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열리는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회담의 의제가 될 수 있을까.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이렇다 할언급이 없었던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과 달리
미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수잔 숄티(Suzanne Scholte·60) 미국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북한 인권 분야의 대모’로 통한다.
1997년 탈북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미국 방문을 성사시키고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혔던 탈북자들이 미국 의회에서 정치범수용소의 참상을 증언하도록 도우면서
미국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매년 ‘북한자유주간’ 행사 때면 한국을 찾는 그는 지난 4월 말 한국에 들어왔다.
그가 미·북 정상회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직접 듣기 위해
지난 5월 4일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났다.
- 지난 4월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을 어떻게 보나.
“완전히 거짓(completelyfalse)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과 완전히 같은 시나리오 하에 움직이고 있다.
1990년대 후반 고난의행군과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탈북 사태로
김정일 정권이 엄청난 압박 상황에 처했을 때와 완전히 동일하다.
당시 김정일 정권은 정권 붕괴 위기를 한국과의 타협으로 극복했다.
마치 선한 의지가 있는 것처럼 조작해 한국 정부가 소위 ‘햇볕정책’을 구사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독재자가 새 삶을 얻었다.
마찬가지로 현재 김정은의 행동 역시
국제사회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취하는 행동일 뿐이라고 본다.”
- 이번 회담 결과에 대해 한국민 80%가 긍정적으로 답했고 대통령 지지율도 높아졌다.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과 다를 것이라고 보는 기대가 많은데.
“나는 앞선 회담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본다.
적어도 북한 인권 분야에서만큼은 김정은이 그의 아버지보다 나을 것이라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
만약 김정은이 김일성·김정일과 다르다면 어떤 형태로든 정치범들 일부를,
혹은 한국인이나 미국인 포로들과 납북자들을 석방했어야 한다.
그가 정말 평화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무슨 일이 일어났나.
북한 인민들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연이 부여한 단 하나의 인권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다.
정상회담을 통해 얻은 극도의 행복(euphoria)에 취하기 전에 냉정히 생각해 보자.
성취한 게 뭐가 있는가. 북한 인민들에게 나아진 것이 무엇이 있나.
고문당하고 수용소에 보내진 이들에게 실제로 뭐가 바뀌었는가. 정치범 수용소는? 교화소는?
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북한 인권에 관해 어떤 조치도 요구하지 않는가.”
- 한국민들이 김정은에게 속고 있다는 이야긴가.
“그렇다. 이번 회담을 보고 기뻐하는 이들은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역사를 돌아봐라. 북한 인민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라.
김정은이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라는 사실을 전 세계가 알고 있는데,
한국만 김정은이 협상 가능한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보거나 그렇게 보고 싶어한다.
김정은은 이런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공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공작에 말려들고 있는 것 같다.”
- 대북전단을 북한에 날려보내는 데 대해 반대하는 의견도 상당하다.
“전단과 라디오방송, 대북 스피커는 효과가 명백히 입증되어 있다.
첫째, 탈북민들의 증언과 경험이 가장 정확한 증거다.
이 일을 하는 탈북민 본인들이 직접 북한에서 전단을 보거나 방송을 듣고 탈북한 이들이다.
또 전부터 한국과 미국이 정부 차원에서 직접 해온 일이라는 점이 이 일의 효과성을 증명한다.
또 하나 다른 증거로는, 김정은의 암살리스트 중 가장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박상학, 김성민 등
대북전단을 날리거나 라디오방송을 하는 이들이라는 사실이다.
이것만 봐도 대북전단이 얼마나 북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고
김정은 정권에 영향을 미칠수 있는지가 증명되는데 이걸 왜 막는지 모르겠다.”
- 북한 정권이 대북전단이나 스피커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우리 입장에서는 이걸 협상카드로 쓸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이런 식으로 이용하는 것은 ‘끔찍하다(terrible)’고 생각한다.
인권은 너무나 중요하다. 고통받는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생각해야 한다.
김정은이 명백한 인권침해 행위를 매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당신이 만약 김정은 체제하에 있다면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온가족이 몰살당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보내지지 않았음에 감사해야 한다.
북한 인민들은 오늘도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
이들의 인권이 다른 의제에 밀려서는 안 된다.”
- 이번 남북 정상회담 결과가 올해 북한자유주간 행사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정말 아이러니(irony)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일이라고 본다.
우린 2월에 이미 북한자유주간 날짜를 정했다. 물론 4월에 정상회담이 열릴 것을 전혀 몰랐을 때다.
지난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청와대가 우리에게
북한자유주간을 끝내면서 대북전단을 보내는 행동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남북 간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한다고 합의문에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정부가 민간의 대북전단 살포까지 막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내일 전단 날리러 가는데, 그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봐야겠다.”
인터뷰 다음 날인 5월 5일, 숄티 대표와 북한 인권 단체들은
대북전단을 띄워 보내기 위해 경기도 파주시 통일전망대를 찾았지만
300명 정도의 경찰 병력에 막혀 전단을 날리는 데는 실패했다.
“행사장에서 전단 살포 반대 집회를 여는 다른 민간 단체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