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인 동시에 의무인 하나님 나라! 2015년 6월 12일 금요일
마태복음 25:14~25:30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성경 길라잡이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14절):
기다리는 시간은 그저 무의미한 ‘지연’이 아니라 종들이 받은 달란트를 활용하는 기회의 시간이다.
‘깨어있기’라는 주제를 심화한다.
각각 그 재능대로……달란트를(15절):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으로, 한 노동자의 20년간의 품삯에 해당한다.
일반적인 종이 기대할 수 없는 막대한 금액이다.
따라서 본문의 ‘달란트’는 단순히 자연적 재능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모든 특권과 기회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24절): 셋째 종의 이야기(24~30절)가 가장 길다.
이것으로 교훈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게으른 종의 실패는 주인을 그릇되게 이해했기 때문이다(24절). 그러므로 주인을 바르게 알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 나라는 자동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위험을 감수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성장한다(26~27절).
굳은 사람이라 …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24절):
굳은 사람이란 마음씨가 매우 무자비한 사람을 일컫는 완곡한 표현이다.
곡식을 탈곡하다가 곡식이 흩어지면 이것을 다시 모으는데,
이 종은 주인이 탈곡하지도 않으면서 모으려고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27절):
취리하는 자는 돈을 빌려주거나 환전하면서 이익을 얻는 오늘날의 은행가 같은 역할을 하는 자다.
그들에게 돈을 맡겨두었다면 이자라도 받았을 것이라는 뜻이다.
묵상과 삶
게으른 종은 주인 가까이에 머물렀는데도 주인의 성품도, 주인이 준 사명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여
파국을 맞이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대하는 두 극단적 태도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무력한 운명론이 등장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는 그저 사람에게 맡겨진 의무이니 사람의 태도에 모든 것이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과격한 조급증이 발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드러내신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동시에 사람이 신실히 행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러니 무력하게 주저앉아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에도 과도하게 조급해할 것도 아닙니다.
한 사람이 살아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는 ‘선택의 기회’입니다.
매 순간 우리에게 다가오는 선택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직하게 드러낼 기회,
즉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기회입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선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우리의 선택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을 눈여겨보십니다.
그러므로 가장 비겁한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기로 선택할 기회를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외면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쩔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매 순간 다가오는 선택을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기회로 인정하는 자,
기쁨으로 그 선택을 맞이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맞이한 선택의 기회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생명을 다해 우리를 선택하셨듯이, 우리도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의 달란트 비유는 매우 유명한 내용입니다.
달란트는 당시 은을 세는 단위였는데, 1달란트는 6,000드라크마였습니다.
1드라크마가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이었으니, 1달란트는 6,000일의 품삯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엄청난 가치의 재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한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의 재능에 따라 누구에게는 5달란트를, 누구에게는 2달란트를, 그리고 누구에게는 1달란트를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나중에 돌아와 결산할 때, 5달란트로 10달란트를 남긴 종과 2달란트로 4달란트를 남긴 종은 칭찬하고, 1달란트를 그대로 들고 온 종은 꾸짖으면서 그의 1달란트를 10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줍니다.
우리는 종종 이 비유에서 차별에 시선을 돌리곤 합니다.
왜 차별적으로 종에게 달란트를 주고 또 나중에 1달란트도 10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 이 비유는 누가 얼마를 받았느냐가 아니라 받은 것으로 무엇을 했느냐에 관심을 둡니다.
차별이나 소위 ‘빈익빈 부익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달란트의 분량도 재물의 양이 아니라 충성도와 관련이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얼마나 가졌냐(받았냐)가 아니라
가진(받은) 것으로 무엇을 얼마나 했느냐에 관심이 두십니다.
묵상질문
- 내게 주어진 ‘달란트’, 즉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기회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 나라를 증언할 기회를 어떻게 맞이하셨습니까?
- 그 기회를 통해 드러난 것이 세상 나라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까?
- 1달란트 받은 종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 내가 가진(받은) 것은 무엇이며,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기도
+ ‘어쩔 수 없다’는 핑계 뒤에 숨어 하나님 선택하기를 포기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 매 순간의 선택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게 해주십시오.
+ 지금 내게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고,
그것을 남들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그것에 최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주세요.
'+ [마태]' 카테고리의 다른 글
[86]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핵심이십니다 (마태 26:1~16) (CBS) (0) | 2015.06.15 |
---|---|
비겁하게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마태 25:31~46) (CBS) (0) | 2015.06.15 |
그런즉 깨어있으라 (마태 25:1~13) (CBS) (0) | 2015.06.15 |
진실을 드러내는 일상의 가치 (마태 24:45~51) (CBS) (0) | 2015.06.15 |
[81]‘미지’를 인정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마태 24:36~44) (CBS) (0) | 2015.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