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8.08.28 03:09
카를 마르크스 '고타 강령 비판'
이달 초 몽골에서 현지인 가이드가
시베리아행 기차가 러시아 국경에서 입국심사를 위해서 2~3시간 정차할 것이라고 했을 때,
'무언가 잘못 말한 것이겠지'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우리 기차는 한 시간 남짓 섰는데, '문제' 승객이 발견될 경우에는
아예 그 문제가 해결되거나 또는 그곳에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나올 때까지 출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몽골에서 피곤한 몸으로 기차에 올랐는데, 기차의 출입 계단이 어찌나 가파른지,
몽골에서 피곤한 몸으로 기차에 올랐는데, 기차의 출입 계단이 어찌나 가파른지,
위에서 누가 짐을 받아 올려주지 않으면 한 손에 짐가방을 들고 오르는 게 불가능했다.
기차 안에는 영어로 된 안내판이나 지도 하나도 없었고 어떠한 안내방송도 없었다.
승무원들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다.
화장실은 오물이 그냥 선로로 떨어지게 돼 있어서 기차가 일정 속도 이상으로 달릴 때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한 역에서 20~30분씩 정차하기도 하고 국경에서는 1시간 이상 정차해서 여러 승객이 발을 동동 굴렀다.
국경 검문소에 기차가 멎자, 기차 안에 삼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냥 좀 불친절한 승무원들과는 달리 말쑥한 제복의 군인들이 올라와서
비좁은 4인용 객실 내 승객들의 여권을 검사했다.
한밤중이어서 이미 이층침대의 위 칸에서 잠들었던 승객들은 곡예 하듯 내려와야 했다.
아래 칸의 승객들은 기립했고, 그냥 서서 여권을 내밀면 되는 것이 아니고 검사관의 눈을 쳐다보아야 했다.
'Stand up! Look at me!'라는 명령에 불복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를 보고 싶은 호기심이
피어올랐지만 공연한 만용을 부렸다가 사무실로 불려 내려가고 모든 승객의 여정에 방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참았다.
나중에는 승객 네 사람을 다 좁아터진 복도로 나오라고 하고는 침대 아래 칸을 들어 올려서
그 아래에 있는 짐칸을 검색했다.
4인용 객실이 스무 개가량 있는 한 량을 다 검색하는 데 1시간 정도 걸렸다.
지극히 순조로운 검색이었는데도. 관리들이 사라진 후 여러 방에서
"사회주의여 영원하라!"는 저주가 터져 나왔다. 러시아 국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마르크스는 '고타 강령 비판'에서 공산주의의 목표를
'모두에게서 능력만큼, 모두에게 필요만큼'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검문검색은 누구의 필요를 충족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 중에 사회주의를 흠모하는 사람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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