로 뽑았나요 ?
    염성주(1868****)2018.10.2807:55:19신고
    구미시민이 ,,저런 인간을 ,,시장으로 ,,뽑았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7/201810270014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