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은미목사님

***"정죄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지지 않기를!"

colorprom 2018. 3. 9. 17:33

 2018/03/08 목요일

최고의 날 - "정죄하는 사람으로 비추어지지 않기를!"

임 은미 (유니스) 목사 묵상

어제는 선한사람들 신우회 설교를 마치고
롯데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장을 볼 때 마다 가끔 생각하는것이 있다.
"사는 것이 무얼까?"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들..

내가 이제 한국 왔으니 집에서도 먹고 살아야 하니
장을 보아야 한다.

끼니 메뉴(?)를 생각하며 이것 저것
주섬 주섬 카트에 넣으면서
돌아가신 엄마가 기억났다.

어머니 돌아가진 기일이 곧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1년 전 이맘 때 돌아가신 엄마가 요즘 많이 생각난다.

장을 보면서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들..
과일들..

엄마 생각과 함께 카트를 밀고
엄마가 좋아하던 음식 앞에서는 한참 발을 멈추고..

가끔은 참으로 엉뚱한(?) 질문을 하기도 한다.

"엄마는 왜 돌아가셨지?"

곧 기일인데
동생들은 모두 다 미국에
나는 한국에..

함께 "추모예배"드릴 가족이 없다.

교회를 잘 안 다니고 있는 큰 동생 제임스도
기일날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인 것 같앴다.

그 날 어머니 묘지에 가서 인사 드린다고 하는데
예배를 드리지 못해서
평소에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던 엄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마음 어려워 하는 것 같다.

나는 3월 10일 엄마 기일에
새벽부터 설교가 있다.

오륜교회 청소년 새벽 집회가 있고
오후에는 강남순복음교회에서 세미나가 있고..

딱히 나도 엄마 추모예배를 따로 드릴 수 없으나

엄마 생각도 엄마 생각이지만
어머니 돌아가시까지
기도 해 주신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을 기억하면서
다시 또 고마와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겠다.

욥 기 13 장

19 - 나와 변론할 자가 누구이랴 그러면 내가 잠잠하고 기운이 끊어지리라

Can anyone bring charges against me? If so, I will be silent and die.

고통 중에도 참으로 당당한 욥이다.. 하는 그런 생각도 갖게 해 준다.

"자기의"가 충만하다기 보다는
그래서 욥이라는 사람이 교만하게 느껴지기 보다는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최선"은 다 하면서 살은 사람이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오늘은 이러한 욥을 보면서
왜 이렇게 멋지게 살은 욥에게
이런 친구들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친구인 욥을 모르지?
왜 이렇게 욥이 힘든 상황을 만난 것을
자기네 편(?)에서만 해석 하게 되었을까?

평소에 과연 이들은 욥의 가장 친한 친구들 맞나?

친구를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데
무슨 친구야??

평소에 이들은 욥을 시기하고 질투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이 때야 말로
자기네 마음에 평소에 있었던 생각들이
줄줄이
"판단"으로 나온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갖게 해 준다.

욥의 상황을 성경으로 대하면서
내가 읽은 예화중에 생각나는 예화가 하나 있다.

***
교회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들

1. 새벽기도에 오래도록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집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새벽기도에 빠진 목사와 장로들의 빠진 횟수와 날자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십일조를 정확하게 꼬박꼬박하는 신자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머릿속에는
십일조를 빼먹거나 제대로 하지 않는 동료 신자들의 목록이 빼곡히 들어 있습니다.

 3. 40일 금식기도를 다녀온 권사님의 눈길이 무섭습니다.

그분의 시선에는
'너는 왜 금식기도를 하지 않느냐'는 무언의 질타가 섞여 있습니다.

(생략)

********

오늘 나는 서울보증 신우회에서
"야고보서"를 강해 하겠다고 말을 해 놔서리..

어제 "야고보서"를 좀 공부했다.

오랜만에(?)나도 성경공부 ㅋㅋ

잘 가르치려니 나도 잘 알아 놔야 해서리..

거의 4-5시간을 계속 공부(?)한 것 같다.

믿고 난 다음 어떤 행위를 마땅히 가져야 하는 가에 대한 신약의 "잠언"이라고 할 수 있는 야고보서를
주욱 공부하면서

나는 과연 어떤 그리스도인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자책할 것 없는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야고보서에서 하라고 하는 말씀들
거의 다 잘 지키는 것 같다.

딱히
걸리는 말씀은 없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부분들은 있지만
하라고 하시는 말씀들을
거역하면서 사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그렇게 산다고
남들도 다 나를 그렇게 여겨주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내 욕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런 말도 내게 들려 오니 감사..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기에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그러지 말라고
말을 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유?

그 사람이 그렇게 내 욕(?)하는 것이
100% 틀린 말일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 사람이 보기에 내가 그런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내 듣기 좋은 말만 하라고 그렇게 바꿀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러면 나는 억울한가?
나는 그닥지 억울 하지도 않다 ㅋㅋ

내가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
올바로 살아가기도 사실 바쁘다.

내가 억울하다고
다 변명하고  해명 할 시간이 없다.

나는 그냥 오늘도 하나님 열심히 섬기고
내가
아는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는 것이 즐겁고 감사하다.

이전에
내가 감당치 못할(?) 비난의 말을 들어서리
사실 그 사람은
내가 "차단"해 버렸다.

내 감정 소모가 그 사람이 한 "언어폭력"에
휘둘림 당하는 것 같아서
차단해 버린 것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내 이야기를 하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내 흉(?)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는 그 사람이
내 흉을 볼 지라도
나를 비판할지라도

하나님 떠나지 않고
하나님 잘 경외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하는 기도를 한다.

나를 미워할 지라도
하나님을 미워하는 일은 절대로 없기를
나는 기도한다.
(이 기도는 그 사람 뿐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을 향한 기도를 이렇게 하기도 한다.
하나님 사랑만 그 사람이 더 하게 된다면..
나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졌다는 죄를
나는 범하지 않게 되기를...)

오늘 욥이 자신을 당당하게
여기는 모습이 나에게는 흐뭇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내가 살아가는 당당한 모습이

누군가에게
"어려움.. 부담감.. 얄미움.. 시기.. 질투"를
불러 일으키면 어쩌지?
하는 염려도 살포시 해 본다.

나의 경건함이
남들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잣대가 되지 않기를..

내가 그러지 않는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어려운 마음을 갖게 하지 않는 배려(?)도 필요하다는 것을..

가까이 다가 가기가 버거운 사람이 되지 않기를..

하나님 앞에서 잘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여짐이
다른 사람들의 그렇게 살지 못함을
정죄하는 자격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처럼
보여지지 않기를..

오늘도 평범(?)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이웃으로
내가 잘 살아가기를!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고
원수를 사랑하라고도 하셨습니다.

사랑하기 쉬운 이웃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 리 없습니다.

내 근처에 일단은 사랑하기 쉬운 사람부터
사랑하면서
사랑의 근육을 키우고 그리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이 땅 살아가는 지혜가 아닌가 합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 허락하지 않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대인관계 주님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정 감당하지 못할 사람은
피해가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도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정죄할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싶은 많은 이들이 있음을
먼저 감사하고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감사하고

그 사랑을 감사하면서
나와 화목하기 원치 않는 사람들도
품을 수 있는
"사랑 근육"을 길러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서울보증 신우회에서
야고보서 강해 설교를 통해
우리 모두
하나님이 더 더욱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주님 도와 주옵소서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종일 기쁘시면 참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