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일본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도쿄 외곽의 저렴한 집을 얻은 터라 에어컨이 없었다.
그때 막 일본에서 판매를 개시한 한국 에어컨을 구입했다.
설치 당일 정확히 약속 시간에 맞춰 초인종이 울렸다. 20대 후반 정도의 설치기사였다.
90도 인사와 함께 명함을 건네더니,
작업 내용을 설명하고 작업 중 소음, 먼지 등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회사 로고가 인쇄된 깨끗한 오버롤 작업복 차림에, 각종 공구가 가지런히 정렬된 두툼한 가죽제 툴벨트를
허리에 감은 모습이 영화 '하이눈'에 나오는 게리 쿠퍼보다도 단정하고 프로다워 보였다.
두 시간여에 걸쳐 실내기와 실외기를 설치하고 배관을 연결하는데 정말로 먼지나 소음이 안 나도록 조심조심 일하는 모습이 한국에서의 경험과는 너무 달라 위화감이 들 정도였다.
가장 감동한 것은 작업이 끝난 후였다.
가방에서 작은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내더니
작업 과정에서 나온 먼지와 각종 전선 피복 조각 등을 하나하나 다 치우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쓰레기를 담을 비닐봉지도 미리 준비해왔다.
청소를 마무리한 다음 박스에서 리모컨과 설명서를 꺼내 사용법과 주의사항 등을 알려주고,
문제가 있으면 명함 연락처로 연락을 달라는 안내를 마친 후 박스와 스티로폼을 모두 챙겨서 돌아갔다.
90도로 인사를 하고 떠나는 그를 배웅하고 둘러보니, 언제 에어컨 설치 작업을 했나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가 없었다.
8평형 에어컨 구입에 내가 지불한 돈은 설
치비 포함 4만3000엔. 한국보다 그리 비싸지도 않았다.
'태도'와 '형식'을 고객 만족의 중심에 위치시키고, 그를 각자의 인성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매뉴얼과 트레이닝을 통해 구현하는 정교한 일본식 서비스 문화의 실체를 체험한 느낌이었다.
에어컨 설치 작업 하나가 그토록 인상적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일본 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내게는 신선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