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광복'과 1948년 8월 '건국'을 대립시키는 논란이 시작된 것은 2008년이었다.
그해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광복절을 앞두고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기념사업 위원회'를 출범시키자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과 야당은 "'건국 60년' 주장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독립운동사 연구자들은 대한민국 건국은 1919년 9월 통합 임시정부 출범이라며 이들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헌법소원은 기각됐지만 정부 기념행사에 야당 등이 불참했고 논쟁은 계속됐다.
학계는 학술회의를 열고 의견 수렴을 모색했지만 '1919년 건국설'과 '1948년 건국설'이 팽팽히 맞섰다.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려는 시도였다.
일부 학자가 이런 주장을 폈고,
정갑윤 의원은 같은 내용을 담은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가 논란이 격화되자 철회했다.
하지만 건국절 제정 움직임은
'1948년 건국설'이 1945년 8월 광복과 독립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리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낳았다.
이후로도 '광복'과 '건국'의 충돌은 잊을 만하면 터져나왔다.
2010년 1월 새로 만들어지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전시 설명에서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기하려다가
광복회의 반발에 부딪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했다.
지난해 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면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란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됐다.
이 문제는 국정교과서가 공개되면 또 한 번 격론이 벌어질 것이다.
온 국민이 하나가 돼 기려야 할 '광복'과 '건국'이 오히려 국가적 분란거리가 돼버린 상황에서
사회학자인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내놓은 '건국과 건국절을 분리해 논의하자'는 해법은
주목할 만하다.
"독립운동의 역사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사실상의 '건국'은 1948년에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고,
광복이 건국보다 더 본원적이고 포괄적이기 때문에 '광복절'로 하는 것이 지혜롭다"는 주장이다.
사실 이런 입장은 학문적으로 타당하고 국민의 역사 인식에 부합되는데도 양 극단이 대립하는 바람에
그동안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역사적 정통성은 뚜렷하지만 영토·국민·주권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건국'으로 보기는 어렵다.
1949년 10월 국경일로 제정된 광복절은 1945년 8월 '해방'과 1948년 8월 '건국'을 아울러 기념하는 날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해방'만 강조되고 '건국'이 퇴색했다면 '건국'을 다시 부각시키면서 균형을 맞추면 된다.
그런데 '광복'과 '건국'을 함께 살리려는 시도가 '절충적'이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좀 더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 원로 역사학자인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의
"건국의 강조가 대한민국의 뿌리를 잘라내는 방향으로 가면 위험하다.
임정을 잘라내면 친일파가 살아난다"는 경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한 중견 역사학자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과 1948년 건국을 각각 대한민국의 '잉태'와 '탄생'에 비유했다.
이 기간 대한민국을 위해 공헌한 민족운동가들을 '건국의 아버지들'로 받든다면 양자를 연결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난제인 '광복'과 '건국'의 대립이
식민지 시기 국내외 민족운동과 대한민국의 연속성을 분명히 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고 국민 통합적으로 해소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