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있는 믿음 2015년 5월 11일 월요일
마태복음 17:14~17:27
14 그들이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16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19 이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24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세상 임금들이 누구에게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베드로가 이르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성경 길라잡이
너희 믿음이 적은 까닭이라(20절):
믿음이 적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적은 믿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후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하신 것을 보면,
이들의 믿음이 적다는 말은 믿음이 ‘없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반 세겔 받는 자들이(24절): 새번역은 이 부분은 ‘성전세 거두는 사람들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반 세겔은 보통 노동자들의 이틀 치 임금에 해당한다.
예루살렘 성전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던 이 세금은
팔레스타인 외부에 살고 있는 유대인 남자들에게서도 거두어 들였다.
당시 애굽에는 1,000 만 명 정도의 유대인이 살았기 때문에 엄청난 세금이 거두어졌다.
징세관들은 팔레스타인 전역을 돌아다니며 세금을 거두었고,
세금 징수를 위한 관청이 설치되었다(LAB 참고).
능력 있는 믿음 2015년 5월 11일 월요일
예수님께서 영광을 드러내어 보여주신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산 아래 제자들은 질병에 걸린 한 아이를 고치지 못해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문제를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말로 정리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을 수 없습니다.
믿음은 기도를 통해 표현됩니다.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셔서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우리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인생의 문제들을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힘든 인생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는 수많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가진 지혜와 경험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지만,
어떤 경우에는 결국 문제에 압도되어 절망하기도 합니다.
도무지 처리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좌절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을 찾곤 합니다.
비로소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 때로는 잠잠히 때로는 울부짖으며 기도하곤 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연약하여 이와 같은 삶의 순환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기도는 주님의 뜻에 삶을 맡기는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우리 입술을 통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게 되면,
우리 삶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새로워집니다.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위기의 때에 긴급하게 기도의 자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을 기도의 자리로 만드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믿음 2017년 5월 30일 화요일 (마태 17:14~20)
지난 해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이 IS를 창설했다'는 등
막말을 불사하는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후보가,
필리핀에서는 트럼프 못지않게 '살벌한' 막말을 일삼는 두테르테 대통령이 크게 주목받았습니다.
그들은 확실히, 일반인들과는 사뭇 색다른 언행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기존하는 것과는 뭔가 다른 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 그들의 존재의미를 평가해본다면,
그들이 모종의 변화를 시작하였다는 사실 혹은 일종의 변화를 도발하였다는 점만큼은
이야기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들뿐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모두는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변화를 얼마만큼 이 세상에 불러일으키는가 하는 데에서 차이가 있을 따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했습니다.(마17:14)
'귀신이 그 아이의 몸에서 나가는' 긍정적 변화를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돌아오셔서 그 아이를 치유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그때까지도 자신들이 왜 그 아이를 치유하지 못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마17:20)
우리가 이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종의 변화, 일종의 변화 정도가 아니라,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몰아내는 정도의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우리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 정도라도 있어야 하겠지요.
그 믿음이 지금 우리에게 있습니까?
예수님의 지혜 (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마태 17:22~27)
예수님은 원칙적으로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시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세상 임금들이 세금을 자기 자녀들에게서 거두는 것이아니라 타인에게서 거두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전은 하나님 집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면제'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로 하여금 자신과 베드로의 성전세를 내도록 하십니다.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실족을 말하시는 것일까요?
성전세를 내지 않았다는 예수님의 사례가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일 수 있으나,
바로 앞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예언하신 것을 감안하면,(마17:22-23)
중요한 일을 앞두고 불필요한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추정됩니다.
원칙은 분명하되 상황도 고려하는 예수님의 지혜를 알 수 있는 본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보이지만 그 또한 지혜로웠습니다.
그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어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원칙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그것을 먹지는 않았습니다.(고전8:13)
이러한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는 것을 분별하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원칙을 때로 유보할 수 있는 지혜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끊임없이 겸손하게 배우는 태도로 이 분별력을 키워나가기 바랍니다.
그 같은 분별력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 하나님, 삶 속에서 중요치 않는 것에 연연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인도하소서.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아멘.
믿음은 기도 (2018년 9월 12일 수요일)
어느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함께 있을 때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 앞에서 꿇어 엎드려 자신의 아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 아들은 간질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그 고통의 정도를 "심히 고생하여" 라고 표현했습니다.(마17:15)
그 아들이 불과 물에도 자주 뛰어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수님 앞에 오기 전에 제자들을 먼저 찾아왔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의 아들을 고쳐주지 못하고 그냥 돌려보냈습니다.(마17:16)
그 사람의 말에 예수님은 한탄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마17:17)
예수님은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마도 부끄러웠던 듯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조용히 예수님께 묻습니다.
왜 자신들이 그 아들에게 들씌워져있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인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유를 간단히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까닭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마가복음에도 나옵니다.(막9:14-29)
여기서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9:29)
두 병행본문을 연결하여봅니다.
믿음은 곧 기도일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지만, 믿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 주님, 하나님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있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적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인가요?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겨자씨 한 알보다 작다고 하셨습니다.
겨자씨 한 알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기도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변화시켜주소서. 아멘.
+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주님을 찾고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 우리에게 기도의 영을 부어주셔서, 항상 기도하는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
'+ [마태]' 카테고리의 다른 글
[57]형제가 죄를 범했을 때 (마태 18:11~20) (CBS) (0) | 2015.05.13 |
---|---|
[56]크게 되고자 하느냐? (마태 18:1~10) (CBS) (0) | 2015.05.12 |
주의 영광스러움을 보라 (마태 17:1~13)(CBS) (0) | 2015.05.10 |
반석이 될 것인가 걸림돌이 될 것인가? (CBS) (0) | 2015.05.08 |
참 신이 여기 계시다 (CBS) (0) | 2015.05.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