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

[책]『잊혀진 질문』-차동엽 신부 (명진출판사)

colorprom 2018. 6. 11. 13:56

                         

[j Story] 인간 이병철 “신이 있다면 자신의 존재 왜 드러내지 않나”

[중앙일보] 입력 2011.12.17 01:15 / 수정 2011.12.17 01:15

이병철 회장, 타계 한달 전 천주교에 24개항 종교 질문 … 차동엽 신부, 24년 만에 답하다

1987 이병철 회장 “신이 인간 사랑한다면 왜 고통·불행 주는가 ”
2011 차동엽 신부 “신이 준 건 자유의지 … 그것 잘못 쓸 땐 고통 ”

 
잠자던 질문이 눈을 떴다. 무려 24년 만이다.
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1910~87) 회장이 타계하기 한 달 전에 천주교 신부에게 내밀었던 종교적 물음이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24개의 질문은 A4용지 다섯 장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신(神)이 존재한다면 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가?”라는 첫 물음부터
“지구의 종말(終末)은 오는가?”라는 마지막 물음까지,
경제계의 거목이 던졌던 종교적 질문에는 한 인간의 깊은 고뇌가 녹아 있다.
그 고뇌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종교적 물음을 정면으로 관통한다. 
 
이 질문지는 1987년 ‘천주교의 마당발’로 통하던 절두산 성당의 고(故) 박희봉(1924~88) 신부에게 전해졌고, 박 신부는 이를 가톨릭계의 대표적 석학인 정의채(86·당시 가톨릭대 교수) 몬시뇰에게 건넸다.
정 몬시뇰은 답변을 준비했고, 조만간 이 회장을 직접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다 이 회장의 건강이 악화됐다. “건강이 좀 회복되면 만나자”는 연락이 왔지만, 이 회장은 폐암으로 한 달 후에 타계하고 말았다.

문답의 자리는 무산됐다. 정 몬시뇰은 20년 넘게 질문지를 간직했다.
그러다가 2년 전 제자인 차동엽(53·인천가톨릭대 교수·미래사목연구소장) 신부에게 질문지가 들어갔다.
차 신부가 여기에 답을 준비했다. 그 답을 모아 연말에 『잊혀진 질문』(명진출판사)이란 책을 낸다.
 
8일 경기도 김포의 미래사목연구소에서 정 몬시뇰차 신부를 단독 인터뷰했다.
가톨릭 신자이자 서강대 총장을 역임한 손병두(70) KBS 이사장도 자리에 함께했다.

교계의 최고 원로인 정 몬시뇰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차 신부님에게 넘어갔네요”라고 운을 뗀 뒤
“이건 이병철 회장이 죽음을 앞두고 한 인간으로서 던졌던 인간과 종교에 대한 깊은 물음이다.
차 신부님이 요즘 세대의 젊은이들도 공유할 수 있게끔 잘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차 신부
“몬시뇰께선 제 스승이시다. 종종 뵙고 교감한다. 몬시뇰께 배운 가르침을 제가 대신 풀어냈을 뿐이다”고
답했다.

손 이사장은 삼성그룹 비서팀에서 10년간 이병철 회장을 보필했다.
탁자 위에 놓인 질문지를 본 손 이사장은
“당시 회장 비서실에 있었던 필경사의 필체가 틀림없다. 딱 보니 알겠다.
이 회장께 보고서를 올릴 때면 필경사가 깔끔하게 다시 써서 올렸다.
오랜만에 이 글씨를 보니 참 반갑다”고 말했다.
 
질문지를 손에 들고 쭉 훑어보던 차 신부
“이 질문을 깊이 파고들어가 보라. 모든 사람이 각자의 자리에서 던지는 종교적 물음과 만나게 된다”
말했다.

마주 앉은 차 신부에게 물었다.
이병철 회장이 던졌던 인간과 종교, 그리고 신에 대한 ‘잊혀진 질문’을 24년 만에 다시 던졌다.
차 신부는 “이 질문지에는 지위고하도 없고, 빈부도 없다. 인간의 깊은 고뇌만 있다.
나는 그 고뇌에 답변해야 하는 사제다. 그래서 답한다”고 말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첫 질문은 둘러가지 않았다. 바로 과녁의 정중앙을 향했다.
“신이 있는가. 있다면 왜 나타나지 않나.” 역사 속에서 수없는 무신론자가 던졌을 물음이다.
무신론자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유신론자도 기도 속에서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이 회장의 첫 질문은 그렇게 단도직입적이었다.    

“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청영역 밖의 소리는 인간이 못 듣는다. 그러나 가청영역 밖의 소리에도 음파가 있다.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다. 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가령 개미코끼리를 보라.
개미는 이차원적인 존재다. 작고,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에겐 평면만 존재한다.
입체도 개미에겐 평면이 된다.
그런 개미가 코끼리 몸을 기어 다닌다.
개미코끼리 몸을 느낀다. 그러나 코끼리의 실체를 파악하진 못한다.
왜 그런가. 개미의 인식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코끼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결국 개미는 코끼리를 모르는 건가. 
  
“아니다. 개미는 코끼리를 느낀다. 코끼리의 부위에 따라 다른 질감을 느낀다.
신과 인간의 관계도 비슷하다. 인간도 그렇게 신을 느낀다. 우리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할 뿐이다.
신은 자신의 존재를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신은 이미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 물리학에선 우주의 차원을 11차원이라고 한다. 신이 존재한다면 그 너머의 차원까지 관통할 것이다.
3차원적 존재가 11차원적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겠나.
흑백TV로 3D컬러 영상물을 수신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성경에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돼 있다.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처음 기록됐다.
그리스어로 ‘말씀’은 ‘로고스(Logos)’다. 로고스의 뜻이 뭔가. ‘원리’다. 다시 말해 ‘존재 원리’를 뜻한다.
그러니 요한복음서의 첫 구절은 ‘태초에 존재 원리가 있었다’가 된다.
우주에는 기가 막히게 섬세한 질서가 있다.
결국 그러한 존재 원리, 그리도 섬세한 질서의 근원이 무엇인가라는 거다.”
    
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24개 물음을 담은 질문지. A4 용지 다섯 장 분량이다.

●그 근원은 뭔가.   

“만물의 창조주로서 신의 존재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체험’의 문제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신을 만날 건가의 문제다. 만나면 증명이 되는 거니까.
그럼 신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가톨릭 신학생 시절, 수업 시간에 은사 신부님을 통해 고(故) 최민순(1912~75) 신부님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최 신부님은 아침 수업에서 이런 시상(詩想)을 내놓았다고 한다.
‘꽃을 본다/꽃의 아름다움을 본다/꽃의 아름다우심을 본다.’
이 구절을 듣는 순간, 제겐 충격이었다.” 
   
