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저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을 구합시다 2014년 6월 2일 월요일
누가복음 1:1~1:17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다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성경 길라잡이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 데오빌로 각하에게(3절):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이방인으로서
예수님의 탄생에서부터 죽음, 부활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편지로 설명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이름의 뜻을 가진 ‘데오빌로’는
개종한 이방인이며, 사도행전의 수신자이기도 하다.
‘각하’라는 칭호을 볼 때, 그는 로마의 고위 관직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모든 일의 근원부터(3절): 어떤 사건의 배후에는 사건을 야기한 힘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의 배후에도 근원적 힘이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바로 그 근원적 힘을 교회가 성찰하는 것입니다.
유대 왕 헤롯 때에(5절): 헤롯은 이두매인(에돔)임에도 탁월한 정치적 능력으로 유대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후 왕권을 지키기 위해 대제사장 가문과 결혼동맹을 맺고, 신축에 버금가는 성전 보수를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종교는 헤롯의 통치기반을 지지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7절):
헤롯과는 달리 하나님 앞의 의인이었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는 노년까지 자녀가 없었습니다.
자녀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증거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에서 이 문제는 큰 갈등이 됩니다.
하지만 13절과 18절을 고려할 때, 노부부는 자녀를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불의한 시대에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구했던 것 같습니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 요한이라 하라(13절):
누가는 복음서 중에 유일하게 세례 요한의 탄생에 대한 예고를 기록하고 있다.
구약의 배경을 갖지 못한 이방인들을 위해
마지막 선지자로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요한과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연결시켜주려는 의도가 있음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을 구합시다 2014년 6월 2일 월요일
헤롯의 욕망이 유대를 가득 덮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경배하는 성전조차 헤롯의 통치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불의한 시대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자녀를 구하기보다,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발판삼아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시작은 역설적으로, 구하지 않았던 자녀를 얻는 일이었습니다.
‘기도’는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신앙의 태도입니다.
하지만 그 본질까지 같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의 기도는 ‘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자기 욕망을 투영하는 일입니다.
비록 무릎을 꿇는 겸손한 태도를 보일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주’가 되려는 시도입니다.
자연히 기도의 내용도 불의한 시대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의 현실은 외면한 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집중합니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기도는 오로지 자신만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하나님나라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나님나라를 투영합니다.
하나님나라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시선은 우리 자신을 넘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목해 보시는 세상을 응시합니다.
자연히 욕망의 불의한 지배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게 됩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불의한 시대 속에서 그들의 행복만을 위해 자녀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불의한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을 간구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점검합시다.
지체의 고통을 외면하고 홀로 행복하시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의로운 시대에서 더불어 행복하길 바라십니까? 먼저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을 간구합시다.
한 사람을 찾습니다 2014년 6월 2일 월요일
누가는 신약성경에서 유일한 이방인 저자입니다.
알다시피 그는 의사라는 전문 직업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참했던 동역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바울이 처음으로 로마에 감금되었을 때, 그는 누가를 ‘사랑받는 의원 누가’(골 2:14)라고 불렀습니다.
또 바울이 두 번째로 감금되어 큰 위기에 처했을 때에도
그가 ‘누가만 나와 함께 있었느니라’(딤후 4:11)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누가는 ‘의사’라는 직업보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좋은 자리와 성공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일단 좋은 자리와 성공을 위한 기도가 이루어지거나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그것들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삶은 결코 ‘충성된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위한 충성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어떤 자리와 성공을 주신다 해도, 거기서 복음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 사람을 통해 놀라운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경륜 2016년 5월 14일 토요일 (누가 1:5~17)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몇 해 전, 헤롯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대에 일어난 일입니다.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에 있던 제사장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모두 24개의 반열이 있었고, 각 반열마다 일 년에 두 차례씩 성전에서 봉사했습니다. 오늘 마침 사가랴가 제사장 직을 수행하는 날이었기에 그가 성전에 들어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었습니다. 주의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주의 사자는 사가랴에게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주리니'라고 하였습니다.(눅1:13) 그러나 아브라함과 사라,(창18:14) 엘가나와 한나의 경우처럼,(삼상1:20) 하나님은 우리의 경험과 생각을 넘어 역사하십니다. 소망을 마음에 품고 낙심하지 않는다면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예수님 앞에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였던 인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단순히 자식을 얻는 노부부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약성경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어가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구원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불임이었고 사가랴도 연로하여 이들이 아이를 갖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부부를 통해 세상에 태어날 아기가 세례 요한이요,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 (2019년 6월 8일 토요일)
유대 왕 헤롯 때에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을 고르셨습니다.
아비야 조에 배속된 제사장 사가랴와 아론의 자손 엘리사벳 부부였습니다.(눅1:6)
하나님은 그들 부부를 택하여 세례 요한을 잉태케 하십니다.(눅1:13)
세례 요한은 불과 몇달 뒤 세상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앞길을 곧게 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입니다.
(사40:3, 요1:23)
자식이 없었지만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던 두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사를 품게 하셨습니다.
즉 그들 부부와 함께 하나님의 뜻을 본격적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아기를 잉태하는 것은 생명을 품는 것이며,
어떤 아기든 그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이 세상에는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고,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보내주신 모든 아기가 귀한 것이지요.
한편 천사를 통해 아기를 잉태하게 되리라는 소식을 받았지만
두 부부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라 즉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나는 늙었고 아내도 나이가 많은데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눅1:18)
그러나 결국 부부는 세례 요한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잉태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아기를 잉태·출산하는 것만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인간은 누구나 복된 소식-복음을 '잉태'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누구라도 하나님께 선택받기만 하면 복음을 잉태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귀하게 받아 품을 수 있는 우리들 되게 하소서. 아멘.
1 불의한 헤롯과 의로운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서 어떤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까? 5 자녀가 없는 사가랴가 하나님께 구한 것이 무엇입니까(13, 18절)? 1 데오빌로에게 예수님의 생애를 증거함에 있어 ‘누가’를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5 내가 지닌 꿈과 소원은 복음을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복음과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가요?
‘자기 욕망’에서 ‘하나님나라’로 우리의 기도가 변하게 해주십시오.
이 시대에 하나님의 의로운 다스림이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오늘 내가 공부하는 것은 물론 학교생활의 모든 것에서부터 예수님의 복음의 향기가 전해지게 해주세요.
주님, 우리에게 소망이 그치지 않게 하소서.
또한 인류를 사랑하시고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과 경륜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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