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1 : ‘봉쇄 수녀원’을 아세요? 이곳의 수녀들은 평생 바깥 출입을 하지 않죠. 수도원 안에서만 삽니다.
묵상과 관상, 기도와 노동으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하느님께 바치는 거죠.
“이곳의 수녀가 되겠습니다”라며 맹세하는 종신서원식의 풍경도 남다르죠.
서원자는 바닥에 팔을 쭉 뻗고, 십자가 모양으로 엎드립니다.
그리고 그 위에 꽃이 뿌려지죠. 한 송이, 두 송이, 세 송이….
그게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서 서원자의 무덤이 됩니다.
꽃무덤, 다름 아닌 ‘십자가의 꽃무덤’이죠.
서원자는 그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겁니다.
그 ‘죽음의 길’을 서원을 통해 가는 겁니다.
예수에게서 멀어지는 나
마음의 구덩이에 묻어야
#풍경2 : 어느 봉쇄 수녀원의 풍경입니다. 종신서원식을 마치면 원장 수녀가 부른 답니다.
갓 들어온 수녀는 원장 수녀를 따라가죠. 어디로 가냐고요? 봉쇄 수녀원의 뒤뜰이죠.
그곳에는 ‘무덤’이 있습니다.
평생을 수녀원 안에서 예수를 찾고, 기도하고, 예수를 찾고, 기도하며 살다 간 ‘선배 수녀’들의 묘지죠.
원장 수녀는 거기서 삽을 하나 건넵니다. 그리고 “구덩이를 파세요”라고 말하죠.
그럼 신참 수녀는 직접 삽으로 땅을 파죠.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구덩이. 꼭 자신의 몸을 누일 만큼의 구덩이를 말입니다.
구덩이를 다 파면 원장 수녀가 말하죠.
구덩이를 다 파면 원장 수녀가 말하죠.
“보세요. 이 구덩이가 수녀님이 묻힐 곳입니다. 이제 이 구덩이는 덮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파인 채로 그냥 둡니다. 수녀님이 훗날 이곳에 누울 때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봉쇄 수녀원 뒤뜰에는 묘지도 여럿, 빈 구덩이도 여럿입니다.
#풍경3 : 그럼 ‘봉쇄 수녀원’의 수녀들은
절대 밖으로 나올 수가 없을까요?
가톨릭에선 이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 가지 경우에만 바깥 출입이 허용된다는 거죠.
첫째 수녀원에 불이 났을 때,
둘째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갈 때,
셋째 교황이 한국을 방문할 때입니다.
실제 1980년대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도
‘봉쇄 수녀원’은 외출을 허락했습니다.
그만큼 ‘봉쇄 수녀원’의 각오는 각별합니다.
나의 기도, 나의 수행, 나의 묵상, 나의 죽음을 향해 지르는 ‘빗장의 강고함’이 놀라울 정도죠.
그곳에선 종종 ‘죽음’에 대한 묵상도 합니다.
그럴 때 수녀들은 수녀원 뒤뜰에 모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묻힐 ‘무덤 구덩이’ 앞에 앉습니다.
다들 구덩이를 바라보죠. 그리고 눈을 감습니다. 나의 무덤 앞에서 나의 하루를 살피는 거죠.
그렇게 나의 기도, 나의 삶, 나의 주님을 짚어보는 겁니다.
사람들은 말하죠. “그건 종신서원을 한 수녀님들 얘기다.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일상이 전쟁터다.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기도 바쁘다”
“여기가 무슨 ‘봉쇄 수도원’인 줄 아나?” 이런 반응들이 쏟아지죠.
그런데 ‘현문우답’은 ‘수녀원 뒤뜰의 구덩이’에 주목합니다.
왜냐고요? 우리에겐 그 ‘구덩이’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내가 죽고서 파는 구덩이가 아니라, 내가 살아서 파는 구덩이 말입니다.
그럼 묻겠죠. “우리는 성직자가 아니다. 어디에 구덩이를 파야 하나?”라고 말이죠.
우리가 팔 곳은 ‘수녀원 뒤뜰’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공원묘지의 양지바른 언덕도 아닙니다.
바로 ‘내 가슴 속’ 입니다. 거기에 구덩이를 파야죠.
사도 바오로(바울)는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린도전서 15장31절)”고 했습니다.
그건 내 마음속에 ‘구덩이’를 파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죠.
집착과 욕망으로 얼룩진 나, 그렇게 예수에게서 멀어지는 나를 매순간 죽여본 사람만이 던질 수 있는 말이죠. 그렇게 죽은 나를 묻어본 사람만이 토할 수 있는 말이죠.
그런 사람은 알죠. 내 마음의 구덩이, 그게 바로 예수를 만나는 ‘통로’임을 말입니다.
백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