●왜 충격이었나.   
“우주의 철리(哲理)가 사통팔달로 뚫리는 기분이었다.
꽃의 아름다움, 나무의 아름다움, 땅의 아름다움, 하늘의 아름다움이 모두 하나의 고백이다.
변화하는 이 아름다움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누가 만들 수 있겠는가.
결국 한 송이 꽃을 통해서도 신을 체험할 수 있고, 그 체험이 자신에겐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 되는 거다.”    

이 회장의 물음은 ‘창조’에서 ‘진화’로 이어졌다.
신의 창조와 인간의 진화는 양립할 수 있을까. 아니면 철저하게 양자택일의 문제일까.
그건 신학과 물리학이 만나는 가장 현대적인 접점이기도 하다.   

차 신부‘다윈 탄생 200주년, 『종의 기원』 150돌, 물리학자-신부의 열린 대화’라는 대담을
중앙일보(2009년 2월 5일자 21면, 9일자 25면)에서 한 적이 있다.
차 신부는 물리학계의 거두인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대담에서
“신이 인간을 빚었나?”라는 물음에 소상하게 답한 바 있다.
당시 대담 내용을 끄집어내며 차 신부는 답을 이어갔다. 
   
“‘하느님이 실제 진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이해 방식은 3차원적 사고에 갇힌 거다.
그런 생각은 신앙적으로 더 큰 잘못이다.
초월적 존재의 하느님을 인간의 3차원적 사고 안에 가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걸 떠나 계신 분이다.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건 단지 은유적 표현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진화의 과정을 ‘흙으로 빚었다’는 말로 축약했다고 봐도 된다.

창조론진화론은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지구의 환경, 우주의 환경은 끊임없이 변한다.
신이 창조한 생명체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생존하려면 끝없이 진화해야 한다. 그런 진화를 인정한다.
그러나 진화론창조론이란 더 큰 울타리 안에 포함된 개념일 뿐이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무신론자가 늘어날까.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있다. 1916년 미국 과학자 중 40%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당시 조사를 했던 제임스 류바는 미래의 과학자는 무신론자 비율이 크게 늘어날 거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1997년 영국의 과학잡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딴판이다.
81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미국 과학자의 40%가 여전히 유신론자라고 나왔다.
그 81년간 과학 발전의 총량은 엄청났다.
그럼에도 신의 존재를 믿는 과학자의 비율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과학과 종교, 대립적 관계가 아닌가.
 
“과학과 종교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과학이 발달할수록 신의 섭리가 과학을 통해 더 명쾌하게 증명될 것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고 말했던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약간의 과학(A little science)은 사람을 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그러나 더 많은 과학(More science)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돌아가게 한다.’”    

이 회장의 질문은 이제 ‘하늘과 땅’을 물었다. ‘신과 인간’을 물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물결과 고통의 물결을 번갈아 물었다.
신이 사랑한다는데, 왜 우리는 고통스럽냐고.
신이 있는데, 왜 세상에 악인도 있느냐고. 그걸 물었다.       

“어쩌면 우리가 신을 사랑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가 바로 고통이다.
이슬람 최고의 신비주의 시인 루미(1207~1273)는 이렇게 말했다.
‘때로 우리를 돕고자, 그분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든다/
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생명이 피어난다/
눈물이 떨어지는 곳이면 어디든/신의 자비가 드러난다.’

신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을 한다.
‘신을 믿을 건가, 말 건가’조차도 선택의 대상이다.
고통의 뒤에는 선택이 있고, 그 선택 뒤에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럼 고통은 언제 오나.   

고통은 주로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 그 섭리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신의 섭리, 우주의 존재 원리, 그 궤도를 다시 찾으라는 신호다.
가령 불에 손을 넣으면 어떻게 되나. 뜨겁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뺀다.
만약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손이 다 타고 만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한 신호다.”
   
“신이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다. 신은 자유의지를 주었을 뿐이다.
우리 같은 신부는 독신이라 잘 모르겠지만, 부부관계도 비슷하리라 본다.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가두고 소유하려고 하고, 어떤 부부는 상대방을 믿고 자유를 준다.
최고의 사랑은 결국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사랑이다. 그 자유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랑이다.
그러니 신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지 않나.
그 사랑을 엉뚱하게 쓰는 이들이 악인이 될 뿐이다.”
   
“‘’는 히브리어로 ‘하타(Hata)’, 그리스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다. ‘과녁을 빗나간 상태’란 뜻이다.
과녁이 뭔가. 기준이다. 어떠한 기준을 벗어난 상태가 라는 얘기다.
우주에 깃든 섭리, 그런 섬세한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다.

그럼 신은 왜 우리가 죄를 짓게 내버려두실까.
그 역시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은 1000년 동안 사람의 입을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기록한 작품이다.
이것을 짜맞추고, 모자이크해 보니 어떤 그림이 나왔다. 그 그림을 봤더니 ‘하느님 그림’이었다.
긴 세월, 여러 사람, 다양한 음성을 통해 나온 말이 어쩌면 그렇게 합치될 수 있을까.
물론 표본오차 수준의 편차도 약간 있다. 그건 성경을 기록한 사람의 어투와 성격 때문이다.

신·구약성경에는 전체 이야기를 관통하는 일관된 기조가 있다.
그걸 볼 때 성경의 원저자는 저 위에 계신 분이고, 성령이고,
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입과 손과 가슴을 빌려준 것이라고 본다.”    

‘천주교’란 과녁을 향하던 이 회장의 질문은 이제 ‘종교’라는 더 큰 과녁으로 시위를 돌렸다.
종교가 뭔가, 왜 필요한가, 영혼이란 뭔가, 각 종교는 무엇이 같고, 또 무엇이 다른가.
불과 서너 가지 질문에 ‘종교학 개론’의 뼈대가 담겨 있다.
   
“벼락이나 천둥이 칠 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을 찾는다.
마취 직전, 수술대에 누운 이들도 기도를 한다.
무신론자도 슬픔에 직면하면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원망한다.
그래서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말도 있다.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다. 그래서 무한을 동경한다. 영원을 갈망한다.
그런 염원이 하나의 형식이 됐을 때 종교가 된다.” 
   
