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와' 新일본 시대] [1] 신세대 국왕의 등장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도쿄 시부야(澁谷)에서는 30일 자정 무렵 "9, 8, 7, 6…'을 외치는 '레이와 카운트다운'이 준비되고 있다. 도쿄호텔을 비롯한 상당수 호텔에서는 새 일왕 즉위에 맞춘 특별 행사를 열고 있다. 새 일왕 즉위에 맞춰 27일부터 10일짜리 '골든 위크'가 시작된 일본은 벌써부터 들썩거리고 있다. 30년 전 히로히토(裕仁) 일왕 병사(病死) 당시 자숙(自肅) 분위기를 이끌었던 TV는 레이와 특집 쇼를 앞다퉈 만들며 축제 분위기를 이끌고 있다.
선진국에서 유일하게 왕의 통치에 따라 자신의 생을 구분하는 일본에서 새 일왕 즉위는 특수한 의미를 갖는다. 이 때문에 일본 사회에서는 나루히토 새 일왕 즉위를 계기로 과거와 단절하고, 한 단계 도약하자는 국민적인 공감대가 조성되고 있다.
나루히토는 그런 시대정신에도 부합하는 인물이다. 일본은 2차대전 전에 태어난 아키히토가 일왕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주변국에 전쟁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퇴위하는 아키히토는 1933년생으로 초등학생 시절 '성전(聖戰)'을 위해 떠나는 일본군에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으로 일본인 300만 명을 포함,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모두 23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곳곳으로 '위령(慰靈)여행'을 다녔다.
나루히토 일왕은 다르다. 1960년생으로 '전후 출생한 첫 일왕'인 그는 전쟁 경험이 없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느끼던 죄의식에서 자유로운 입장이다. 그래서 레이와 시대는 나루히토 일왕의 개인 입장과는 관계없이 일본이 2차대전의 모든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앞으로 달려가는 첫 시기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주변국에 대한 사죄는 모두 끝났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강하게 추진해왔다.
일본은 헤이세이 시대에서는 버블 경제가 붕괴되면서 30년 가까이 불황터널에서 헤매야 했다. 1995년 고베 대지진과 2011년 동북부 대지진은 국민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사이비종교인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은 큰 충격을 안겼다. 레이와 시대 개막은 이런 과거와 단절하는 의미가 있다.
일본은 지난 1일 새 연호 발표 행사를 연 데 이어, 다음 달 1일 새 일왕 즉위, 6월 오사카 G20회의, 8월 아프리카 정상회의, 9월 럭비 세계 월드컵, 10월 신왕 즉위 해외 국빈 초청 행사를 앞두고 있다. 7개월에 걸쳐 이어지는 일련의 행사를 이용해서 분위기를 일신하는 것은 물론 내년 도쿄올림픽까지 상승세 무드를 이어가려고 한다. 1964년 도쿄올림픽으로 일본이 선진국으로 위상을 확고히 했다면, 2020 도쿄올림픽을 통해 세계 지도국가로 한 단계 더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아베 내각은 개발도상국 정부가 국제행사를 치르는 것보다 더 센 강도로 관련 행사와 사업을 독려하고 있다. 도쿄의 관공서가 밀집해 있는 가스미가세키(霞が関)는 지금도 한복판에서 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쿄 니혼바시(日本橋)역과 긴자역은 올림픽에 대비한 '리뉴얼' 공사를 하고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종종 '관언(官言) 복합체'로 지적받는 일본의 TV와 신문도 앞장서서 쇄신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아베 내각은 이를 통해 자신의 책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지향했던 초일류 국가를 만
든다는 계획이다. '미·중·일 3강 시대'가 레이와 시대 아베 내각이 지향하는 최종 목표다. 이 같은 '그랜드 플랜'의 이면엔 아베 총리가 내각 및 자민당 지지율을 끌어올려서 장기집권으로 가는 발판을 두껍게 하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다. 레이와 시대로 아베 내각의 우경화 흐름이 가속화될 경우, 일본 내에서도 파열음을 내고, 주변국가를 긴장시킬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