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스웨덴의 저출산 홍보전
입력 2018.07.27 03:12
"자기야, 퇴근하고 애 좀 봐. 나 늦을 거 같아."
상사에게 깨지고 야근하려던 남편에게 날아든 아내의 카톡이다.
남편이 "나도 늦을 것 같은데" 하자 아내는 "그럴까 봐 육아휴직 내랬잖아"라며 짜증을 낸다.
남편은 생각 끝에 케첩을 뿌리고 피를 토한 척 꾀병을 부린다.
놀란 상사는 "증상을 보니 에볼라에 걸린 것 같다"며 119를 부른다.
구급대원에게 끌려가면서 남편은 속으로 절규한다. "에볼라가 아니라 그냥 '애 볼라고' 한 건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최근 홍보 목적으로 만든 4분 30초짜리 웹드라마 'I와 아이'의 한 장면이다.
이 드라마는 예고편이 유튜브에서 조회 수 160만회를 넘길 만큼 주목받았다.
출산과 육아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웹드라마 제작에는 가수들도 참여했는데, 육아의 기쁨을 담은 노래를 만들어 무료 공개했다.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를 풀기 위해 이런 감성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적 지원에 초점을 맞춘 저출산 대책들이 힘을 못 쓰는 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많은 부부가 육아 비용이나 경력 단절 등 손해를 따져 아이 갖기를 꺼린다.
이들을 붙잡고 "난임 시술비 주겠다" "주거비 지원하겠다"고 해봐야
"손해 볼 일을 왜 하라는 거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저출산 해결에 연간 30조원씩 쓰겠다는데도 닫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사회를 위해 애 낳으라는 거냐"라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지난 반년 간 저출산 문제를 취재하면서 만난 엄마, 아빠들에게서 자주 들은 말이
"아이 키우는 게 연애와 비슷하더라"는 거였다.
"돈 많이 들고 몸도 고되지만, 아이 키우며 맛보는 재미와 행복으로 더 큰 보상을 받았다"며
지레 아이 갖기를 포기하는 세태를 안타까워했다.
이런 경험담을 접하면서 아이 낳기를 주저하는 젊은 부부들에게
"형편과 상관없이 아이가 주는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게 큰 숙제라고 생각했다.
스웨덴은 성 평등 선진국으로 손꼽히지만 1970년대만 해도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출산을 꺼렸다.
그런데 상남자 이미지로 인기를 끈 역도선수가 아이를 정성껏 돌보는 내용의 정부 홍보 영상이 제작된 뒤
상황이 반전됐다.
라르스 다니엘손 주EU 스웨덴 대사는
"당시 홍보 영상이 인기를 끌자
스웨덴 남자들 사이에 '아이와 함께하는 아빠가 진짜 남자'라는 인식이 퍼졌다"고 말했다.
저출산위는 출산 양육 부담, 주거비 문제 등을 다루는 웹드라마를 4편 더 만들 예정이라는데
이런 '감성 마케팅'의 묘미를 적극 살리면 어떨까.
이성으로 풀어서 답이 보이지 않을 땐 스웨덴처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다가가야 실마리가 풀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