●종교는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인간은 영원을 찾다가 자꾸 벽에 부딪힌다. 부딪힐수록 무한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결국 동경하던 무한성에 ‘’이란 이름을 붙인 거다.
그 무한성을 인격체로 여긴 사람들이 그걸 숭배하게 되고, 도움 받기를 청하는 거다.
자신이 그 벽을 넘어설 수가 없으니까. 결국 인간은 종교라는 터널을 통해 영원을 갈망하는 거다.”    

그리스 철학은 유신론이 아니라 자연철학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세 가지 혼이 있다고 한다. 생혼(生魂)과 각혼(覺魂), 그리고 영혼이다.

모든 생물의 중심에 생혼이 있다고 한다. 나무나 풀에도 생혼이 있다. 나무의 수명이 다하면 생혼도 죽는다.
다음은 각혼이다. 보고 듣고 느끼고 감각하는 동물에겐 생혼과 각혼이 있다.
그리고 사람에겐 생혼과 각혼에다 영혼까지 있는 거다.
물질계를 초월하는 생명현상, 그게 영혼이라는 거다.
영혼이 제대로 작동할 때 우리는 본래의 인간에 더 가까워진다.”
   
“크게 계시 종교자연 종교가 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계시 종교다. 힌두교와 불교는 자연종교에 속한다.”    

차 신부의 설명은 간략했다. 이웃 종교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라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항목이었다. 질문은 다시 ‘천주교’를 향했다. 이번에는 ‘구원의 범위’에 대해서였다.
종교가 없어도, 혹은 달라도 착한 사람들. 신은 그들을 어떻게 보는지, 이 회장은 물었다.
   
“예전에는 ‘천주교밖에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거의 구원이 없다는 수준으로 얘기했다.
그러다 바뀌었다.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전환점이었다.
천주교가 좀 더 합리적으로 반성하고, 성찰하고, 다른 종교의 면면을 공부해 보니
천주교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던 거다. 그 후에 입장이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나.
 “
‘타 종교인의 구원 여부는 신이 결정할 문제다. 우리는 모른다’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65년 이전에는 개신교도 다른 종교와 구분 없이 남으로 봤다.
그런데 65년 이후에는 ‘갈라진 형제’라고 부른다.”        

“앞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대신하겠다. 내용이 겹친다.”
   
“죽음 너머의 세계는 객관적 검증이 불가능하다.
이 물음에는 나의 주관적인 신념으로 답을 할 수밖에 없다. 이 한계를 미리 고백한다.
교황 요한 23세는 임종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이제 나의 여행 채비는 다 되었다.’
우리는 죽음을 ‘돌아가셨다’고 표현한다. 왔던 곳으로 다시 갔다는 뜻이다.
육체는 흙에서 왔으니까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느님에게서 왔으니 하느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강한 증거가 있나.
 
“12사도의 죽음이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는 자발적인 죽음을 택했다.
베드로는 로마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안드레아는 X자형 십자가에서 순교했다.
12사도가 모두 그랬다.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왜 그들은 죽음을 불사했을까.
답은 하나다. ‘영원한 생명은 있다.’ 이걸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12사도의 죽음이야말로 강력한 증거다.”    

“개그 프로를 보면 ‘이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가 있었다. 불공정한 사회라는 거다.
악인이 버젓이 잘살고 있을 때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의심한다.
부조리 현장에서 신이 침묵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공정 사회를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탐욕이다.
한국이 불공정 사회라면 그걸 책임지고 개선해야 할 주체는 신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앞서 말했듯이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 그래서 죽음의 순간까지 기회를 주는 거다.
죽기 전에 악인이 회개할 수도 있고, 새롭게 출발할 수도 있는 거다.
여기서 우리는 오히려 신의 자비를 본다. 은 사후 또는 종말 때 주어진다.”    

‘한국 최고의 부자’가 부자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성경 속의 부자와 바늘구멍. 이 회장의 물음은 우리에게 ‘진정한 부자란 무엇인가’를 되묻는다.       

“그건 ‘나눔’을 강조한 예수님의 메시지다.
부자에도 여러 종류의 부자가 있다. 이웃과 잘 나누는 부자가 있다면 당연히 천국에 가지 않겠나.
주위를 보라.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선인이 되기도 하고, 악인이 되기도 한다.
100% 선인도 없고, 100% 악인도 없다. 부자도 늘 그런 선택 앞에 선다.
그 선택에 따라 부자는 선인이 될 수도 있고, 악인이 될 수도 있다.”    

“이 물음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살아보면 상당히 질서가 있다. 물론 마피아가 있지만, 그건 극소수의 범죄집단일 뿐이다. 이탈리아 국민의 평균적 윤리의식, 그들의 기준은 엄정한 편이다.”        

“이 질문에 100% 동의한다. 다를 바가 없다. 똑같다.
이성감성, 그리고 의지가 어우러질 때 조화로운 신앙이 가능하다.
이 셋 중 하나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몽상가나 다혈질 행동파가 될 수도 있다.
주로 ‘오직’을 강조하는 사람이 광신도가 될 소지가 많다.
오직 믿음, 오직 실천, 오직 성장, 오직 복지, 오직 우(右), 오직 좌(左), 오직 사랑, 오직 정의도
다 위험한 것이다.
종교든, 이념이든 보편성을 잃을 때 미치게 되는 거다.”        

공산주의는 천주교 신자가 택한 것이 아니다. 천주교에서 이탈한 무신론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거다.
공산권에서 종교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협력 관계나 우호적 관계가 아니었다.”    

1989년에 사회주의권 몰락이 시작됐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은 사회주의권이 몰락하기 2년 전에 던진 것이다.
질문의 시점과 답변의 시점에 시대적 시차는 있다.        

“통계청 조사를 보면 종교인의 범죄 비율보다 비종교인의 범죄 비율이 더 높다.
그나마 종교인이 범죄 수치를 낮춘 거다. 그럼에도 이 질문이 시사하는 바를 깊이 수용할 필요가 있다.
종교인이 더 사회정화 기능을 하지 못하고, 더 성숙하게 살지 못하고, 좀 이기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형식만 그리스도인이지, 내용은 안 바뀐 경우도 많았다. 빛과 소금 역할,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교황의 무오류권(무류권)을 말한다. 가톨릭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오해가 있다.
무오류권은 교황좌에서 특별한 교리, 엄중한 진리의 문제에 관해 천명할 때 무오류권을 발동한다.
주로 기준이 애매할 때 이 기준을 따르라고 천명하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 발동된다.
그러나 무오류권이 발동된 사안도 시간이 지나면 수정될 수 있다.
‘타 종교를 어떻게 볼 것인가’도 무오류권이 발동된 사안인데, 결국 수정했다.”    

