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신앙 2015년 8월 20일 목요일
이사야 28:1~28:13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보라 주께 있는 강하고 힘있는 자가 쏟아지는 우박 같이, 파괴하는 광풍 같이, 큰 물이 넘침 같이
손으로 그 면류관을 땅에 던지리니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의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판결하는 영이 되시며 성문에서 싸움을 물리치는 자에게는 힘이 되시리로다
그리하여도 이들은 포도주로 말미암아 옆걸음 치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말미암아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말미암아 비틀거리며 환사을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그러므로 더듬는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그가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성경 길라잡이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1절):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화 있을진저!’가 문장의 시작이다.
화의 대상은 에브라임, 즉 북이스라엘 왕조의 수도 사마리아의 불의한 지배자들이다.
화의 양상은 앗수르의 침략(2절)과 그로 말미암은 멸망(주전 722년)이다.
교만한(1절): 이는 지정학적인 ‘높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변을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위치한 사마리아는
기름진 골짜기에서 생산되는 풍요로운 농축산물을 독점하면서 사치스런 생활을 즐겼다.
술에 빠진 자(1절):
이들은 사마리아의 정치 지도자들로서 권력과 부가 가져다주는 오만과 사치에 빠진 자들이다.
이들이 자랑하는 면류관은 시들어버린 꽃에 불과하다.
비록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 시들어 죽어가는 꽃이다.
이는 사마리아의 멸망이 필연적임을 보여준다.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4절):
모든 사람이 탐을 낼만하여 누구라도 기회만 되면 따 먹을 것임을 의미한다.
사마리아가 그렇게 탐스러워 열방이 서로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의미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5절):
참 이스라엘, 즉 남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왕이 되어주실 것이다.
왕의 사역은 의롭게 재판하고 대적을 물리치는 것이다(6절).
그리하여도 이들은(7절): ‘이들’은 유다 왕국의 지도자들이다.
이들은 북이스라엘의 침략 위기 앞에서 앗수르에 도움을 요청했고,
앗수르가 이에 응하자 큰 연회를 즐기고 있다.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10절): 유다 지도자들은 9, 10절을 통해 이사야를 비웃고 있다.
그러나 선지자의 경고를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의 행동이야말로 막 젖을 뗀 아이와 같다.
다른 방언으로(11절): 이방 나라를 의지한 유다는 결국 이방 나라의 침략을 받을 것이다.
묵상과 삶
주전 8세기 후반,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소용돌이치고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유다를 향해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자,
남유다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들의 불신앙을 이사야가 책망하자, 유다의 지도자들은 이사야와 하나님을 비웃었습니다.
결국 큰 제국인 앗수르를 의지했던 유다는 앗수르에게 큰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11, 13절).
이로 보건데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자들은
결국 그들이 의지했던 바로 그것 때문에 망하고 괴롭게 됩니다.
돈을 의지하는 자들은 돈 때문에 괴롭고, 사람을 의지하는 자들은 사람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들은 하나님 때문에 살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인맥’만큼이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없습니다.
지연, 혈연, 학연에 기초한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그것이 큰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많은 젊은이들이 나름대로 힘이 있는 사람에게 ‘줄’을 대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이웃을 권력의 도구로 여기는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에게도 권력의 도구일 뿐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의지한 사람들이 결국 사람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 까닭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영화로운 면류관’이며 ‘아름다운 화관’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사귈 이웃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중심이 있기에 유력자 앞에서도 당당하며,
비천한 자 앞에서는 겸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삶으로
오늘 본문은 이후 계속되는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 예언들과
유다를 위한 구원과 희망의 예언들이 시작되는 출발점입니다.
특히 28장에서 31장까지는 유다의 왕인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신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사마리아(이스라엘의 수도)의 몰락에 관한 것입니다.
당시 사마리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술에 취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했고,
그로인해 교만했으며, 영적으로 비틀거리면서도 이사야를 조롱하였습니다.
이에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면류관인 사마리아를 땅에 던짐으로써 반드시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술(세상)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취해야 합니다.
술(세상)을 취하지 않고, 말씀을 취해야만 합니다.
술에 취하게 되면 정신이 맑을 수 없으며 이성이 작동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함은 물론 자신에게 속한 소중한 가치들을 놓치고
오히려 그것에 반대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인들은 진짜 마시는 술만이 아니라
세상이 제시하는 풍요와 화려함에 잔뜩 취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맑은 정신과 이성으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보지 못한 채
그들에게 정말로 소중한 가치와 삶들을 놓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 우리는 무엇보다 술(세상)에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말씀과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묵상질문
최근 경험했던 어려운 일은 무엇입니까? 그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한 대상은 누구입니까?
먼저 사람에게 엎드리는 것과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요?(5-6절)
술(세상)에 취하지 않고 맑은 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도
위기 앞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해주십시오.
사람을 권력의 도구가 아닌 사귈 이웃으로 여기게 해주십시오.
술(세상) 취한 사회요 술(세상) 권하는 사회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맑은 정신과 온전한 이성을 지닌 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것에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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