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시위처럼 팽팽한 두 명배우의 대결
입력 : 2018.02.26 03:03
스필버그 새 영화 '더 포스트'… 1971년 美 워싱턴포스트 실화극
보도할 것인가 덮을 것인가… 정권 맞선 신문사 내부 갈등 그려
어떤 전투는 넘어지면서 시작한다.
역사는 촘촘한 반전으로 이뤄져 있다.
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펜타곤 페이퍼 전체를 입수한다.
닉슨은 먼저 보도한 뉴욕타임스에 국가기밀 누설죄를 묻겠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은 보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일생일대 고민에 빠진다.
이야기도 이 순간부터 달음박질친다.
영화는 줄곧 활시위처럼 팽팽하다.
편집국장 벤과 사주 캐서린은 시시때때로 대립하지만 날카롭게 서로를 겨누진 않는다.
카메라는 탁구공처럼 이들 양쪽을 오가며 두 사람이 빚는 건강한 충돌과 박동을 담는다.
이 과정에서 설득당하는 건 관객이다.
결단이란 때론 그렇게 흔들리면서 단단해진다.
영화는 벼려진 칼끝 같은 대사로 이어진다. 한마디 한마디 불꽃이 튄다.
벤이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이 나라가 진다"
"신문 발행의 자유를 지키는 유일한 길은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다"고 할 때 그렇고,
캐서린이 그를 훈계하는 이사에게
"당신 조언을 구한 것이지, 당신이 결정하라고 한 게 아니다"라고 할 때 그렇다.
어떤 장면들은 찰나의 빙점(氷點)을 포착한다.
편집국장실 한가득 뿌옇게 인 담배 연기, 여러 명이 동시에 집어 든 전화기,
취재원에게 황급히 공중전화 걸다 쏟아지는 동전…. 관객은 종종 호흡을 멈추고 얼어붙는다.
메릴 스트리프와 톰 행크스는 한계점을 잊은 듯하다.
톰 행크스가 후배 기자에게 "왜 아직도 앉아 있느냐"고 고함치고 뉴스 앞에서 눈동자를 번득일 때,
관객은 그가 배우였음을 망각할 정도다.
메릴 스트리프 연기는 어느덧 말하지 않고도 발언하는 경지다.
그의 입술이 주장을 토해내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관객은 이미 그 목소리를 듣고,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경련할 때 관객은 클라이맥스를 직감한다.
그녀는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다시 올랐다.
거창한 대사들의 폭포 속에서 스필버그 감독은 속삭임에도 주목한다.
사명감에 몸을 떠는 벤에게 아내는 조용히 말한다.
"그분(캐서린)은 지금 평생 몸담았던 회사와 인생을 모두 걸고 이 결정을 내리는 거야.
이것이야말로 용기라고 생각해."
영화 마지막 캐서린의 대사 역시 여운을 남긴다.
"우리는 항상 옳을 수 없어요. 완벽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계속 쓰는 거죠."
역사는 그렇게 전진해 왔고, 또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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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6/20180226000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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