신부예수님을 대리해 양떼를 돌보는 사람이다.
1965년(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만 양떼였다.
65년 이후에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양떼다.
수도원 소속인 수녀수사는 다 수도사다.
그들은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해 영혼의 갈무리를 하는 사람이다.
신부와 수녀의 독신은 ‘나는 여기에만 헌신합니다’라는 서원이다.
기혼과 독신이 섞여 있다가 13세기부터 사제독신이 됐다.
수도사는 그 이전부터 독신수도 생활을 했다.”        

“이 문제는 역사성 안에서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노동 착취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전태일씨 등은 하루 15시간 이상 노동했으니까.
그런데 모든 기업주가 착취자라고 하면 곤란하다.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는 어디나 있다. 좋은 기업인도 있고, 나쁜 기업인도 있다. 그건 개별적 사안이다.
교회는 자본주의 체제를 부인하지 않는다.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했다.
다만 교회가 자본주의 체제의 부작용이나 폐해에 관심을 갖는 건 맞다.
거기에 약자와 소외된 자가 있기 때문이다.”        

"종말이 언제일까. 내가 죽는 날이 종말이다.
물론 역사적으로는 오메가 포인트(종말의 시점)가 있을 거다. 지구의 수명이 다하는 날이 올 테니까.
성경에는 종말이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이 종말을 보는 시각이 좀 다르다. 파국만은 아니다.
원을 위한 최종 추수의 시간으로도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갈린다. 종말을 기대하는 사람과 두려움에 떠는 사람.
신앙인의 특권은 종말을 희망사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종교는 결국 종말 너머를 향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질문은 ‘마지막’에 관한 것이었다.
타계 한 달 전, 24개의 질문을 던진 이 회장에게 그 마지막은 어떤 풍경이었을까.
질문지는 우리에게 그걸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마지막’이라 부르는 곳, 종교에선 ‘또 하나의 시작’이라고 부르는 곳.
어쩌면 마지막과 시작이 하나일지 모르는 곳. 그곳을 묵상케 한다.
동시에 이 회장의 질문은 마지막을 향해 한발씩 나아가는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 건가 하는
치열한 물음으로 되돌아온다.   

이병철 회장   
삼성 창업주인 이 회장은 1910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 87년 타계했다. 호는 호암(湖巖).
유교적 가풍의 집안에서 성장했고, 일본 와세다대에서 공부했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설립하고, 42년 조선양조를 인수하는 등 일제시대에 민족자본을 형성했다.
여기에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란 호암의 지향이 깔려 있다.

평소 호암은 “내가 뽑은 인재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아름답고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인재제일(人材第一)’과 ‘사업보국’은 삼성그룹의 경영철학이 됐다.

초대 전경련 회장을 역임했다.
 
호암은 타계 2년 전에 폐암 진단을 받았다.
진단 직후에 호암은 일본인 저널리스트 야마자키 가쓰히코와 만나
좋은 죽음’이란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호암은 “인간인 이상 생로병사를 피할 수는 없겠지요. 불치병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살아서 아등바등하는 흉한 꼴만은 남들에게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뿐”이라고 답했다.
그걸 듣고서 야마자키
사는 순간까지 삶만을 생각하며,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구도자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저서에 『우리가 잘사는 길』 『호암자전(湖巖自傳)』 등이 있고,
호암 평전으로 『크게 보고 멀리 보라』(야마자키 가쓰히코 지음)가 있다.    

차동엽 신부   
   
1958년생. 서울 관악산 기슭의 달동네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지게로 연탄과 쌀을 배달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난 때문에 공고에 진학했고,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 다시 가톨릭대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했다.
1991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세례명은 로베르토다.
 
미국 보스턴 대학에서 수학하고,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서 성서신학으로 석사, 사목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천 가톨릭대 교수이며, 성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에 “차 신부의 활동을 지지한다”고 말하곤 했다.
연구소 후원 계좌로 ‘추기경’이란 직함 없이 ‘김수환’이란 이름만 적어서 100만원을 입금한 적도 있었다.
이 사실은 뒤늦게 확인됐다.    
   
차 신부의 대표 저서는 『무지개 원리』다. 지금껏 150만 부가 팔린 천주교계 최대 베스트셀러다.
이 밖에 『바보 Zone』 『뿌리 깊은 희망』 『행복선언』 등이 있다.
20대부터 간염과 간경화를 앓고 있지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질문

고 이병철 회장이 듣고 싶어했던 종교와 신에 대한 질문 
                                             

삼성의 고 이병철 회장이 생전에 듣고 싶었다던 24가지 질문중에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정말 부자는 천국에 갈수 없나요?



매칭된 토픽종교 2013.10.18 수정됨 최초등록일 2012.01.01 23:27 
                                   
최종수정일 2013.10.1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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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가지 종교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




●종교와 세상 정신


나는 영적 세계의 두 가지 존재를 알고 있으며, 그중 하나님의 소속들을 존경한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인정하고 싶은 존재가 있으니, 석가남사고, 이병철, 성철스님이다.

그 이유는 솔직하니까.


이병철 씨가 질문한 것은 석가의 의문점과 같고, 고통으로 인해 종교 질문이 생각나게 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자기는 알지 못했다. 석가남사고도 자기 아는 데까지만 말했다.

신을 말하기 전에 먼저 종교의 처음부터 알아야 한다. 누가 정답을 줄 것인가?(고전 2:10 참고)


1.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신을 증명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다.

신이 자기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은 신과 사람이 서로가 원수(적)가 되었기 때문이다.


신(영)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생명체인 창조주 하나님의 신이고, 하나는 피조물인 사악의 신이다.


각각의 신에게 분모(分母)의 신이 있고, 분자(分子)의 신이 있다.

사람에게 있는 신은 분자의 신이다. 사람신의 집과 같다.


신은 영(靈)이며, 혼(魂)은 생명이다.

신이 떠나도 혼이 있으면 살아 숨 쉬게 된다.

영과 혼, 이 두 가지가 다 떠나면 죽는다.

그러나 육체가 죽어도 영은 살아 있게 된다.

사람이 종교를 알지 못하면 신을 알 수 없다.


창조받은 피조물 곧 창조주의 분신인(행 17:29 참고) 사람(아담)은 생기로 생령이 되었다(창 2장).

