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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부르키니의 여인들 -'희랍인 조르바' (조선일보)

colorprom 2016. 8. 30. 13:31

[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11] 부르키니의 여인들

  •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입력 : 2016.08.30 03:10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사진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가끔 산책로를 걷다가 모자를 쓰고 커다란 마스크를 한 여성을 보면 얼핏 복면강도가 연상된다.

한국에서 마스크를 쓴 여성이 오싹한 느낌을 준다면

유럽에서는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이 테러리스트를 연상케 할 것이다.

사실은 부르카를 둘러쓴 남성일 수도 있고,

그 풍성한 옷자락 속에 다량의 폭발물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지난 7월 14일 프랑스혁명기념일에 이슬람극단주의자에게 끔찍한 테러를 당한 남불(南佛)의 해변에서

부르키니(손목·발목까지 덮고 후드를 두르는 여성 수영복)의 착용을 금지했다.

그런데 프랑스의 최고법원이

이 금지령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단속을 중단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남불의 여러 도시는 여기에 반발해서 금지 강행을 선언했다고 했고,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면서 내년 대선에서 집권한다면

"프랑스 전역에서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다고 한다.

여러 정치인이 또한 찬·반 입장을 표명해서

부르키니 착용 문제는 내년 대선의 최고 의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무슬림 여성들이라고 그토록 거추장스럽고 수영에 방해되는 옷을 좋아서 착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는 프랑스의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한 반항 정신에서, 일부는 동족의 눈길을 의식해서 입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배움에 목마르고 인격체로 대우받고 자기 성취를 소망할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 이슬람 여성들에게 씌운 굴레는 전 세계 여성들이 유사한 형태로 겪어 온 것이다.

유교 체제하에서 양반 계급의 여성은 길에 나갈 때 장옷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다.

인수대비는 '내훈'에서 지혜로써 남편을 깨우치고 인도하는 아내를 이상적 아내로 꼽았지만

또한 아내는 남편이 발로 차더라도 반항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존귀했던 서양의 '숙녀'도 '숙녀'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갖은 제약은 물론 수모도 견뎌야 했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반(半)실화소설 '희랍인 조르바'에서

탐스러운 머릿결의 과부 소멜리나는 외지인과 하룻밤을 지냈다는 이유로

교회 앞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목이 잘린다.

이슬람 여성을 무학(無學)과 여성 할례, 명예살인, 부르카 착용, 일부다처제의 굴레에서 구하기 위해서는

금지보다 그들의 증오와 반감을 누그러뜨릴 우정 인내, 선의의 설득이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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