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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조]나는 살고 싶었다 (김신조, 조선일보)

colorprom 2018. 10. 28. 17:43

[나 떠나는 날엔] [23·끝] 나는 살고 싶었다


조선일보
                             
  • 김신조 목사·전직 남파공작원
    •          
    입력 2018.10.26 03:00

    김신조

    김신조 목사·전직 남파공작원
    김신조 목사·전직 남파공작원


    함경북도 청진 출신이다.
    열여덟 살 때부터 군생활을 했다.
    1967년 8월 북한 정찰국 소속 124군 1기생으로 뽑혔다.
    체력도 사상도 우등생인 군인 1만여 명이 모여 '박정희 대통령 목따기'를 제일 목표로 삼았다.

    청와대와 가장 구조가 비슷하다는 황해북도 도당인민위원회 2층짜리 건물에서 훈련받았다.
    청와대 정문에서 박정희가 있는 본관 현관문까진 약 1㎞.
    그걸 20㎏짜리 군장을 메고 단숨에 돌파해야만 작전 성공.
    매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그것만 생각했다.

    가끔 자고 일어나면 아침마다 한 명씩 동료가 사라져 있었다.

    살아 돌아오지 못할 거란 생각에 허리춤의 총으로 스스로 뒷동산에서 목을 쏜 이들이었다.

    그저 낙오자라 생각했다.

    난 절대 죽지 않을 거란 이상한 자신감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국을 위해 죽는 게 가장 큰 명예라고 배웠다.

    그걸 곱씹으며 결국 높은 성적으로 훈련을 통과했고 남으로 갈 최후의 31인이 됐다.

    아, 그때 그냥 중간만 했어야 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박상훈

    1968년 1월 21일 경기도 연천군 인근 38선 철조망을 뜯던 그날은 유독 추웠다.

    침투 도중 민간인을 마주쳤고 정신 차렸을 땐 이미 사방이 남한 군인이었다.

    조국의 명예를 위한다면 주머니 속 수류탄으로 자폭해야 했다.


    고정핀을 만지작거리는 0.03초 동안 가족 얼굴이 줄줄이 스쳐갔다.

    여기서 내가 죽지 않으면 분명 북한 정권은 그들을 용서치 않을 테지.

    그렇게 핀 뽑을 각오를 다지는데 불쑥 스스로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 부모·형제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살고 싶다.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


    갑자기 "손 들고 나오면 살려주겠다"는 말이 들렸다. 투항했다.

    갑작스레 찾아온 생에 대한 애착은 기쁘기보단 고달팠다.

    내가 이실직고한 탈출로에는 동료들의 시체가 쌓였다.

    내 존재 자체가 박정희 암살 주모의 증거가 되니 북은 나를 아는 가족들을 모두 총살하고

    우리 집터를 지구상에서 지워버렸다.


    술과 담배에 찌들어 이생이 빨리 다하길 빌 정도 로 매일 지옥 같은 죄책감 속에 살았다.

    다행히 지금의 아내 덕분에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다.

    훗날 TV로 김일성과 김정일의 죽음을 알게 됐다.

    독재자도 결국 죽긴 죽는구나. 역시 사람 앞길은 1분 1초를 모른다고 생각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스스로 택할 줄 아는 자유의 소중함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니 마지막 날까지 죽기보단 살기를 택하고 싶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6/2018102600124.html



    박성국(worldtop****)2018.10.2609:49:24신고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하나님)가 아시나니
    그(하나님)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네 처음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0/26/201810260012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