여기에 피조물인 용의 악신을 더함으로 생령과 악령이 하나 되어 혼돈이 시작되고 불안과 고통이 있게 되어, 영혼이 떠나고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 흙이 된다(창 3장).


인간의 시조인 이 ‘사람(아담)’의 유전자로 태어난 사람이 지금까지의 지구촌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분신인 사람이 다른 신을 받아들임으로

생명을 이어 주는 분모의 신이 떠나게 되고, 있는 생명으로 살다가 죽는다.


원죄에 유전죄와 자범죄가 가중됨으로 죄가 커져 수명이 짧아지게 되었다(창 6:1~3, 시 90:10 참고).

생명에 사악이 들어옴으로 고통이 있고 죽음이 있다.

다른 신을 받아들임으로 죄가 되었고, 이 죄로 인해 거룩하신 생명의 신이 사람에게서 떠나가셨다.

이 분모의 신은 로 인해 사람에게 올 수가 없고, 사람도 때문에 분모인 신에게 갈 수 없다.

이와 같이 하여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진 것이다.


확인 : 내가 꿈을 꾼다. 나에게서 나와 같은 영(신)이 멀리 나가 돌아다닌다. 돌아다니며 보고 듣는다.

내 육체의 혼은 죽지 않고 숨 쉬고 있다. 영(신)과 혼(생명)은 분리되어 있다.

나간 은 날아다니기도 한다. 혼인 은 누워 가만히 숨 쉬고 있다.

영의 집인 혼(몸)을 흔들면 영은 즉시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영은 보고 들은 것들을 혼에게 알게 한다.


이 같은 분신은 죄 때문에 모신(母神)에게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신을 알 수 있는 것은 세상 지식도 지혜도 아니다.


두 가지 신에 의해 두 가지 마음의 생각을 주기 때문에 이것이 혼돈이며,

포로된 압력 속에 견디다가 영이 떠나고 혼도 떠나고, 육체(집)만 남았으니 으로 돌아간다.


하늘의 종교는 분모의 것이요, 분자에게 알리는 교육이다.

이 교육은 분자가 분모를 만나 생기를 받는 방법이기도 하다.

생기로 생령이 된 이 사악을 받아서 죽는 영혼이 된 것이다.


어떻게 죽이는가? 갖은 병마를 보내어 신체(집) 내의 조직을 파괴시킨다. 집이 파괴됨으로 영이 떠난다.

종교를 깨달아 사악한 데서 벗어나 생령이 되게 하는 분모를 믿음으로,

은 원죄, 유전죄, 자범죄의 값으로 심판을 받아 죽겠으나 은 믿는 그것을 위로삼아 살게 된다.

이는 분신에게 붙은 사악의 신과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인류를 사악한 신에게서 구원하려면

먼저 죄 값을 치러야 하고(의인의 피로), 사악한 신(마귀)을 이겨야 하고, 자신을 이겨야 한다.

이때 자기를 되찾게 되고, 사악에서 벗어나 생명체이신 창조주 분모와 하나가 된다.

이것이 도(종교)의 길이다.


이는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도와 생명을 주는(religion) 분으로 말미암아 된다.

이는 고아된 자가 다시 어머니 품에 안겨 젖을 빨게 되는 '상봉'이다.


필자는 천신(天神)도 봤고, 그 음성도 들었고, 꿈도 꾸어 봤으며, 영혼이 떠나는 과정을 겪어 봤고,

영혼이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육체의 집인 몸으로) 적도 두 번이나 있었다.


두 번 다 죽지 않으려고 애썼다.

영과 혼이 떠난 후에 집인 몸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생시와 같은 몸과 차림으로 이 세상 어디론가 구경하면서 가고 있었다.

이는 어느 길가에 혼자 있을 때였다. 육을 떠난 시간은 알지 못했다.

멀리멀리 가다가 생각이 남과 동시에 나는 내 몸에서 다시 살아났다.


결론 : 분모의 신을 증명하는 것은 분자인 자기를 보는 것이다.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하여 아들이 어찌 아버지가 없다 하리요?

분모가 자신을 보이지 않는 것은 분자가 다른 신과 하나 된 때문이다.

그래서 분모의 신(성령)이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롬 8:19~27 참고).

성경에 기록된 증거로 말하면 많겠으나, 불신자들도 알게 하기 위해 설명한 것이다.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궁궐의 왕을 보지 못하였다 하여 왕이 없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이 만물을 창조한 증거는 만물 그 자체이다.

씨가 없이 나는 것이 어찌 있으며, 심지 않았는데 어찌 싹이 나겠느냐?


창조주는 생명체이고, 생명체인 하나님의 말씀이 씨가 되어 나타난 것이 만물이다(눅 8:11, 요 1:1~4 참고).

천지창조는 아버지가 있음으로 아들이 있음과 같다.

아들은 그 아버지를 안다. 알지 못함은 그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 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 아닌가?


인간 및 사물은 진화(進化)가 아니다. 변화(變化)이다.

그러면 왜 변했나 할 것이다.

하나의 색깔은 하나이다. 두 가지 색이 합해지면 그 본색과는 다르다.


토종과 양종(洋種) 사이에 난 알의 병아리와 그 닭은 다르다.

그 병아리는 토종과 양종의 반반이 섞인 잡종(雜種)이다.


참 신이 창조한 것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신이 두 가지가 있기 때문에, 다른 신에 의해 낳은 다른 것이 있는 것이다.


그 예를 들면 쌍둥이는 그 얼굴 모습이 거의 같다.

세상 세파 속에 환경과 공기도 다르겠지만, 남녀의 그 순간의 색채가 같기 때문에 쌍둥이의 얼굴 모습이 같고, 그 후에 난 아이는 얼굴 모습이 다르다.

그 이유는 가중되는 죄의 차이와 노쇠함에 있어 다른 것뿐이다.


진화가 아니다. 인간의 시조인 생령(생명)에게 사악이 들어감으로 색채와 행동이 혼돈되어 달라졌다.

두 신의 서로의 모습으로 닮아간 것이다.

그러나 떠나가신 생명체인 창조주가 오시면 사람과 만물은 본래와 같이 소성될 것이다.

변화의 원인은 사악의 신에 의해 된 것이다.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 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 말은 맞다.

그러나 과학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이 발달한다고 해서 두 가지 신을 분석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은 신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생명이 감해졌으므로(성경 역사에서), 죄가 감해지고 없어지면 장수한다.

이 죄를 오직 예수(의인)의 피로써만이 해결할 수 있다. 이 때 하나님도 상봉할 수 있다.


5.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이병철 씨는 종교(religion)의 뜻을 알지 못해서 한 말이다.


