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요나 4장 1절 ~ 11절
1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2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5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6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7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9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 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1절): 싫어하다는 이 단어는 ‘악하다’로 이해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다르게 번역하면 그것은 요나에게 악이 되었고 큰 악이었다.
니느웨가 ‘악’에서 돌이켜(3장 8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실 ‘악’(3장 10절, 재앙)을 거두신 반면에,
요나는 악에 둘러싸이고 있다는 이 표현에 주목하자.
인애(2절):
한글 성경은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언약의 신실성인 은혜(헤세드)를 ‘인애’로 번역하고 있다.
뜨거운 동풍(8절): 동풍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낸다(출 10장 13절).
하나님의 만물을 다스리시는 임재가 실제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본문은 니느웨가 ‘악’을 떠났다는 3장의 이야기와 반대로
그 ‘악’이 요나를 둘러싸고 있다고 말하면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돌이키시는 분이신데 반해, 요나는 그 악을 가득 짊어지고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인애’(2절)는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 혹은 신실성인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이 언약 백성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성경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모든 인간을 향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을 이스라엘 백성들만 독점한다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인애와 발을 맞추어가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만든 독단 안에 갇혀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을 해 보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본성, 사랑 2017년 3월 3일 금요일
사람의 본성은 참으로 미묘하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보여줍니다.
니느웨사람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노여움을 푸시고 재앙을 면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선포하긴 하였지만
역사적으로 이스라엘과 증오관계에 있던 니느웨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처분이 못마땅합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첫 번째 부르심을 거역한 이유도
회개하는 자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품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하나님은 화를 내는 요나를 교훈하시기 위해 박 넝쿨로 그늘을 만들어주셨다가
하루만에 그늘을 없애버리십니다.
그러자 요나는 그늘의 편안함을 잃은 것에 몹시 화를냅니다.
그에게는 어린이만 12만 명이나 되는 니느웨보다 자신의 그늘 한 뼘이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이기적인 사랑과 자기모순을 보여줍니다.
반면 하나님은, 니느웨를 향한 연민과 자비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악한 길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을 강조하십니다.
시편의 시인은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시145:8)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분노보다 강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물으신다면 누구도 심판을 면할 수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기도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물으신다면 어찌 피할 수 있겠나이까.
주님의 크신 사랑으로 진홍같이 붉은 우리의 죄를 양털같이 희게 하여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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