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

[54]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요한 13:31~38) (CBS)

colorprom 2016. 3. 5. 13:46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2016년 3월 5일 토요일

 

요한복음 13:31~13:38

 

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

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3 번 나를 부인하리라

 

 

성경 길라잡이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31절):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영광은 자신의 죽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형을 초래할 유다의 배반은 그렇기에 인자에게도 하나님께도 영광이 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34절):

예수님께서는 죽음과 부활 후에 제자들을 떠나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계명으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다.

사랑하라는 명령은 모세의 율법에 비추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희생 위에 세워진 사랑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것이다.

그 사랑에 근거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서로 사랑할 때,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35절):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결정적인 비결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은 물론이거니와 같은 유대인들 사이에도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36절):

베드로가 한 이 질문은, 제자들 가운데서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조차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십자가를 통해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소설 <쿼바디스>에서 차용한 ‘Domine Quo vadis’라는 대사이기도 하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2016년 3월 5일 토요일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따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아버지께로 가신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길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열린 길 위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자신이 그 일을 성취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제야 그 사랑을 따라가는 길이 제자들에게 비로소 열립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길을 따라가는 삶을 묵상해봅시다.

‘서로 사랑하는’ 제자의 모습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워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증언하기 위해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제자로 삼아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에

그분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는 노력이라면, 그 노력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형제자매들을 핍박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며 이웃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일이 허다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사랑을 받았기에 비로소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주신 생명이기에, 그 생명으로 새 삶을 사는 사람들이기에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생명을 누리는 방식 그대로 하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삶으로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제자들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소위 ‘고별설교’로 알려진 마지막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가르침의 핵심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습니다.

즉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비로소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편 베드로가 자신만만하게 예수님을 좇을 수 있을 거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남을 위한 희생보다는 자신의 이익 추구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이런 세상 한 가운데서 역전된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물론 우리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늘 겸손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성령님을 의지하여 이런 삶을 배우고 실천해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세상은 우리에게서 참된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2017년 1월 28일 토요일 (요한 13:31~13:35)


예수님께서는 방대한 구약의 모든 계명을 '사랑'이라는 한 마디 말로 압축하셨습니다.

사랑하되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말없이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줍니다.

십자가는,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되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쳐줍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부족함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나를 위한 것으로 받고, 믿고, 그것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감없이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킬 수 있는 새 계명인 것이지요.


참된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하여 주님과 함께 죽고, 함께 다시 사는 신비적 연합의 체험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사랑의 목적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전도는 말로써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을 통해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야 합니다.


신자와 제자는 다릅니다.

제자의 표식,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의 명백한 증거는 사랑하는 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제자로 인정하실 것입니다.


깨어있는 신앙 2015년 4월 3일 금요일 (요한 13:36~38)


시몬 베드로는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수제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에 놓고 괴로워하실 때,

주님을 끝까지 따라가겠노라고,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겠다고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잡혀가시던 그 순간,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3 번 부인하였습니다.

아니,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께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실 때 깨어있지도 못했습니다.


사실, 타인을 위하여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생명을 내놓는 일은 두렵습니다.

타인을 위하여 잠들지 않는 일조차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잠들어있는 신앙으로는 결코 십자가의 길, 예수님의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주님과 함께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금요일을 맞이하여,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그 깊은 사랑을 충분히 묵상할 수 있기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베드로처럼 잠들어있는 신앙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호언장담에 걸맞지 않게 쿨쿨 잠들어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만약 잠들어있다면, 지금 바로 깨어나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서로 사랑하라 (2018년 11월 7일 수요일)


오늘 본문의 말씀 바로 전의 이야기는 사랑하는 제자가 예수님을 배신하는 장면입니다.

함께 있던 그가 밖으로 나간 후에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밖으로 나간 제자에 의하여 팔려 십자가를 지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어째서 그것이 ‘영광’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광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일반적으로 영광으로 여기는 현상과는 전연 다른 현상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는데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이 "서로 사랑하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보게 되는 사랑의 현상을 곧이곧대로 가리키지 않습니다.


내가 주고 싶은 사랑을 주는 게 "서로 사랑하라"의 핵심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생각과 느낌에 충분히 공감하고, 상대방이 사랑받고 싶은 사랑을 주는 것

"서로 사랑하라"의 의미입니다.

실천하기 만만치 않은, 어려운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그 순간 그 어려운 새 계명을 잘 지킬 수 있으리라 자부했을까요?

아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격려해주셨습니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요14:12, 새번역)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으며,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 거룩하신 주님, 우리를 서로서로 사랑하는 성도로 만들어주소서. 아멘.


묵상질문

 

유다가 떠나간 일이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과 이어집니까?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하나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걸음은 제자들에게 어떤 길로 제시됩니까?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말씀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내게 있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기도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나타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가 발견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사랑으로 주신 생명, 사랑함으로써 함께 누리게 해주십시오.

 

사랑과 희생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앞세우는 세상에서 역전된 가치를 추구하는,

곧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 또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기꺼이 그들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 깨어 기도하게 하시고, 당신의 사랑을 기억하며, 십자가의 길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