신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생명체이신 창조주이시고, 또 하나는 피조물인 사악의 신이다.


창조주는 자기가 창조했기에 물론 피조물을 사랑한다.

피조물인 사악의 신은 자기가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조물들에게 고통을 주어

창조주를 이병철 씨같이 원망하게 한다.


그러면 피조물인 사악의 신은 누군가?

신계(영계)에는 네 그룹(네 생물, 네 천사장)이 있다.

이 중 1/4의 군대를 맡은 한 그룹(천사장)이 신 곧 하나님을 배도함으로 사악의 신(사단, 마귀)이 된 것이다. 이 자가 참 하나님의 신을 쫓아내고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자 한 자이다.

이 자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가로채어 주관해 온 역적 마귀이다.


창조주 참 신이 이 사실을 피조물인 사람에게 알게 한 방법이 성경책이다.

4번의 답에서 말한 바같이 언젠가 참 신인 창조주가 오시어 본래 모습으로 회복시키게 된다.

사람의 고통은 참 신인 창조주가 주는 것이 아니며, 역적 사악의 신이 주는 것이다.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예: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참 신 창조주가 악인을 만든 것이 아니다.

역적 사악의 신이 사람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 속에 들어가 악을 행하게 함으로

악인이 된 것이다.

신의 씨는 신의 말이요, 악의 신이 들어가면 그 신이 그 사람을 통해 자기 뜻을 행하게 된다.

이러므로 악의 신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창조된 만물에게는 영혼이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이를 알 방법은 종교이다.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죄 값은 사망이다(롬 6:23).

어떤 죄를 지었는가? 우리의 죄 값으로 예수가 대신 죽었으니 우리 죄가 속죄되었다.

속죄된 우리의 현실이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그리고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이 질문은 참으로 잘 하셨다. 살아있다면 단방 쫓아가 말하고 싶다.

지금은 예수님께 부탁하여 음부에 있는 이병철 씨에게 종교(religion)의 참뜻을 알게 해주어

회개하고 깨달아 구원받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벧전 3, 4장 참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대언자요, 나는 예수님의 대언자로 왔다.


설명 : 창조주 하나님은 족보가 없고, 스스로 계신 유일신이므로(출 3:14) 하나님이시다.

우리의 는 하나님의 말씀(언약)을 지켜 순종하지 못한 것이며,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역적 마귀(뱀)의 말을 믿은 것이다(창 2:17, 창 3장).


창조주 아버지가 피조물인 아들에게 먹으면 죽는다는 나무의 열매(선악과)를 알려 주셨다(이는 언약과 같다). 이를 알면서도 그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는 뱀(마귀)의 말을 믿은 이다.

이는 아버지를 배신(배도)한 영적 죄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은 죄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죄를 짓게 내버려 둔 것이 아니다. 아들이 스스로 택한 죄이다.

결국은 뱀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아버지의 말은 참 말이었다.


예수님의 속죄의 피는 재림 때까지 떡과 포도주로 기념했고(마 26장),

속죄의 피는 재림 때 그 효력이 있게 된다.

계시록 5, 7장을 보라. 거짓말이 아니다. 참이다.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하나님께서 성경을 만드신 때는 약 4천 년 전 모세 때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그 이전 세계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알려 주신 것이다.

66권의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을 빌려 대필로 기록하게 하셨으니,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다.


이 기록을 사람에게 알려 주신 이유는,

참 하나님과 마귀와 범죄한 사람과 현실을 깨달아 하나님에게로 귀정(歸正)한 자가 되어

악에서 생명으로 옮겨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은 크게 보면 역사, 교훈, 예언, 성취로 되어 있다.


성경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는 다음과 같다.

성경책은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한 역사책이다.

역사책 속에 기록한 하나님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은 곧 성경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예언하신 약속은 약속대로 400년 만에 모세에게 오시어 이루셨고,

예수님이 나타나시기 전 구약 선지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예언하신 것은 수백 년이 지나 약속하신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오시어 다 이루셨다(요 19:30).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님과 선지자들이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루어진 것은 약속한 예언이요,

이 예언은 선지자들이 받은 계시를 기록한 것이요,

이 계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주신 것이다.

예언하신 분도 예언을 이루신 분도 하나님이셨다.

이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사람은 선지자들이었다. 역사와 실상이 이를 증명한다.


9.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이 종교를 서양에서는 religion이라고도 한다. 무슨 뜻인가?

종교란 ‘으뜸가는 교육’을 말하는 것인데,

이 교육은 종교(宗敎) 곧 하늘의 것을 보고 가르쳐 주는 것이니 곧 신의 교육이다.

religion이라는 말의 뜻은 끊어진 생명줄을 다시 이어 주는 가르침이다.

이는 세상 차원의 교육이 아니요, 하늘 차원의 교육인 것이다.


이 교육이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좋은 교육을 하지 않겠는가? 자식이 효자이든 불효자이든 간에 말이다.

창조주는 만물의 어버이시고, 창조받은 만물은 그의 자녀이다.

하늘이 알리고자 하는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니요, 하늘의 것이며 하나님의 것이다.


교적 경서에는 하나님을 믿는 역사와 교훈과 예언과 성취가 담겨 있다.

이것들을 교육하는 것이며, 특히 창조와 예언 및 그 성취는 하늘의 것을 보고 그대로 이룬다.


사람에게 이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종교가 죄에 빠진 인생들에게 하늘의 것으로 교육하여, 죄(마귀)에서 나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함께 살기 위한 천국 교육이기 때문이다.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영혼에 관한 것은 쉽고도 까다로운 질문이다.

죄로 인해 천문(天門)이 막힌 사람이 어찌 영과 혼을 알겠으며,

영과 혼이 하나 된 존재도 두 가지가 있으니, 세상 사람이 어찌 이를 알겠느냐(世人何知)?


물과 빛이 있는 곳마다 이 있다. 이 혼은 만물의 생명이다.

그러나 은 만물의 생명을 주관하는 존재이다.

사람이 아닌 만물(동물과 초목 등)에게는 필요에 따라 이 들어 역사할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없다.

사람에게는 영혼이 있으나 그 영혼이 누구의 영혼이냐가 문제이다.


이는 두 가지 신(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병철 씨는 돈 많고 권위 있는 자들을 상대해 왔다.

신(神)과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얼마나 상대해 왔는가?

옛 노래에 ‘지꺼(제 것) 두고 못 쓰는 사람은 거러지(거지) 중 상거러지요,

자기 것 없이 잘사는 사람은 만고강산의 호걸’이란 가사가 있다.

