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2015년 5월 13일 수요일
마태복음 18:11~18:20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100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99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99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2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성경 길라잡이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15절): 성경은 각주에 ‘네게 죄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은 자신에게 죄를 범한 형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러한 문제는 개인적인 동시에 공동체적인 문제다.
그리스도인은 교회 공동체의 한 지체이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를 개인적으로만 다룰 수 없다.
우리는 이 본문의 가르침을 통해 교회의 권징에 관한 지혜를 배우게 된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17절):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구절의 의미를 ‘출교’로 받아들이고 있다.
죄 지은 것을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교회의 권면을 무시하는 사람은,
교회 회중으로서 누리는 어떤 특권도 누릴 수 없다.
교회는 죄를 처리할 권세를 가진 공동체로서, 죄는 교회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지만, 죄는 단호하게 거부하는 거룩한 공동체이기도 하다.
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2015년 5월 13일 수요일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애쓰는 목자의 모습과 죄 범한 형제를 대하는 방법은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죄를 범한 형제를 대하는 법은 잃은 양을 찾는 삶을 실천하기 위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에 빠진 형제는 잃어버린 양과 같습니다.
잃어버린 형제를 어떻게 다시 찾으려면 먼저는 개인적으로 권면해야 하며,
그 다음은 두세 증인들과 함께 권면해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온 교회 앞에서 권면해야 합니다.
이 모든 절차는 형제를 모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되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 형제에게 그것이 큰 부담이 되는 일이더라도,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러한 절차를 따라서 형제의 죄를 다루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죄를 그대로 둔 채로는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함이 없는 사랑은 세속화일 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사랑 없는 거룩함은 폭력이며, 거룩함 없는 사랑은 거짓입니다.
진리의 공동체인 교회는 사랑과 거룩함을 함께 간직해야 합니다.
교회는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사랑으로 품어야 하며,
아무리 작은 죄라 할지라도 반드시 제거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죄인을 사랑하면서 죄를 미워하는 삶이 양립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성경은 교회에 이와 같은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죄를 제거하는 일은 사랑으로부터 나와야 하며, 사랑은 죄를 제거하는 데까지 성숙해야 합니다.
이 땅의 교회는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 죄를 용납하는 어리석음에 빠져 힘겨워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형제를 죄의 구렁텅이에 방치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죄를 범한 형제를 용납하되 거룩해지도록 인도하는 사랑을 하는 삶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잃은 양을 찾은 기쁨 2017년 3월 8일 수요일 (행 18:10~14)
예수님의 삶은, 잃은 것을 찾는 여정이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래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생명,
그리고 그중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세계의 관리자로 세우신 인간을 회복시키기 위해
십자가와 부활의 먼 길을 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믿었던 이 고백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잃었던 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두드러지게 보여주셨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극단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家長) 없이 살아가야 하는 과부나 고아의
고달픈 삶, 모두에게 짐이 되거나 기피대상인 장애인이나 환자들,
그리고 세리나 창녀처럼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관심을 거두신 적이 없습니다.
많은 오해와 직접적인 비난이 있었음에도, 잃어버린 이들에 대한 사랑을 결코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히 주님이 가장 기뻐하신 일은 잃어버렸던 사람을 다시 찾는 것이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 양이 소중하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 마리에 치중하느라 아흔아홉 마리를 방치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으며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주님이 여기서 지향하는 것은 잃었던 것을 찾아야 한다는 대의(大意)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나에게서 무엇을 되찾아서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지,
내 주변의 잃은 양을 찾아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고민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민하는 인생을 행복으로 여기며 사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묵상질문
- ‘만일 듣지 않거든’이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죄로부터 돌이키라는 형제의 권면을 듣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16, 17절)
-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20절)
-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나는 무엇(누구)을 찾고 있는가?
기도
+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며 거룩해지게 해주십시오.
+ 이 땅의 교회에 거룩한 사랑의 능력을 부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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