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행하여 안식일을 지켜라 2015년 4월 16일 목요일
마태복음 12:9~12:21
거기에서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의 병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성경 길라잡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10절):
길가에서 시작되었던 안식일 논쟁은 회당 안에서도 이어진다.
바리새인들은 "옳지 않다!"는 답을 정해놓고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을 던진다.
당시의 랍비들은 생사가 급박한 경우에만 안식일 규레를 어길 수 있도록 허락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12절):
예수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 자비를 베푸시기 위해 재정하신 안식일에
합당한 행동이라고 주장하신다.
안식일에 자비로운 행동을 하는 것은 안식일을 온전하게 하는 필수적인 행동 원리다.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16절):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과의 논쟁에 참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자신의 모습을 감추려 하신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참된 종으로서 보여준 모습이다.
선을 행하여 안식일을 지켜라 2015년 4월 16일 목요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고통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십니다.
그것이 안식일에 합당한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백성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을 장려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먼저 선언하신 원칙에 따라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여 본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로서 그분께서 안식일로 뜻하신 것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심으로써 안식일을 완성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르치기만 하지 않으시고, 우리가 그분의 인격을 닮아가게 하셔서
그분의 안식으로 초청하십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을 닮아
나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주어 살려내는 선을 행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주일 아침에 교회 공동체가 함께 모여 예배하고,
서로를 돌아보고 격려하기 위해 다양한 모습으로 봉사합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고,
또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성도 간의 만남에서 확인하고,
참되고 인격적인 관계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하지만 세상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 맺어진 관계들도 세속적으로, 피상적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지만, 형제자매가 삶에서 어떤 처지와 상황에 처해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형제자매에 관심을 두기보다 자신의 봉사의 사명에만 집중합니다.
그 때문에 교회에서 성도 간의 관계가 의무적인 것이 되고,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형제자매에게 봉사하고 섬기는 자리를 자기 자리로 삼고 바른 관계를 바탕으로 선을 행할 때,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드러나는 예수님의 정체성 2017년 1월 11일 수요일
마태복음 12장 9-21절의 증거는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첫번째는,(마12:9-14) 예수님이 안식일에 어느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신 일입니다.
두 번째는(마12:15-21) 이 일로 인하여 사람들이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고,
마태 기자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 부분에서 우리는 수수께끼 같은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자기(예수님)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십니다.(마12:16)
그러나, 숨기려 하나 나타나고, 감추려 하나 드러납니다.
마태 기자는 이사야 42장 1절을 인용하며 예수님을 정확히 증거합니다.
곧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라는 거지요.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는 연약함, 위태로움을 상징합니다.
말하자면 폐기처분 직전의 것들입니다. 돌보아봤자 소용없는 것들입니다.
꺾어버리거나 꺼버리는 것이 효율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그러면 우리 중 누가 상한 갈대이고 꺼져가는 심지일까요? 나는 아니라고요? 정말로 그러할까요?
혹시 누가 나의 상함을 알아보고 나의 꺼져감을 알아볼세라 걱정되어,
억지라도 아닌 척하며 강해 보이려 애쓰고 있는 건 아닙니까?
지금 우리 사회같이 냉정한 현실에서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가 존재할 자리는 비좁기 한량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99%가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입니다.
우리 99%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끼리 서로 돌보며 아낄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해주시듯이 말입니다.
내가 택한 종 (2020년 1월 15일 수요일) (14~21)
어느 안식일 날,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셔서 한쪽 손 마른 사람(한쪽 손이마비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준 것은 율법을 어긴 것이라며 시비를 걸었고,
종국에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합니다.
바로 이때 마태복음 저자는 이사야 42장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야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가 오시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실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사42:3)
이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연약하고 상처 난 사람들을 치유하시고 회복시켜주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왕들처럼 무자비하게 심판하시지 않고
상한 자들을 치유하여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 예수를 통한 구원과 심판이 이방에까지 전해질 것이라 예언합니다.
아득히 먼 곳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도 들려오는 그의 이름만 듣고도 희망을 품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는 믿는 자뿐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기쁨과 희망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희망이며, 구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해야 쓰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세상의 천한 자들과 멸시 받는 자, 없는 자들을 택하여 있는 자를 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연약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주님께 붙들리면 존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구원의 능력이 약하고 연약한 우리를 통하여 온 세상에 희망으로 밝히 드러나기를 소원합니다.
+ 주님처럼 우리도 약한 자와 함께하고 도와주며 세상의 빛이 되게 하소서. 아멘.
묵상질문
- 안식일 율법을 재정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무엇입니까?
- 안식일에 선을 행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나와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기도
+ 교회 공동체 가운데 예수님을 닮은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게 해주십시오.
+ 하나님의 안식이 우리의 선행을 통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해주십시오.
오, 주님 예수여, 내 손을 잡아주소서. 제가 바로 상한 갈대이며 꺼져가는 심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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