지금 이병철 씨는 돈과 권위가 얼마나 있는가? 아무것도 없지 않는가?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매일반이 아닌가?


영과 혼이 있는 자들이 6천 년간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들을 왜 다 죽였는가?

죽이는 영혼들이 누구의 영혼들이기에 악을 행했는가? 그 답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꿈에 영은 나가 다녀도 혼은 몸과 같이 있었고, 영은 날아다니기도 한다.

이 영은 혼 곧 산 사람을 주관하고 인도한다. 뿐만 아니라 죽은 자의 영을 만나기도 한다.

죽으면 영과 혼이 육에서 떠난다.

내 영이 악의 영과 하나가 되면 혼돈하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점령한 악의 영에 의해 악한 행동을 할 수 있다.


영혼몸속에 있는 생명과 정신이다.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종교(동양)는 유불선(儒佛仙) 삼도(三道)가 있고, 이 삼도에서 이탈되어 도용한 종교가 많이 있다.

유불선 삼도도 시대적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뜻의 한 종교이다.


유불선 삼도의 경서는 천신(天神)으로부터 듣고 본 것을 기록하였으나,

그 경서의 뜻을 오늘날까지 아는 도인(道人)은 없다.

이슬람교, 힌두교, 칼빈교 등이 있으나, 이 종교들의 교주는 하나님께서 택해 세우신 자들이 아니다.

자의적으로 하나님을 찾았고 종교 정신으로 하늘의 계시를 받아 기록을 남긴 자도 그 뜻을 아는 자가 없다.


그 예를 들어 말한다면,

석가는 생로병사를 알고자 도의 길을 걸었고 계시를 받아 기록하였으나 그 뜻을 알 길이 없었다.

아는 것은 예수가 온다는 것이다.

‘언제든 예수가 오면 내가 가르친 교육은 기름 없는 등(何時耶蘇來 吾道無油之燈)’이라 하고,

오백 년 후 석가의 도인 불교가 끝날 것을 기록하였다.

예수석가보다 약 오백 년 후에 오셨다. 이후 불교가 있어도 기름 없는 등인 것이다.

이 어두운 곳에 어떤 신이 주관하겠는가? 야귀발동(夜鬼發動)이라 하였다.


성철스님의 말에 지옥에서 석가를 만났다 했고,

1987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法語)에서 성철 스님은

“사단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 부처님입니다.”라고 신앙 고백을 했다(조선일보 1987년 4월 23일 7면, 경향신문 1987년 4월 23일 9면,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사서실(큰빛총서 1) 서울사시연, 1994년, 페이지 56-59).

이는 성철 스님의 말이 맞다. 노망이 아니다. 불교인들은 이를 알면서 왜 계속 불도(佛道)를 유지하는가?


유대교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들을 죽였고(마 23:34~37, 행전 7:51~53, 살전 2:15),

아들 예수를 보냈으나 상속자라며 죽였고, 죽인 이유는 교회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서였다(눅 20장 참고). 어찌 여기에 은혜와 구원이 있겠는가? 종교의 특징은 이런 것이다.


참 구원은 주 재림 때 약속한 목자와 다시 창조된 열두 지파에 있다성경은 말하고 있다.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어두운(?) 질문을 하였다. 선한 일, 착한 일, 봉사 일을 많이 해도 다시 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

사람들은 착하고 선하고, 돈(헌금) 많이 바치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면 구원받는 줄 안다.

그렇지 않다. 성경대로 해야 한다.


기록된바 천국에 갈 수 있는 조건은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하며(마 7:21), 물(말씀: 씨)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 한다(요 3:5, 벧전 1:23).

하나님의 씨인 말씀으로(눅 8:11) 다시 나고,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하고,

하늘의 계시 말씀으로 인 맞아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됨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천국에 간다

(계 20:15, 21:27 참고).

이는 곧 하나님의 영의 씨와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나야 천국에 간다는 말이다.

이 말은 지금의 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도 하나님의 씨도 없다는 뜻이다.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천주교도 다른 종교도 다시 나지 못하면 같은 이단이다.

이는 주 재림 때 성경이 이같이 말씀하신 것이다.

범죄한 아담의 유전자로 난 자(원죄에 유전죄, 자범죄가 가중된 자)는 다 같고,

이들의 씨는 성령이 없는 육체의 씨이며, 하늘 복음의 씨는 하나님의 씨이다(눅 8:11).

하나님의 씨로 다시 난 자가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게 된다.


14.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사람의 꿈에나 비몽사몽간에 또는 환상에서

내 영이 돌아가신 부모 형제 및 유명 인사와 친구들을 종종 만나 대화할 때가 있다.

이는 꿈속의 나의 영같이 죽은 자의 영이 있다는 증거이다.

사람이 죽어서 하늘의 천국에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천국과 하나님께서 이 땅으로 오신다(요 14:2~, 계 21:1~ 참고).

이 때 산 자와 죽은 자에 대해 심판이 있으니,

자기 행위에 따라 책(성경)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 지옥 및 천국에 간다(계 20:11~5).

죽은 시체에게 물어 보라. 그 속에 영혼이 없어 답하지 못할 것이다.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꿈에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깰 때 배부르지 않은 것과 같이, 부귀와 안락은 영원함이 없고,

자기 것은 먹은 밥 세 끼뿐이며, 사후는 하나도 자기 것은 없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일 뿐이다.

천하를 다 얻고도 자기 목숨을 지키지 못하면 유익함이 있겠는가?(마 16:26)

참 신의 교훈은 땅의 부귀영화가 아니요,

‘종교적’이며 ‘religion’ 곧 생명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교훈이다.

또 지옥이 아닌 낙원 천국을 얻는 것이다.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부자는 악인이 아니다. 부자는 두 가지가 있다. 물질 부자마음의 부자가 있다.

물질이 부한 자와 가난한 자는 결국 같다. 같은 24시간, 같은 밥 세끼를 먹는데 무엇이 다른가?

하지만 마음의 부자는 다르다.


만일 부자가 천국을 못 간다면 왜 하나님이 에게 재물을 더 줬겠는가?

마음의 부자는 부족함이 없으므로 안일하여 구하지 않는다.

물질 부자는 그릇을 다 채우지 못해 구하고 그것을 위해 일한다.

권세자이든 물질 부자이든 자기를 알고 참 하나님을 알면, 진정한 보화가 무엇인지 알고 구할 것이다.

그것은 생명이다.

