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013년 8월 1일 목요일
사무엘상 4:1~4:11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1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성경 길라잡이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2절)……이스라엘이 패하여(10절):
본문에서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두 번의 전투를 치른다.
한 번은 언약궤 없이, 한 번은 언약궤를 가지고 치렀는데, 두 전투 모두 패배한다.
어찌하여 패하게 하셨는고(3절)……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왔고(4절):
첫 전투에서 크게 패배한 후 세운 대책은 실로에서 언약궤를 가져오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 패배의 이유에 대해 숙고했고,
그 이유가 하나님의 임재의 유무에 있었다고 본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앞세워 다시 전투를 벌인다.
블레셋 사람이……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5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과 달리 이 전투의 승패는 언약궤의 유무에 있지 않았다.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의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두려워하고 떨면서도 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다.
묵상과 삶
하나님께서는 실패를 통해서도 일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번째 전투에서 패한 후 그 패배의 원인에 대해 물었고,
그 원인을 하나님의 임재의 부재에서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언약궤를 가지고 임한 전투에서도 패하자 그들은 혼란에 휩싸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가져왔는데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면, 여기에는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면 무조건 승리한다는 승리주의 의식은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은 매우 폭이 넓고 세밀하다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왔지만,
오히려 블레셋 군인들의 사기만 진작시키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확신과는 다른 결과 앞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옴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전투하려고 했던 것은 비난 할 수만는 없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일하심)에 대해
우리가 너무나 쉽게 단정한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적어도 이 본문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형식만 취하면 무조건 형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너무 단순한 사고방식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은 새로이 다윗왕국이 도래해야 할 당위성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보면 이렇듯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사장들이 있고,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하나님께서는 중심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겉모습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중심을 품어야 합니다.
묵상질문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 전투에서 패하고 나서 왜 언약궤를 가져올 생각을 했을까요?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었으면서도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도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보다 넓은 시각을 가지게 하소서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대해 승리주의적 시각을 가지기보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질문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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