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경목사님

(신우회) "이제는 아들 안에서" / 갈 2:20 / 충신감리교회

colorprom 2015. 9. 12. 19:33

2015년 9월 8일, 오후 7시30분, 충신감리교회 교육관 B1층

 

"이제는 아들 안에서"

갈 2:20 / 새 407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호와의 종 모세 =>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내주신  메시아의 예표이다.

고난받는 종 예수 => 하나님이 내주시고 넘겨주신 메시아이다. (행 3)

 

사실 모세는 경솔한 면이 있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삶이 이제까지의 삶과 같을 줄 알았다. 이제까지 살듯 그냥 살면 될 줄 알았다.

그런 그에게 이제와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하나님은 할례를 명하셨다.

 

뿐인가, 사실 모세는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믿음조차 흔들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예수는 깊은 통찰력으로 처음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뜻을 명확하게 알았다.

그리고 두려워함에도 단호하고 결연함을 잃지 않았다. (마가 14:33~34) (요 10:17~18)

마지막 숨지는 모습에서도 그런 면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는 말씀을 굳게 잡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았다.

 

자존심은 무엇인가...내 자신을 내놓지 못함이 아닌가.

그래서 늘 반응하고 흔들리며 내 십자가를 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주신 예수님을 우리는 빌라도에게 넘겨줬다.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을 우리에게 넘겨주었고,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다.

 

마치 공같이 이리로 저리로 내둘린 예수님은 그러나 목숨까지도 우리를 위해 내주었다.

 

특히 가야바의 뜰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은

죽음을 앞두고도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인내'의 모습을 보여준다. (요 8)

 

경비병의 무례한 태도는 사실 무의미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무시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궂이 대답을 하는 예수님의 태도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메시아의 적극적인 인내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우리의 [샬롬]을 위해 목숨까지 내주었다.

 

비아돌로로사, 비애의 길...그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세상의 짐을 지고 피흘려 죽음의 길을 가는 예수님을 보는 당시의 사람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십자가와 세상...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세상...군대 휴가나온 군인들이 보는 세상같지 않았을까?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일상의 세상을 보며 느낀 충격과 배신감, 혼란...이 그런 것 아닐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그 중에 세상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을 그때.

 

우리는 예수님의 목숨값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새로 태어났다는 의미로 [영세명]을 갖는다.

 

 

이제 우리는 나로,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내주신 주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