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정말 아십니까? 2016년 11월 11일 금요일
욥기 8:1~8:22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며 이르되
2 네가 어느 때까지 이런 말을 하겠으며 어느 때까지 네 입의 말이 거센 바람과 같겠는가
3 하나님이 어찌 정의를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4 네 자녀들이 주께 죄를 지었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버려두셨나니
5 네가 만일 하나님을 찾으며 전능하신 이에게 간구하고
6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7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8 청하건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조상들이 터득한 일을 배울지어다
9 (우리는 어제부터 있었을 뿐이라 우리는 아는 것이 없으며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와 같으니라)
10 그들이 네게 가르쳐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하지 아니하겠느냐
11 왕골이 진펄 아닌 데서 크게 자라겠으며 갈대가 물 없는데서 크게 자라겠느냐
12 이런 것은 새순이 돋아 아직 뜯을 때가 되기 전에 다른 풀보다 일찍이 마르느니라
13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리니
14 그가 믿는 것이 끊어지고 그가 의지하는 것이 거미줄 같은즉
15 그 집을 의지할지라도 집이 서지 못하고 굳게 붙잡아 주어도 집이 보존되지 못하리라
16 그는 햇빛을 받고 물이 올라 그 가지가 동산에 뻗으며
17 그 뿌리가 돌무더기에 서리어서 돌 가운데로 들어갔을지라도
18 그 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모르는 체하고 이르기를 내가 너를 보지 못하였다하리니
19 그 길의 기쁨은 이와 같고 그 후에 다른 것이 흙에서 나니라
20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악한 자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므로
21 웃음을 네 입에, 즐거운 소리를 네 입술에 채우시리니
22 너를 미워하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라 악인의 장막은 없어지니라
성경 길라잡이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1절):
빌닷은 책과 학문을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8~10절).
이 점에서 빌닷은 뛰어난 지성인이자 전통주의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박식하지만 전적으로 과거에 머물러있다.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3절):
빌닷은 하나님의 공의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욥이 큰 고난을 겪는 것은 욥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욥에게 청결하고 정직하기를 요구한다(6절).
그러나 실상은 욥이 청결하고 정직하기에 이런 고난을 받고 있다(1장 8절).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8절):
빌닷이 의지하고 있는 지식의 근거는 옛 선조의 지혜, 즉 전통이다.
11절부터 13절까지 왕골과 갈대로, 거미줄로 경건하지 않은 이들의 위태로움을 묘사한다.
악인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인과응보를 강조한다.
묵상과 삶
세상이 생각하는 의는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는 원칙입니다.
오랫동안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통해
이런 의로움이 없이는 사회가 질서있게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빌닷 역시 선조들이 전해준 지식에 기초해 욥의 고난을 진단했습니다.
그러나 빌닷뿐 아니라 세상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의가 심판뿐이라면 그 누구도 하나님께 구원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서, 자신의 공을 자랑하며 영생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성경은 심판의 의와 더불어
죄인을 의롭다고 하시는 회복의 의(롬 3장 22절)를 하나님의 의로 소개합니다.
빌닷은 하나님을 알려진 만큼만 알았지, 진정으로 알지는 못했습니다.
학습이란 머리로 배우고(학), 몸으로 익히는(습) 것입니다.
그러므로 앎이란 그저 머리와 지능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격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앎을 그저 책을 읽고 기억하는 것 정도로 왜곡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자신이 배운 것을 그저 입술로 내뱉을 뿐,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이런 태도를 보이며, 입으로만 그분을 경배하고 섬길 뿐,
고백대로 삶 전체를 드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가장 고귀한 지식인 동시에, 우리의 영원을 결정할 가장 중대한 지식입니다. “오직 십자가만이 우리의 신학이다!”라고 고백했던 종교개혁자 루터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향한 겸손한 무릎, 그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정말 아십니까?
묵상질문
빌닷이 주장하는 바가 욥의 경우에 정당합니까?(5, 6절)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기도
하나님 아는 것을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게 해주십시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통해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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