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야]

우리의 지배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이사 23:1~18) (CBS)

colorprom 2015. 8. 13. 13:43

우리의 지배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2015년 8월 13일 목요일

이사야 23:1~23:18

 

두로에 관한 경고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두로가 황무하여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음이요

이 소식이 깃딤 땅에서부터 그들에게 전파되었음이라

 

바다에 왕래하는 시돈 상인들로 말미암아 부요하게 된 너희 해변 주민들아 잠잠하라

시홀의 곡식 곧 나일의 추수를 큰 물로 수송하여 들였으니 열국의 시장이 되었도다

 

시돈이여 너는 부끄러워할지어다

대저 바다 곧 바다의 요새가 말하기를 나는 산고를 겪지 못하였으며 출산하지 못하였으며

청년들을 양육하지도 못하였으며 처녀들을 생육지도 못하였다 하였음이라

 

그 소식이 애굽에 이르면 그들이 두로의 소식으로 말미암아 고통 받으리로다

너희는 다시스로 건너갈지어다 해변 주민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을지어다

이것이 옛날에 건설된 너희 희락의 성 곧 그 백성이 자기 발로 먼 지방까지 가서 머물던 성읍이냐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인들은 고관들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들이었던 두로에 대하여

누가 이 일을 정하였느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다시스여 나일 같이 너희 땅에 넘칠지어다 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바다 위에 그의 손을 펴사 열방을 흔드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에 대하여 명을 내려 그의 견고한 성들을 무너뜨리게 하시고

이르시되 너 학대받은 처녀 딸 시돈아 네게 다시는 희락이 없으리니 일어나 깃딤으로 건너가라

거기에서도 네가 평안을 얻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갈대아 사람의 땅을 보라 그 백성이 없어졌나니 곧 앗수르 사람이 그 곳을 들짐승이 사는 곳이 되게 하였으되 그들이 망대를 세우고 궁전을 헐어 황무하게 하였느니라

 

다시스의 배들아 너희는 슬피 부르짖으라 너희의 견고한 성이 파괴되었느니라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70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70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

수금을 가지고 성읍에 두루 다니며 기묘한 곡조로 많은 노래를 불러서 너를 다시 기억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70 년이 찬 후에 여호와께서 두로를 돌보시리니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

 

성경 길라잡이 

 

두로에 관한 경고라(1절): 두로는 이스라엘 북쪽의 해안가에 위치한 도시로,

근처의 시돈과 더불어 고대에 무역도시로서 명성을 떨쳤다. 그들은 부유함의 대표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9절): 선지자가 직접 자신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내용이다.

여기서 선지자가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른 것은

‘하늘의 천군천사를 대동하고 자신의 뜻과 계획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곧 두로의 멸망이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딸 다시스여……너를 속박함이 다시는 없으리라(10절): 다시스는 현재의 스페인 지역을 일컫는다.

두로와 시돈의 멸망으로 독점이 사라짐으로써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18절):

두로와 시돈이 해상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하나님께 바치게 될 것과 동시에

그 수익을 통해 포로생활에서 귀환하게 될 미래의 이스라엘 백성이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 예언은 포로귀환 이후 두로와 시돈 사람이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 해변까지 수송해 준 것을 통해

부분적으로 성취(스 3:7)되었다.

 

묵상과 삶

 

고대의 유명한 무역도시였던 두로시돈부유함과 사치스러움의 대명사였습니다.

무역으로 번성했던 그들 나라들은 세계 각국에서 모인 무역상들로 늘 활기차고 떠들썩하였습니다.

그들의 번영과 활기는 영원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을 심판하셨습니다.

 

13장의 바벨론에서부터 이어온 심판의 이야기가 두로의 심판을 마지막으로 일단락됩니다.

동쪽 바벨론부터 서쪽 두로까지, 각 지역과 나라들 모두가 심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라는 나라를 도구로 삼아 이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움을 청할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유다가 쳐다보아야 할 곳은 바로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또한 바라볼 곳은 오직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도와주십니다.

자본이 강력하게 지배하는 우리 세상에서,이 없는 현실은 우리의 삶에서 많은 불안과 불편을 초래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직업은 단순히 인생의 전망과 자아를 성취하는 것에 앞서, 생존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어느 소설가의 고백처럼 ‘밥벌이의 지겨움’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돈에게 지배받으라는 말은 아닙니다.

많은 청년들이 취업을 고민하고 걱정하지만, 그것이 돈의 지배 아래 들어가는 일이 되면 안 됩니다.

현실이 쉽지 않아도, 이러한 상황일수록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밥벌이의 지겨움, 그 고통스러운 삶을 부르는 돈의 지배를 이겨내야 합니다.

직업이 생존을 위한 필요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영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삶이 바른 신앙인의 삶입니다.

 

삶으로

 

바벨론제국이 메소포타미아 동부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면,

두로는 서부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사야는 그와 같은 두로가 멸망한다고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두로의 멸망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즉 이스라엘의 안전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인 것입니다.

 

결국 두로의 심판은 그들의 교만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그 주변국들이 결코 의지할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한편 이사야는 두로의 멸망뿐만 아니라 그들의 회복에 대해서도 예언합니다.

즉 두로가 다시 부를 축적하며 예전모습을 되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여호와 앞에 사는 자, 18절)의 양식을 마련하기 위해 행하시는 일입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백성을 위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편애하시고 그래서 부당하고 불의하게 행하신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공평하고 의롭게 행하십니다. 다만 그 중심에 하나님의 백성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를 특권이 아닌 책임으로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묵상질문

 

나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혹은 여전히 어려운 순간은 언제입니까?

그런 어려움 가운데 내가 의지했던 것, 또는 의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로와 시돈의 멸망과 회복은 누구의 손에 달려있는 걸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대해 지닌 책임은 무엇일까요?

 

 기도

 

모든 형편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에 의해 세상이 심판받거나 회복되는 것을 깨닫고,

그에 따르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