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41]그날에 사라질 것들 (이사 25:1~12) (CBS)

colorprom 2015. 8. 17. 14:24

그날에 사라질 것들 2015년 8월 17일 월요일


이사야 25:1~25:12

 

1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2 주께서 성읍을 돌 무더기로 만드시며 견고한 성읍을 황폐하게 하시며

외인의 궁성으로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원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3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

4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5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이방인의 소란을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림 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

 

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니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의 초개가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그가 헤엄치는 자가 헤엄치려고 손을 폄 같이 그 속에서 그의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의 교만으로 인하여 그 손이 능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누르실 것이니라

네 성벽의 높은 요새를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성경 길라잡이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1~5절):

악한 자의 포학(3, 4, 5절)은 비를 내리고(폭풍) 열기를 내뿜는(폭양) 자연의 극단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나님의 기사는 포학당해 괴로워하는 자들을 보호하고(요새, 피난처)

악한 자가 패배하는 것(황폐)으로 나타난다.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1절):

여기서 ‘기사’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모든 일들’을 의미한다.

즉 출애굽은 물론 광야시절과 가나안전쟁, 다윗왕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행하셨던 모든 일,

그리고 앞으로 일어나게 될 미래의 사건(마지막 날의 일)들까지도 포함되는 아주 광범위한 것이다.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6절):

‘이 산’(6, 7, 10절)은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곳, 즉 ‘성전’이다.

그곳에서 열린 풍성한 연회는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 의식(출 24장 11절)을 의미하며,

그 대상은 모든 사람들(만민, 모든 민족, 열방, 모든 얼굴, 온 천하)을 포함하고 있다.

그 넉넉함으로 말미암아,

온 열방에서 서로를 사망으로 몰아넣는 일들과 억울함으로 말미암은 눈물이 사라질 것이다.


모압이 거름물 속에서(10절): ‘모압’은 교만의 화신으로 등장한다(사 16장 16절).

스스로 높아지고자 했던 자들은 철저하게 낮아질 것이다(5, 10절).

 

모압이 거름물 속에서 초개가 밟힘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10절):

여기서 ‘모압’은 문자적 의미의 ‘모압족속’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백성을 압제하고 교만에 사로잡혀 있는 모든 불신앙의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처소’라는 말은 ‘하나님의 발아래에서 그 대적자들이 짓밟히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날에 사라질 것들 2015년 8월 17일 월요일

 

‘모압’과 같이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의 폭정이 ‘폭풍’과 ‘폭양’처럼 기세등등합니다.

그 포학 앞에서 빈궁하고 가난한 언약 백성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결과 온 열방에 사망과 억울한 눈물이 가득합니다.

이런 날이 영원하리라 생각하는 자들은 포학의 질서를 따라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날’이 갑작스럽게 다가와 모든 것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날에 포학이 사라질 것입니다. 또한 그날에 사망과 억울한 눈물이 사라질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날에 교만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날’은 오직 하나님의 통치만이 실현되는 날입니다.

따라서 ‘그날’을 믿는 그리스도인들

포학이 만연한 ‘이날’ 속에서 하나님의 ‘그날’을 소망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회사가 곧 파산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누가 그 기업에 투자를 하겠습니까?

오직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만 자신의 끝을 알지 못한 채 어리석은 투자를 지속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사람들은

‘이날’이 끝나고 ‘그날’이 시작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신자들은 더 이상 포학의 질서에 순응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누군가를 죽이며, 눈물짓게 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스스로를 높이는 교만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그날’에 사라질 것을 지금 거부하는 삶입니다.

포학을 거부하며 평화를, 사망과 억울함을 거부하며 생명을, 교만을 거부하며 겸손을

‘이날’에 삶으로 드러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정녕 ‘그날’을 믿으신다면, ‘그날’을 누리십시오.

 

감사와 거룩한 삶 2015년 8월 17일 월요일

 

본문은 시온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송으로서,

앞에서 언급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24장의 사건)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민족을 시온산으로 불러서 잔치를 베푸시는 모습도 소개되는데,

이것은 “죽음을 멸하시고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신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이사야는 이런 희망의 메시지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대적 앗수르가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구원의 소식을 선포합니다.


비단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에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감사할 일이 전혀 없는데 어떻게 감사할 수 있냐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은 감사하지 못하는 그들의 문제이기 전에 늘 감사하는 우리의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감사할 일, 곧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우리에게만 머물고 그들에게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이는 우리에게 참된 감사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감사가 거룩한 삶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가 거룩한 삶으로 드러날 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이 감사할 일을 겪고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찬양 2017년 4월 27일 목요일 (이사 25:1~5)


현세의 염려와 암울함 중에도 예수님사탄의 세력을 멸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승리의 찬양이 온 우주에 울려퍼질 것입니다.


세상의 심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진실하신 속성이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세상의 악들은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계7:12)
그날에 예수님은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과 진실함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빈궁과 환난과 폭풍과 폭양 중에 보호하셔서 포학한 자, 강한 자를 제압하실 것입니다.(사25:3)

주님의 성실하심으로 인해 그들이 찬양하며, 이방의 포학이 그치고 낮아지게 됩니다.


한반도의 역사와 복음선교의 역사는

견고한 성읍이나 외인의 궁성의 건설 즉 힘과 권력과 인위적 방법 같은 것에 있었던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이 전쟁과 침략의 포학자를 그분의 방법으로 낮춰주신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에 발생한 근심과 그늘의 해결점 또한

주의 전능한 섭리의 절대주권에 놓여있습니다.

이를 그리스도인들은 깨닫고 믿음으로 찬양과 경외를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산 제사로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고백의 산 제사일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의 시온 산 잔치 2017년 4월 28일 금요일 (이사 25:6~9)


잔치는 기쁨을 공유함으로 배가됩니다. 음식과 여흥만 있어도 재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육의 전인적이고 통전적인 기쁨에 도달하려면,

하나님과 소통하며 공감하는 성령이 있어야만 합니다. 성령 안에서만 완전한 기쁨(희락)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잔치는 바로 예수님 재림 후에 있을, 천국에서 벌어지는 잔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나라의 승리의 잔치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 나오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상통합니다.


말세의 징후가 깊어질수록 '물이 바다에 넘침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온 세상에 가득'하다가,

최후 즉 주님의 재림 때에 온 열방과 민족이 시온 산에서 하나님나라의 승리의 잔치를 벌이게 될 것입니다.

특히 "가리개와 덮개가 제하여졌다"는 것은,(사25:7)

열방 땅끝에 이르기까지 주께로 만민이 돌아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여 주십니다.

오직 '현실세상'뿐이라고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서 성도들은 '

무식하다. 현실감각이 없다. 광신적이다'라는 등의 수치스러운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겐, 종말이 깊어갈수록 '인내'가 더욱더 필요합니다.


묵상질문

 

‘그날’이 도래하기 전 세상의 모습은 어떠하고, ‘그 날’이 임한 결과 사라질 것들과 나타날 것들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은 ‘이날’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날’을 따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감사해야 할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하나님께 대한 나의 감사는 거룩한 삶으로 연결되고 있나요?

 

기도

 

‘이날’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지 않게 해주십시오.
우리를 통하여 ‘그날’의 평화와 생명, 겸손이 드러나게 해주십시오.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감사의 실천과 더불어

거룩한 삶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닐 수 있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우리 안에 감사할 일이 많아질 수 있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에 의탁해, 믿고 애통하며 기도하며 찬미의 제사를 드립니다. 아멘.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등불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도록 예비하고 주님을 기다리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