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류에서 시작하기 2016년 1월 7일 목요일
마태복음 6:5~6:10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Starting Upstream [상류에서 시작하기]
Your Father knows what you need before you ask him. - v. 8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My home sits along a creek in a canyon in the shadow of a large mountain.
During the spring snowmelt and after heavy rains this stream swells
and acts more like a river than a creek.
People have drowned in it.
우리 집은 큰 산기슭의 협곡에 있는 시냇가에 있습니다.
봄에 눈이 녹을 때나 폭우가 쏟아진 뒤에 이 개울은 불어나서 시내라기보다는 강과 같이 되어
사람들이 익사하기도 합니다.
One day I traced the origin of the creek to its very source, a snowfield atop the mountain.
From there the melted snow begins the long journey down the mountain,
joining other rivulets to take shape as the creek below my house.
하루는 산꼭대기 눈이 쌓여 있는 시내의 원천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거기에서부터 녹은 눈이 산을 따라 내려오며 다른 개울들과 만나면서
우리 집 아래로 흐르는 시내의 모양을 갖추어 가는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It occurs to me, thinking about prayer, that most of the time I get the direction wrong.
I start downstream with my own concerns and bring them to God.
I inform God, as if God did not already know.
I plead with God, as if hoping to change God’s mind and overcome divine reluctance.
Instead, I should start upstream where the flow begins.
기도에 대해 생각해볼 때, 대부분의 경우 방향을 잘못 택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는 밑에서부터 나 자신의 염려들을 모아 하나님께로 가져가서,
마치 하나님이 아직 모르시는 것처럼 하나님께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어 하나님이 꺼려하시는 것을 돌이키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나는 그 흐름이 시작되는 상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When we shift direction, we realize that God already cares about our concerns
-a loved one’s cancer, a broken family, a rebellious teenager-more than we do.
Our Father knows what we need (Matt. 6:8).
우리가 이같이 방향을 바꾸면, 사랑하는 이의 암이나 깨어진 가정, 반항적인 십대아이 같은 우리의 염려들을 우리가 돌보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이미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마 6:8).
Grace, like water, descends to the lowest part. Streams of mercy flow.
We begin with God and ask what part we can play in His work on earth.
With this new starting point for prayer, our perceptions change.
We look at nature and see the signature of the grand Artist.
We look at human beings and see individuals of eternal destiny made in God’s image.
Thanksgiving and praise surge up to Him as a natural response.
물처럼 은혜는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자비의 물줄기도 아래로 흐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기도의 출발점이 새로워지면 우리의 인식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자연을 보며 위대한 예술가이신 하나님의 흔적을 보게 되고,
인간을 보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원한 운명을 지닌 각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밀려드는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게 됩니다. - Philip Yancey
Dear Lord, I praise You for loving and caring for me so much.
What would I ever do without You?
사랑하는 주님, 이토록 저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없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는지요?
Prayer channels God’s supply to our needs.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주시는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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