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린도후서]

[3]교회를 아끼는 사도의 마음 (고후 1:22~2:4) (CBS)

colorprom 2016. 12. 5. 13:45

교회를 아끼는 사도의 마음 2016년 12월 3일 토요일



고린도후서 1:22~2:4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1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2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한다면 내가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할 자가 누구냐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성경 길라잡이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23절):

이는 법정에서 증인을 소환하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의 진정성을 증명할 이가 하나님밖에 없었기에

바울은 하나님을 자신의 증인으로 제시했다.(LAB주석 참고)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23절):

바울은 고린도에 두 번 방문할 계획이었다.

처음 방문은 고통스러웠다(2장 1절).

바울은 반대자들에게 신랄한 공격을 받았고, 바울은 그들을 꾸짖어야 했기 때문에 근심에 싸일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계획된 방문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과열된 분위기는 진정될 필요가 있었고, 영적 유익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LAB주석 참고)


묵상과 삶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와의 관계에는 기본적인 신뢰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 중 바울의 사도권을 불신하는 사람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방문 일정을 변경하자 바울을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 판단하는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차분히 자신의 진정성을 교회에 알리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 방문 계획을 변경한 것은 교회를 아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회복될 시간을 가지기를 원했던 것이 바울이 가진 기대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교회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성숙하게 할 길이 있다면 비록 자신이 오해받을 수 있다 할지라도 선택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역자의 마음이 보입니다.

말씀사역자는 어떤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역자가 자신의 안전이나 이익을 앞세우게 되면 교회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의 오해와 비난을 피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있을지라도,

형제자매들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참된 사역자의 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같은 몸의 지체인 성도들 모두가 이와 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무엇보다 형제자매들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

내가 오해와 비난을 받을지라도 기꺼이 지체들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참 성도라 할 것입니다.


교회가 위기에 놓인 순간이 성도들이 참으로 교회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순간입니다.

위기 앞에서 나를 뒤로 하고 지체들을 위한다면, 그들은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묵상질문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믿음을 주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요?(24절)


기도

우리에게 참된 믿음을 주셔서 어떤 상황에서도 지체들을 먼저 생각하게 해주십시오.
선택해야 할 순간에 이르러 지체들의 유익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