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세상]

[중국]토사구팽당한 곡학아세 (김기철 위원, 조선일보)

colorprom 2018. 8. 6. 15:59


[만물상] 토사구팽당한 곡학아세


조선일보
                             
             
입력 2018.08.06 03:16

3월 초 중국에서 다큐멘터리 하나가 떠들썩하게 개봉했다. 제목은 '대단하다, 우리나라'.
관영 CCTV가 제작한 이 영화는 시진핑 집권 5년 치적을 자랑하는 내용이었다.

지름 500m짜리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 '텐옌(天眼)',
홍콩·주하이·마카오를 잇는 55㎞ 세계 최장 해상 대교 건설 같은 발전상을 과시했다.

인민일보는 나흘 만에 300만명이 관람했다며 홍보에 열을 올렸다.
최고 지도자 찬양으로 분위기를 띄운 뒤 전인대와 정협(政協)이 열렸고 시 주석의 장기 집권 안건이 통과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후안강(胡鞍鋼) 칭화대 교수에게서 이론적 근거를 빌려 왔다.
올해 예순다섯 후 교수는 한 포럼에서
중국이 경제 실력, 과학기술은 물론 종합 국력에서도 이미 미국을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후 교수의 '중국 굴기(崛起)'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내건 시진핑의 슬로건을 뒷받침했다.
다들 그를 중국의 대표적 관방(官方) 지식인으로 꼽았다. 

[만물상] 토사구팽당한 곡학아세
▶엊그제 칭화대 동문들이 후 교수 파면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총장에게 보냈다고 한다.
"후안강이 중국이 미국을 추월했다는 주장으로
국가 정책을 오도하고 국민을 현혹시켰으며 다른 나라의 경계심과 두려움을 촉발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후 교수가 엉터리 지표에 따라 잘못된 계산으로 미·중 국력 역전을 떠들었다고 했다.

▶후 교수는 스스로 중국 지도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 있는 학자임을 과시했다고 한다.

발표문에 최고 권력기관인 당 정치국 회의에서 강의한 내용이라고 각주(脚注)를 다는 식이었다.

한국 대기업이나 대학 세미나에 단골로 초청도 받고, 국내 미디어에도 자주 등장할 만큼 스타였다.

'2020년 중국'을 비롯, 저작도 여럿 번역돼 있다.

중국은 격변기마다 지식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마오쩌둥이 역사학자 오함의 논문을 문제 삼아 문화혁명을 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후안강은 한때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 학자였다.

지금은 중화 제일주의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분류돼 '곡학아세'(曲學阿世) 장본인이란 비난이 쏟아진다.


미·중 무역 전쟁을 겪으며 국력 차이를 깨달은 베이징에 정책을 재조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다.

그가 통계와 자료를 왜곡해 아부를 했을 수도 있고,

권력이 그를 필요에 따라 쓰다가 이제 버리려는 것일 수도 있다.


중국이 오만하게 나선 것이 시진핑의 탓이지 어떻게 일개 학자의 탓일까.

'곡학아세'가 '토사구팽'당하는 현장을 보는 것 같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05/20180805021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