꿈같이 썩어 없어지는 양식보다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을 구해야 할 것이다.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 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이병철 씨는 종교를 알지 못해

두 가지 신과 창조주의 입장과 지구촌을 어느 신이 주관하고 있는지 알지 못해서 한 말인 줄 안다.

이태리(이탈리아)뿐 아니라 온 인류가 그러하며,

천신(天神) 창조주가 오시게 될 때는 악의 신이 더욱 극성을 부리는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이 바른 신앙을 하려 하고, 또 교황이 그곳에 있으므로,

악신이 그곳에서 더욱 심한 역사를 하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 것 같다.

종교의 경지에 이르면 알 것이다.

종교인이라고 해서 다 종교인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참 종교인이다.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이나 신앙에 미치는 것이나 미치는 것은 같다.

그러나 미치게 되는 내용과 목적은 다르다.

신앙인은 자신을 알고, 세상을 알고, 마귀를 알고, 참 창조주를 앎으로 악에서 벗어나 도의 길을 가는 것이다. 공산주의에 빠지는 것은 원해서가 아니요, 공산 세력의 압력을 받아 자유를 잃고 끌려가는 것이다.

신앙의 세계는 근본부터가 다른 길이다.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예: 폴란드 등 동구 제국, 니카라구아 등)


천주교인들의 뜻이 아니다.

성경에 본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라고 했다(롬 8:20~21). 압력 속에서 탄식과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신앙인은 누구나 알고 함께 탄식한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 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이는 17번과 같이 기독교인이 종교의 기본을 지키지 않으면 더 악해진다고 경서는 말하고 있다.

배도하면 더 많은 귀신이 그 속에 들어간다고 하였다(마 12:43~45).


우리나라는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1/3도 안 되며, 불신자들이 2/3가 더 된다.

잘못이 기독교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신 사회와 기독교 세계가 부패하여 불신과 범죄가 가득하면 창조주는 그 세상을 허물 것이다.

이때 새 하늘 새 땅이 창조되고, 하늘의 참 문화가 세상을 새롭게 할 것이다.


이병철 씨는 사후의 자기 몸과 자기 영혼에 대해 생각해 봤는가? 알지 못해 못했을 것이다.

음부에서 예수님을 만나 지옥과 천국과 세상의 부패한 것과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워

구원받기를 기도한다.


21. 로마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이는 자기 조직(천주교)에서의 결정권을 두고 한 말 같다.

이것이든 저것이든 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 본다.

종교인의 참 기준은 그것이 아니다. 경서이다. 경서는 곧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기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씨로 난 새 시대와 천부(天父)께서 오시기 전에는 온전함이 없다.

누구든 약속한 성경의 뜻을 알고 말해야 한다. 사람이 판단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왜 독신인가?


신부와 수녀, 목사와 전도사와 같은 위치라고 본다.

말년에는 독신이 상팔자라는 말은 있으나, 바울은 신앙을 위해 독신 생활을 했다.

독신이라야 된다는 이유는 참 신앙, 참된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함이라 본다(고전 7:8-9 참고).

그렇다 해서

암컷과 수컷, 남녀를 창조하여 이 씨를 두게 한 창조의 근본을 무너뜨리고자 한 것은 아닌 줄 안다.


나는 세계 모든 종교 중 천주교의 신앙적 됨됨이를 찬사한다.

비록 그것이 외양(外樣)이라 할지라도 수도적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생명이요 하나님인 말씀만 그 안에 있다면 천사 같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말씀이 없다는 것이다.


신약에 약속된 목자도 오직 한 사람이고, 생명의 말씀의 계시를 받는 자도 오직 한 사람뿐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를 어찌 알리요?(世人何知) 그러나 기도 중에 이를 만나리라 본다.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이는 잘못 안 것이다.

천주교 및 모든 종교인은 경서가 말한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세상일을 믿는 것이 아니고, 세상일을 간섭하는 곳이 아니다.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침투했다면 그런 자도 있겠으나, 그것은 천주교의 교법이 아닌 줄 안다.


하늘의 복을 받아 잘사는 나라와 백성이 되어야 한다.

기업이 있어야 살게 되고, 기업을 분열 파괴하는 자는 공산주의이기 전에 마귀 행동을 하는 자라 할 것이다.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지구촌에 종말은 오지 않는다. 시대적 종말은 온다.

창세기 1장에는 천지 창조가 있고,

신약 계시록 21장에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다고 하였고,

이 곳에 천국과 하나님이 오심으로 고통과 사망이 없다고 기록되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세인하지(世人何知)리요?

이를 문자대로 보기 때문에 지구촌의 종말 또는 3차대전을 말하고 있으나 그것이 아니다.


아담의 세계가 부패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9대 손 노아를 찾아가 새로운 세계를 세웠고,

노아의 세계가 부패했을 때 노아의 10대 손 아브라함에게 찾아가 약속하셨고,

4백 년 만에 모세를 세워 노아의 세계를 끝내셨으며,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이 부패할 때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찾아가셔서

육적 이스라엘과 율법을 끝내신 것이다(마 11:13, 눅 16:16).


초림 예수님의 도(道)가 예수님 재림 때 부패함으로 인해 끝나고,

다시 하나님의 새 나라를 창조하는 것을 가리켜 ‘새 하늘 새 땅’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지구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지구촌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초림의 예수님은 육적인 씨를 뿌리신 것이 아니며, 영적 하나님의 씨인 말씀을(눅 8:11) 세상에 뿌리셨다.

재림 때는 뿌린 씨의 열매를 모아 하나님의 새 나라와 백성을 창조하니, 이것이 새 하늘 새 땅이다.

이 이전 교회와 목자와 교인이 끝나는 것을 두고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진다고 말한 것이다.

지구촌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종교적 선천(先天)이 끝나고, 종교적 후천(後天) 세계가 창조되는 것을 말한다.

종교 세계에서는 경서가 아닌, 세상 어떤 이치의 말도 인정할 수 없다.


종교를 말하는 사람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 성령의 약속으로 말해야 한다.

이병철 씨가 말한 모든 것은 육적인 판단에서 본 오해였다.

종교적인 하늘 차원에서 볼 때, 그는 세상적 판단으로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인 나는 먹고 썩지 않는 양식 곧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가져왔다.

원하는 자에겐 값 없이 주리라!


성경에는 이병철 씨가 질문한 것 이외에도 성도가 꼭 알아야만 구원받게 되는 내용이 많다.

나는 그 계시를 알려 주고 싶다.


2012.01.01 신고 의견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