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단의 변호와 사울의 위협 2013년 9월 6일 금요일
사무엘상 19:1~19:10
1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2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3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아버지와 말하다가
무엇을 보면 네게 알려 주리라 하고
4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고 요나단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
8 전쟁이 다시 있으므로 다윗이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죽이매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니라
9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 그의 집에 앉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
다윗이 손으로 수금을 탈 때에
10 사울이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 하였으나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피하매
성경 길라잡이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네게 알려 주리라 하고(3절):
사울은 다윗을 공공연히 죽이고자 했으나 요나단은 그 뜻을 따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을 들에 숨긴 후 아버지를 그 들로 데리고 나가 다윗을 변호하고,
그 변호에 대한 아버지의 반응을 다윗에게 알리고자 했다.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6절):
사울은 요나단의 말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다윗을 죽이지 않기로 했다.
일시적이지만 이 순간 사울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시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사울이 손에 단창을 가지고……사울에게 접하였으므로(9절):
하지만 사울의 맹세는 다윗이 공을 세우기 시작하자 곧 무너졌다.
그는 또다시 악령에 사로잡힌 채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요나단의 변호와 사울의 위협 2013년 9월 6일 금요일
사울은 이제 공공연하게 다윗을 죽이라고 신하들과 아들 요나단에게 명령합니다.
이에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을 거스르고 다윗을 변호합니다.
다윗은 신하로서 왕과 이스라엘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충성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요나단의 직언에 자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다윗을 다시 곁에 둡니다.
하지만 다윗이 다시 공을 세우기 시작하자 사울의 시기와 두려움도 다시 발동했고,
결국 악령에 사로잡혀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인정하고 기꺼이 그를 돕고자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그가 자기 영역 또는 자기 전공이나 업무에서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사울은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단지 그와 다윗의 이해관계가 왕권이라는 거창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잘못이 더욱 크게 부각되었을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사울의 입장이었더라면, 우리 역시 사울과 똑같이 행동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그리고 우리)과는 다르게 다윗을 인정하고 기꺼이 그를 돕고자 합니다.
다윗을 적이 아닌 친구로 삼고 변하지 않는 우정을 보여줍니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하게 했을까요?
우선 요나단은 사울과 달리
왕위나 왕권과 같은 자신의 소유,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자기 정체성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를 인정하고 사랑했기에,
왕위나 왕권, 또는 능력을 두고 다윗과 이해관계에 있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나단은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잘 알았고, 그것에 비추어 자신을 이해하고 순종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다윗과 언약을 맺고 또 사울 앞에서 다윗을 변호할 수도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2018년 6월 26일 화요일)
사울에게 있어서 다윗은 가장 용맹스럽고 믿음직한 장수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백성이 다윗을 칭송하게 되었을 때 사울은 그 칭송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급기야는 다윗을 죽이라는 명을 내리게 됩니다.
사실 백성들의 칭송은 다윗에게만 편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18:7)
백성들은 사울의 공적도 분명 칭송했습니다.
하지만 자기교만에 빠져있던 사울은 그것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지요.
마치 다윗을 드높이기 위하여 자신을 '비교대상' 정도로 삼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대에 사울은 왕이었고 다윗은 전쟁터에 나서야 하는 장수였습니다.
임금보다 장수가 전쟁에서의 공을 더 많이 세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다윗과 비교하는 덫에 스스로 빠져들어간 사울은
이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반면 다윗은 그러한 사울을 끝까지 왕으로 선하게 대합니다.
다윗은 언제나 자신의 위치에 충실했습니다.
백성들이 다윗과 사울을 비교하며 "천천, 만만"을 운운할 때에도 거드름피우지 않았습니다.
요나단에 대한 다윗의 우정 또한 한결같았습니다.
무엇보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한결같았습니다.
오늘 우리를 돌아봅시다. 한결같습니까? 특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한결같습니까?
+ 하나님,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나의 모습을 지니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요나단은 무엇 때문에 아버지 앞에서 그토록 강하게 다윗을 변호했을까요?
사울은 무엇 때문에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기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기꺼이 인정하고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의 정체성을 나의 소유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있는 그대로의 나에서 찾을 수 있게 하시고,
나아가 하나님의 뜻과 역사를 깨닫고 순종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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