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

[56]크게 되고자 하느냐? (마태 18:1~10) (CBS)

colorprom 2015. 5. 12. 14:33

크게 되고자 하느냐?  2015년 5월 12일 화요일


마태복음 18:1~18:10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리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 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11 (없음)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성경 길라잡이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1절):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게 된 제자들은,

주님의 나라가 회복될 때 자신들이 누릴 특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누가 크냐’는 질문은 어떤 특권과 영화를 누릴 수 있느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자들이 여전히 세상의 사고방식에 머물러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높은 지위에 오르고자 하는 열망, 그것은 철저히 세상의 사고방식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큰 자가 되려는 열망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 나라의 왕께서 먼저 스스로 낮아지고 약해지셨기 때문이다.

 

크게 되고자 하느냐?  2015년 5월 12일 화요일

 

제자들은 주님의 나라를 흠모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산에서 주님의 영광을 직접 목격한 세 명의 제자들은 그 열망이 더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나라를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나라를 당대의 제국인 로마와 비슷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그 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잘못된 지식은 뒤틀린 열망을 낳습니다.

주께서는 제자들 앞에 어린 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그 아이처럼 겸손해야만 한다고 교훈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이 가르침으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로마와 같지 않습니다.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낮아져 종이 되신 주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에는, 큰 자가 차지할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 사역에 헌신하는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있나요?

이 땅의 교회가 더 커지고자 하는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커지는 것만을 추구하며,

복음 사역에 세속적 경영방법을 동원하여 서로 경쟁하고 다투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서 건설된 교회가 하나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성장하는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고 있는지를 진지하게 살펴보아야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도록 이 땅에 세워진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지 못하고 커다란 규모만을 자랑하는 세상적인 조직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스스로 낮아지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커지고자 하는 욕망을 길들여, 종이 되신 주님을 본받아 세상과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뜻 2016년 12월 28일 수요일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떤 상황과 여건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수십 년간 방황했듯 우리도 그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사랑·구원·해방 등 여러 가지 단어를 가지고 정리해낼 줄도 압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은 그 단어들의 뜻 이상이지만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어린 아이를 어른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2-3)

그런 다음 예수님은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18:6) 하십니다.
그리고

길 잃지 않은 양 99 마리를 두고서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목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마18:12-14)


어린 아이, 작은 자, 길 잃은 양 한 마리는 모두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이른바 '하찮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나라

어린 아이를 영접하고, 작은 자를 실족치 않게 하며,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삶과 관계가 깊습니다.


흔히 교회공동체는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앞당겨 보이는 곳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의 교회공동체들이 그러합니까?

어린 아이, 작은 자,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주목하고, 대접하고 있습니까?

혹 그런 이들을 실족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연자맷돌 (2018년 10월 3일 수요일)


우리는 교회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랑하는 지체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공동체 안에서 만날 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실족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A가 B를 실족케 하였다면 A에게 어떤 형벌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주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목에 연자맷돌을 매달아서 바다에 던져 빠져 죽게 하라.'
주님께서는 덧붙이십니다.

만일 형제를 실족하게 하는 데 있어서 내 눈이 범죄하면 그 눈을 빼버리는 게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내 손발이 범죄하면 그것들을 찍어버리라, 강조하십니다.


형제를 실족하게 하고 실망하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하는 것에 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안 된다

강력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실족케 하는 것에 대하여 치명적으로 심각한 일로 여기지 않습니다.
'실수할 수도 있지'하고 스스로 관용해버리기도 합니다.

실족한 사람이 부주의한 것아닌가, 그 사람 탓을 할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그를 실족하게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타인을 실족케 하는 일이 생겼다면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입이 그 사람을 실족케 하였다면 내 입에 대하여 단호하게 벌을 내려야 합니다.


타인에 대하여 무딘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입니다.

한 아이를 집단폭행하고도 '그렇게 아플 줄 몰랐다'고 태연히 말합니다.

타인의 실족, 아픔에 대하여 우리 기독교인은 어느 경우에나 진지하게 접근하여야 합니다.


+ 하나님, 말과 행동으로 누군가를 실족하게 하는 일에 대하여 진지하게 접근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 제자들이 예수님께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질문한 의도는 무엇일까요?(1절)

- 제자들은 세상에서 낮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나요?(10절)

 

기도

 

+ 우리가 커지고자 하는 욕망을 벗어버리도록 도와주십시오.
+ 이 땅의 교회에 함께 계셔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헌신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