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다룬 영화 '다키스트 아워' 상영관 적지만 마니아 관객 늘어
"강하고 지혜로운 리더 필요한 시대… 지금 우리 정치인들 봐야할 작품"
"이런 영화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다 같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관객이 생각만큼 들지 않아서 내가 괜히 안타까웠고요(웃음)."
강성학(70)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최근 서울 한 극장에서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보고 나서
들려준 말이다.
강 명예교수는 작년부터 선후배 정치외교학 교수·박사들과 모여 세미나 모임을 열고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1874~1965) 일대기를 꾸준히 공부해왔다.
그는 "영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헤쳐나갔던 인물이 처칠이다.
진보 보수 따질 것 없이 이런 리더십을 공부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지난달 중순 개봉한 '다키스트 아워'는 오는 3월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촬영상·남우주연상·미술상을 비롯한 6개 부문 후보에 오른 영화다.
전 세계 약 2808만달러(약304억원) 수익을 올리며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이지만,
국내 반응은 그간 영 신통치 않았다.
지난 11일까지 관객수가 2만4000명을 조금 넘는 정도다. 상영관 찾는 것도 쉽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럼에도 최근 이 영화를 본 관객 사이에선 조용하지만 뜨거운 팬덤(fandom·특정 대상에 몰입하고 열광함)이 생겨나고 있다. 혼자 극장을 찾아다니며 몇 번씩 영화를 다시 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 영화를 교재 삼아 처칠에 관련된 스터디 모임을 조직하는 이들도 있다.
◇혼자서도 본다…조용한 처칠 바람
신희섭(47) 고려대 평화연구소 선임위원은 지난달 말 서울 압구정 한 극장에 '다키스트 아워'를 혼자 보러 갔다. 영화가 끝날 무렵 한 관객은 일어나 박수를 쳤다.
신 위원은 "솔직히 나도 따라 박수 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참았다"고 했다.
실제로 '다키스트 아워' 관객 상당수는 영화를 혼자 보러 온 이들이었다.
CGV리서치센터가 이 영화가 개봉한 지난달 17일부터 이달 11일까지 관람객을 분석한 결과,
남성이 54.6%였고 여성은 45.4%였다.
이 중 영화를 혼자 보러 온 소위 '혼영족(族)' 비율은 51.5%였다.
같은 기간 다른 영화를 혼자 보러 온 사람 비율이 평균 12.5%였던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수치다.
◇보고 또 보고…처칠을 공부하다
이 영화를 텍스트 삼아 스터디 모임을 조직하는 이들도 있다.
프리랜서 작가 김주한(50)씨는 지난달 친구 다섯 명을 모아
영국 역사학자 폴 존슨 책 '윈스턴 처칠의 뜨거운 승리'를 읽기 시작했다.
김씨는 "올림픽 뒤 국제 정세도 계속 걱정됐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처칠을 공부하면 답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강성학 명예교수도 "처칠은 완벽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실패했고 그럼에도 역경을 이겨냈다.
그 인생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처칠 열풍은 어쩌면
요즘 우리가 그만큼 강력하고 지혜로운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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