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자들 2015년 7월 17일 금요일
이사야 8:8~8:22
너희 민족들아 함성을 질러 보아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먼 나라 백성들아 들을지니라 너희 허리를 동이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 허리에 띠를 띠라 그러나 끝내 패망하리라
너희는 함께 계획하라 그러나 끝내 이루지 못하리라
말을 해 보아라 끝내 시행되지 못하리라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니라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알려 주시며 이 백성의 길로 가지 말 것을 내게 깨우쳐 이르시되
이 백성이 반역자 자가 있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그 모든 말을 따라 반역자가 있다고 하지 말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 할 자로 삼으라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들이 그로 말미암아 걸려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덫에 걸려 잡힐 것이니라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에서 봉함하라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
보라 나와 및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이스라엘 중에 징조와 예표가 되었나니
이는 시온 산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냐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성경 길라잡이
허리에 띠를 띠라(9절):
고대 근동에서 띠를 맨다는 것은 싸우기 위해 허리띠를 차고 거기에 칼을 꽂는다는 의미를 함축한다.
이사야는 대적을 향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무장하여 유다를 쳐보라고 조롱조로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 내게 알려주시며(11절):
이는 북이스라엘-아람 연합군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이 아니라 앗수르를 의지하려 했던 백성들의 잘못을 다시 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14절):
이 구절은 구원하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만백성의 구원자가 이스라엘에게는 걸려 넘어뜨리는 돌이 되실 것이다.
불신앙으로 눈이 멀어버린 백성들은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도 흑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어둠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 제자(16절):
이 구절을 개역개정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번역했지만,
원문 해석 방식에 따라 이사야가 하는 말로 번역될 수도 있다.
이어지는 문맥을 고려하면 이 구절은 이사야의 말이고, ‘나’는 선지자 이사야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신약성경 히브리서 2장 13절은 이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교회의 본보기로 설명하고 있다.
선지자와 그의 제자, 자녀들의 존재와 삶은
장차 오게 될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의 예표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율법과 증거의 말씀(20절):
이사야를 통해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 즉 이사야와 그 아들들이 나타냈던 징조와 예표에 의해 확증되는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만 그 빛이 이스라엘에게 여명을 가져올 것이다.
묵상과 삶
선지자 이사야는
증거의 말씀을 전수할 제자들과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을 바라고 기다립니다.
이사야의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한 죄로 심판받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외면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는 그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자녀들은 그의 시대에 징조와 예표가 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것은 고난을 자처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자녀들을 하나님의 징조와 예표로 삼았다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감수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선지자가 선택한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람들과의 관계는 하나님과의 언약 안에서만 참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시대의 징조와 예표가 되는 삶, 그 삶이 언약백성들의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믿음으로 주와 동행하는 삶이며 동시에 믿음으로 주를 기다리는 삶입니다.
이런 삶이 늘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을 인정하지 않고 죄에 치우쳐 있는 세상 속에서 주와 동행하고 있으니,
고난과 슬픔이 멈출 날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맞서는데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 너무 많아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스리시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가득한 고통과 신음을 보면서, 어찌 홀로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세상의 고통을 보며 함께 아파하고, 세상의 슬픔을 보며 함께 슬퍼하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의 사람은 그런 삶을 살아가면서,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을 중지시키실 왕을 바라며 기다립니다.
그때서야 온 세상에 참된 평화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삶으로
이사야는 유다의 대적자들, 곧 북이스라엘-아람 연합군이든 앗수르의 군대이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예루살렘을 점령할 수 없음을 노래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와 함께 이사야는 유다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길에서 떠날 것을,
곧 세상 나라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할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유다백성들은 이를 외면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징조와 예표, 그리고 그 말씀이 버젓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하여 그들은 결국 앗수르에게 패하고 고통과 절망 가운데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기다리며 또한 그분만을 바라보고 의지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설령 하나님의 은혜가 끊어진 것 같은 절망의 순간을 맞는다 하더라도
그는 결국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것을 믿고 그 때를 기다리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로써 유다백성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과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혼란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우리가 나아가야할 길을 밝혀줄 것입니다.
묵상질문
선지자를 통해 예견된 이스라엘의 미래는 어떤가요?(9절)
이사야가 하나님만 기다리며 바라보겠다고 선언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날 하나님만 기다리며 바라보는 믿음과 소망은 우리를 어떠한 삶으로 인도할까요?
기도
+ 우리가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기다리게 해주십시오.
+ 이 땅의 교회가 세상의 고통과 아픔에 참여하는 공동체가 되게 해주십시오.
+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도록 부추기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만 기다리며 바라보는 믿음과 소망으로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을 구현해낼 수 있도록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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